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걸어요

[츄아쿠] 감정의 상위단계 본문

문호 스트레이독스

[츄아쿠] 감정의 상위단계

Fong 2017. 4. 30. 23:52

아쿠타가와 오른쪽 전력 60


너에게 갈게.

네가 오지 않겠다면,


은희경 - 소년을 위로해줘






다자이가 포트 마피아를 나갔다. 나카하라는 그가 무슨 연유로 나간 것인지 알지 몰랐지만, 나카하라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귀찮았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안타깝게도 사망이 아니라는 부분이 있지만,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더 이상은 본심을 선의로 위장하는 일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부하였던 아쿠타가와를 좋아한다. 이건 이미 좋아한다는 감정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자이에게 제대로 굴려지고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괜찮은지 물으며 일부러 근육통에 효과가 있는 약을 녹인 음료를 손에 쥐어주었다. 지나가다 본 당고를 보며 좋아할 것이라 생각해 같이 있던 부하들과 오자키에게 줄 몫까지 산다며 일부러 잔뜩 사서 아쿠타가와의 손에 들려주는 일도, 쪽잠을 자는 걸 보고 일부러 다자이를 불러내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는 일도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

그래도 마냥 웃으며 다닐 수는 없는 것이, 아쿠타가와는 다자이가 떠난 탓에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자이를 특별하게 생각하지만 않았더라도 손을 잡고 친절하게 그 길을 일러주었을 텐데, 발이 아프다면 업어서라도 데려다 주었을 텐데. 게다가 다자이가 떠난 이후로 아쿠타가와는 눈에 띄게 나카하라를 거절하곤 했다.


“아쿠타가와.”


치료실에서 만난 아쿠타가와는 잔뜩 상처를 입고 링거를 주사 받고 있었다.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나카하라를 보며 아쿠타가와는 놀란 표정으로 나카하라를 보았다.


“그동안 숨어 지내더니, 언제 또 이렇게 다쳐서 왔어.”


총알을 빼내고 배인 상처는 꿰맸다고 들었다. 아직 능력을 제어하는 것이 그렇게 완벽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 완벽했어도 완벽하게 사용할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카하라가 조심스럽게 감긴 붕대 위를 쓸었다. 이미 상처라 많은 몸이었는데 거기에 또 하나 적립했다. 나카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쿠타가와의 몸에 난 것은 자신의 몸에 난 것 보다 더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이미 그 상대는 죽었다고 하니 한결 나은 기분이었다.

아쿠타가와는 그의 말이 질문인지, 자신을 탓하는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붕대 위를 훑어오는 손에 긴장했을 뿐이었다. ‘좋은 사람’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나카하라에게 이러한 친절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이다. 절대로 자신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다정함을 자신에게만 향하는 관심이라 착각하고 싶었다.

또 피해 다녔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카하라가 한숨을 쉬며 간이 의자에 앉았다. 오래 있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쿠타가와는 약기운으로 나카하라와 오랜 시간 대화할 정신은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보려 이를 악물었다가 상처가 쑤셔왔다.

자신에게만 특별하게 쏟아지는 관심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은 아쿠타가와 생각하는 감정이 아닌 동정일 것이다. 굳이 알아내지 않아도 자명한 것이었다. 다자이에게 버림받은 자신을 향한 동정, 그것은 다자이가 있을 때 까지는 다자이의 부하로 불쌍히 여겨 가졌던 동정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너는 잘 하고 있으니까.”


옷을 여며주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곧 잠들 것 같은 아쿠타가와의 옷에 지금을 손을 대느냐, 아니면 잠든 후에 느긋하게 그 순간을 만끽하느냐에 고민했다. 짧은 고민이었지만 전자를 선택했다. 이제 잠든 후에 만지는 건 그만하고 싶었다.


“춥지 않아? 정리 좀 해줄게.”

“괜찮….”

“걱정하지 마. 이렇게 된 부하 보는 거 한 두 번도 아닌데.”


