꿈속을 걸어요

[츄아쿠] AM 04:30 본문

문호 스트레이독스

[츄아쿠] AM 04:30

Fong 2017. 4. 18. 02:52

아쿠타가와 오른쪽 전력 60의 지나간 주제를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라져 간다. 충실히 소모될 것이다.

너를 사랑해. 이 기막힌 재난과 함께.


김이듬 - 막






길드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은 조직원들의 장례를 치루는 날이었다. 새벽에는 우중충하며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마치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처럼 금세 비를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세상은 누군가 죽더라도 그것이 당연한 자연의 순리인 것 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이슬이 내린다. 세상이라는 것이 당연히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누군가가 죽은 것을 보았던 것 보다 더 먼저 누군가를 죽였을 때 알게 되었지만, 오늘 새벽만큼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세상은 잔혹하다. 아무리 편안한 삶을 누린다 하더라도 혹독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 있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길드가 불러온 일은 자연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세상은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듯이 흘러갔다.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루는 날이면서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러니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일이며 그 일은 사고였다. 재난과도 같은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다. 병상에 누워 있었기에 피해를 받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그 대상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아쿠타가와 선배, 오늘 장례식이 있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 편이....”

“알고 있다.”


보고는 자신이 할테니 먼저 자택으로 돌아가라는 히구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아쿠타가와는 본부로 향했다. 어슴푸레한, 곧 있으면 동이 틀 거리는 매우 조용해서 아쿠타가와의 발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렸고 기침 소리는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숨결처럼 들려왔다.

본부에 막 도착했을 때,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신 같은걸 믿어 본 적은 없지만 때마침 내리는 비가 죽어간 자들을 애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으로 죽은 조직원들과 오늘 막 죽은 사람들을 평등하게 여기며 동일한 슬픔으로 보는 자애로운 비라고 생각했다.

보고서의 작성과 기록을 마치고 아쿠타가와는 다음 장소를 고민하다가 임무에 나서기 전에 들었던 자신의 애인의 말을 기억해 냈다. 돌아오면 얼굴 보러 와, 누구보다도 다정한 말투였기에 하마터면 선잠을 자며 돌아오기를 다린다는 생각을 할 뻔했다. 오늘 밤은 잠들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나카하라의 방문에 가볍게 노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머리를 먼저 내밀어 방안을 살피자 왔어? 라며 소파에 앉아 와인잔을 들고 있는 나카하라가 보였다. 쉽게 취하는 나카하라는 과음을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술 냄새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침착한 나카하라의 모습에 아쿠타가와는 웃을 수 없었다.


“아쿠타가와.”


툭툭,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린 나카하라의 행동에 아쿠타가와가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 엉덩이가 소파 위에 닿음과 동시에 나카하라의 손이 아쿠타가와의 뒷목에 닿았다. 나카하라의 입술이 닿아 올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쓴 술맛이 입안에 잔뜩 감돌았다. 알콜의 맛에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쿠타가와는 과실을 발효시킨 술에는 금방 취하는 타입이었다. 서로의 혀가 엉키면서 민망한 소리가 났지만 두 사람 다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아쿠타가와의 손이 익숙하게 나카하라의 홀스터에 닿았다. 그 손길에 나카하라가 웃으며 입술을 떨어뜨렸다. 취해서 짓는 웃음인지 정말 즐거워서 짓는 웃음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안 돼. 낮에 일이 있잖아?”


쪽 소리가 나게 다시 한 번 입술에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에 아쿠타가와가 시선을 피했다. 자신도 모르게 나카하라의 홀스터를 풀어내려 했다. 나카하라의 방에서 이런 형태로 입술이 닿으면 항상 키스만으로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기분 좋게 와인으로 목을 축인 나카하라가 탁자 위에 와인잔을 올려두고 예고 없이 아쿠타가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다리의 반절은 소파 밖으로 뻗어진 상태였다.


“류노스케.”


나카하라가 손을 뻗어 아쿠타가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피부와 자신만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가 좋았다. 무표정인 듯 하면서도 자신의 앞에서는 살짝 풀어진 그 표정이 너무 좋았다. 평생 이렇게 보며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언제까지 살아서 네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잔잔하게 흩뿌리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운 손길에 아쿠타가와가 가만히 나카하라를 바라보았다. 부하가 죽은 것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이었다. 단지 숫자적 손실을 떠나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이 나카하라에게는 고통과도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쿠타가와는 조금 달랐다. 자신의 주변의 사람만 다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목숨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짓밟을 수 있었다. 나카하라가 아니라면 자신의 직속 부하의 일이 아니라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드릴 수 있었다. 아마 나카하라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나카하라씨가-.”

“츄-야-.”


살짝 풀린 발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강요하는 목소리에 아쿠타가와가 살짝 웃었다. 역시 취한 것이 맞았다. 이 정도 마시고 취하지 않을 나카하라가 아니었다. 나카하라가 취해 있던, 멀쩡한 정신이던 아쿠타가와의 생각은 한결 같았다.


“... 츄야씨가 원하실 때 까지요.”


그 대답에 나카하라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행복한 얼굴이었다. 최근 아쿠타가와에게 짓는 미소에는 어딘가 슬픔이라던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들이 서려 있었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기쁨을 표하는 얼굴이었다. 


“그럼 내가 더 먼저 죽어야 겠네.”

“나ㅋ, 츄야씨.”

“그 녀석처럼 같이 죽겠다는 말은 하지 마.”


단호한 목소리에 아쿠타가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쿠타가와는 그가 먼저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니, 먼저든 나중이든 그가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생각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카하라가 죽는다는 생각만 해도 이렇게 괴로운데 나카하라는 얼마나 괴로운 심정이었을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죽을 때 이렇게 네 얼굴 보면서 죽을 거니까.”


나카하라는 말끝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자신의 얼굴을 보고 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피 흘려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품 안에서 죽고 싶다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뿐인 조용하고 고요한 공간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가장 행복하게 죽어가는 미래를 생각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쿠타가와는 아직 자신의 끝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젠가 죽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은 했었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서 보내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리고 행복한 시간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있다. 포트 마피아에서 발을 뺀다고 하더라도 절대 영위할 수 없는 삶이겠지만 행복하게 웃으며 잠든 나카하라를 보며 생각했다. 이런 행복에 젖어 죽는 삶이라면 나쁘지 않다.

잔잔하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전에는 빗소리가 나면 어떤 뒤처리가 귀찮은 일을 먼저 처리할지에 관한 생각만 했었는데 지금은 나하라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했다. 평생에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쿠타가와도 졸음이 몰려왔다. 간부인 나카하라도 검은 도마뱀의 대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아쿠타가와도 빠질 수 없는 자리였다. 행복에 빠져 눈이 감기기 전에 보인 것은 4시 30분을 알리는 시계였다.

이렇게 죽는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3시~4시 사이가 인간이 가장 감성적이 되는 시간이라고 하죠.

마피아라는 직업은 작중에서도 묘사되었지만 죽음이랑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직업인데 제가 왜 죽음에 관해 다루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어서 썼는데... ㅎㅎ...ㅎ...


... 머 그런것도 있는데 사실 많은 부분은 새로운 글갈피 쓰고 싶어서 썼습니다.(

꼭꼭 트위터에서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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