보는 거야 샐 수 없이 많이 봤지만, 이렇게 직접 옷을 여며준 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쪽이 더 받아드리기 편하겠지. 아쿠타가와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옷을 여며주는 나카하라의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고맙게도 아쿠타가와의 옷은 거의 등쪽으로 밀려 있었기에 손을 더 깊게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장갑도 벗고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미한 온기를 품은 옷자락이 손에 닿았다. 

단추를 하나하나 여며주고 얇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어 주었다. 곧 잠들 것 같은 숨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나카하라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마음을 애써 참고 참아서 아쿠타가와의 머리로 손을 올렸다. 아쿠타가와가 깨어 있을 때 쓰다듬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꾸 이렇게 아프고, 다치고… 그러지 마. 걱정되잖아.”


뒷말은 괜히 붙였나 싶다가도 살짝 붉어진 아쿠타가와의 표정에 괜한 말이 아님을 확신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로 몇 번이고 임무에 나갔다는 것은 이미 전해 들었다. 의사가 일부러 수면 유도제를 주사해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것도, 원래라면 2주는 더 누워 있어야 하는 상처라는 것도 들었다.

다자이는 자살하겠다며 노래를 부르던 놈이었지만, 누구보다 자기 몸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조금 귀찮으면 쉬고, 좋아하는 것만 먹고, 임무에선 망설임이 없었지만 자기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절대로 자기를 아끼지 않을 리가 없다.


“나카하라씨.”


아쿠타가와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나카하라가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이 있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다정한 손길. 아쿠타가와는 그 손길이 좋았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으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카하라의 감정은 자신에게 관한 호의인가, 아니면 동정인가.


“왜 소생에게 이렇게….”


다정하신가요? 아니 상냥하신가요? 친절하신가요? 그래, 이걸로 물어야지 라고 생각하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야도 점점 검은색으로 물든다. 꼭 물어보고 싶었다. 소생을 향한 동정인가요? 언젠가 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꼬박 2주를 누워있던 아쿠타가와가 병실에서 나왔을 때 처음 만난 사람은 나카하라였다. 아쿠타가와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병상에서 막 일어나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그래도 환자에겐 고기가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맛있는 것이라도 사줄 요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퇴원했어? 축하해.”

“감사합니다.”


누워있는 동안 나카하라가 깨어있는 아쿠타가와를 찾아온 적은 없었다. 아쿠타가와를 보던 의사가 나카하라가 몇 번이나 왔다 갔다며 할 말이 있는게 아니냐는 말을 듣고 나서 아쿠타가와는 생각했다. 미련을 가지게 되는 감정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뭐라도 먹으러 갈래? 퇴원 기념으로 내가-.”


나카하라는 따뜻한 사람이다. 친절은 잔인하다는 말을 일깨워준 사람이기도 하다. 아쿠타가와는 여전히 구분하지 못했다. 이 웃음이 자신에게만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에게 향하는 것인지. 혹여 자신에게만 향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다자이에게서 버림받은 자신을 향한 동정인지 아니면, 자신이 품은 감정과 같은 것인지.


“나카하라 씨.”


막상 입밖으로 내뱉으려 하니 두려워졌다. 그가 맞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그저 눈을 가리고 이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 감정이라는 허상에 빠져 지내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닌가 라는 번뇌를 했다.

나카하라는 맑은 하늘처럼 푸른 눈으로 아쿠타가와를 보았다. 자신의 부름 한 마디에도 웃으며 즐겁다는 표정을 보이는 것은 무슨 감정에서 나오는 걸까.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고민했는지를 되짚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카하라가 자신을 동정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나카하라는 아쿠타가와가 기대했던 감정으로는 보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이 이상으로 동정하지 말아주세요.”


그렇다면 여지도 남겨주지 않았으면 했다. 아예 희망까지도 짓밟아 그대로 죽게 두었으면 했다. 자신의 말에 당황하는 그 얼굴을 보며 아쿠타가와는 절망했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동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미련한 생각이었다.

나카하라를 뒤로하고 걸어도 나카하라가 쫓아오지 않았다. 쫓아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다행인 일인데, 가슴이 아팠다. 다자이가 사라지고 나서 일부러 그를 피해 다녔을 때보다도, 상처를 입었을 때보다도 아팠다. 이 고통이 곧 나카하라를 마음에 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감정의 흉터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로 아쿠타가와는 더 적극적으로 나카하라를 피해 다녔다. 만나게 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상태로 만나서 절대 그와 단독으로 대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나카하라가 자신을 볼 때마다 표정이 변했다. 그 얼굴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날에는 나카하라의 얼굴이 떠올라서 잠들지 못했다.






나카하라는 보스인 모리의 부름으로 방으로 찾아갔다.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질한 일들은 부하가 알아서 처리하니 때때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는 심심한 법이다. 포트 마피아에 있으면서 심심할 수 있다는 것을 나카하라가 알아차린 것도 간부가 되고 난 후였다.

모리는 나카하라의 예상대로 사담을 나누었다. 엘리스가 눈을 반짝이며 나카하라의 머리카락을 탐냈지만 잠시만 저쪽에서 그림을 그려 달라는 말에 순순히 놓아 주었다. 정말로 쓸모없는 수준의 잡담이었다. 이렇게까지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을 말하기 위해 여기까지 빙빙 돌리고 있는 건가 생각하던 중에 누군가가 모리의 방에 방문했다.


“검은 도마뱀의 아쿠타가와입니다.”

“어서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당연히 모리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쿠타가와가 맞은편에 앉은 나카하라를 보고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곧 시선을 돌렸다. 모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아쿠타가와를 보다가 나카하라를 보며 ‘잠시 일 이야기 좀 듣겠네.’ 라는 되지도 않는 양해를 구했다. 원래부터 상관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일부러 불러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장 이 자리를 떠나 아쿠타가와를 붙잡고 싶은 마음뿐이었기 때문이다.


“흠, 그런가.”


아쿠타가와의 보고를 담담하게 듣던 모리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시선 끝에 닿은 엘리스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다음으로 곁눈질로 아쿠타가와를 보는 나카하라를 보고 무표정한 아쿠타가와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그 이후는 자네에게 맡기지. 평소처럼 우리 쪽이 이익이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말야.”

“네.”


모리가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가볍게 목을 축였다. 목이 말랐다거나, 커피가 마시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미적지근해진 커피는 취향이 아니다. 그러나 눈앞이 나카하라가 제법 재미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보스와의 사담에 여유를 부리더니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나오고 있다.

다자이가 떠난 뒤, 아쿠타가와는 목줄 없는 개처럼 날뛸 것이라 생각해 사람을 붙여 정기적으로 받는 보고에 의하면 꽤나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마치 다자이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뭐,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사라지기를 바라긴 했겠지만, 기회를 엿보던 매가 드디어 기회를 잡은 것 뿐이겠지.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다자이군에게 착실하게 배웠을 테니까, 내 걱정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네.”


예상대로 아쿠타가와의 표정은 더 굳어갔고 나카하라는 냉혹한 표정이 되어 있다. 그러다 모리와 시선이 마주치고는 금세 차가웠던 표정을 감추며 앞의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 나카하라가 급하게 커피잔을 비우는 소리가 났다.


“그만 가 봐도 줗네.”

“네, 실례했습니다.”


아쿠타가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미련없이 등을 돌려 나갔다. 커피를 비운 나카하라가 잔을 내려 두었다. 다급함에 묻어 나오는 눈으로 모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보스, 저도 이만….”

“나카하라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카하라가 낭패라는 표정으로 모리를 보았다. 모리가 웃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카하라가 그 상태로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쿠타가와가 방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따라잡지 않으면 또 피해다닐 거란 생각에 초조해 졌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을 알고 있나?”


나카하라는 단번에 모리가 아쿠타가와를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쿠타가와의 고삐를 쥐고 있던 것이 다자이였고 다자이가 고삐를 놓고 도망가 버렸으니 당연히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르쳤던 다자이의 부하가 아닌가. 가족에 비유하자면 손자나 다름없는 존재를 그냥 놓아둘 리가 없다.


“아쿠가와는 고양이가 아닙니다.”

“고양이도 사람도 한 번 버림받은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을 걸세.”


그런 대우를 받고도 다자이를 따랐던 것이라면 더욱 그렇겠지. 아마 속으로 몇 번이고 버려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하며 따랐을 것이다. 마음의 동요는 곧 신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부서지기 전에 다시 잡아두는 건 좋은 일이긴 하나, 나카하라에게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둘 다 파멸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사람 다 중요하다. 승승장구하며 실적도 좋은 젊은 간부 나카하라와 조금 더 다듬어야겠지만 앞으로의 성장이 보이는 아쿠타가와.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모리는 전자를 선택할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나카하라는 그깟 젊은 나이에 흔들려 행동을 옮겨선 안 될 위치이다.


“저는 아쿠타가와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겁니다.”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카하라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마침 방으로 향하던 오자키에게는 최대한 굳은 표정을 풀며 인사한 후 빠르게 지나쳤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화가 났는지 모르는 오자키가 모리의 방으로 들어갔다.

모리의 기분이 좋아보였다. 기분이 좋은 것 보단 재미있는 일을 생각한 모양인지 웃고 있었다. 모리의 방에서 나온 나카하라의 기분은 좋지 않고 정작 방의 주인인 모리는 기분이 좋은 이 상황이라, 굳이 캐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카하라가 화난 얼굴로 나가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보지요?”

“하하, 누군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고 하며 나갔다네.”

“그 아이답네요.”


입을 소매로 가리며 오자키가 웃었다. 그래서 누군지 알고 일부러 찔러보았다는 건가. 나카하라의 사적인 사정까지도 알고 싶어 할 줄은 몰랐다. 아니면 나카하라가 누군가의 사정에 말려든 건가. 언젠가 나카하라가 답답할 즈음에 자신에게도 알려 주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차를 권하는 부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은 녹차로.”





아쿠타가와가 가는 길은 굳이 누군가를 붙잡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보고를 마쳤으니 이 건물을 나갈 것이다. 그것이 임무이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던 아쿠타가와는 분명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예상대로 입구로 향하자 막 건물을 나선 나카하라가 보였다.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부하들에게 제대로 답해주지 못하고 아쿠타가와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사람이다. 나카하라가 손을 뻗어 아쿠타가와의 팔을 붙잡았다. 


“아쿠타가와. 네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소생, 스스로도 사람과의 관계에는 미숙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나카하라 씨가 어떤 생각으로 소생에게 상관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붙잡힌 팔을 쳐냈을 것이다. 아쿠타가와는 나카하라 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으로 나카하라에게 붙잡힌 팔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널 동정하고 있다고 생각해?”


나카하라의 말에 아쿠타가와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군가에게 동정 따위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것들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전에는 동정이라도 좋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카하라에게서 동정밖에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끊어버리는 것이 나았다.

원래 부하들을 잘 돌보는 사람이었다. 다자이가 관찰로 사람을 판단한다면 나카하라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관계를 맺으며 사람을 돌본다. 자신은 그 부하 중 한명이고, 앙숙이긴 하나 파트너였던 다자이의 부하라는 카테고리 안의 사람일 뿐이지 않던가. 그런그가 어떻게 자기의 입으로 동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너라면 동정하는 사람을 위해서 보스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일어나서 뒤쫓아 올 거 같아?!”


아쿠타가와가 놀란 표정으로 나카하라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자이처럼 때린 것도 아니고 괴롭히지도 않았으며 건네는 말 한마디에 최대한의 호의를 담고 욕망이 가득한 손길을 친절이라는 단어로 뒤집어 씌웠던 행동들에도 나카하라의 감정을 모른다고 하니 화가 났다.


“내가 널! 좋아 한다고!”


나카하라의 그 말에 순간 세상에 정적이 흐른 것 같았다. 네? 라는 반문조차 나오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공간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었다. 나카하라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기 멋대로 다자이와는 달리 멋지다는 생각을 했고, 좋아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음에도 품었다.


“와인 같은 거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 알아듣기 쉽게 말해 주자면-.”


포트 마피아의 본부 건물 앞에서 이런 짓을 하면 어떻게 될 지는 나카하라가 가장 잘 알았다. 입소문을 타서 보스의 귀까지 들어가는 것에는 하루가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오자키는 반나절이면 알게 될 것이고, 조직원들 사이로는 삽시간에 퍼지겠지. 다자이가 있었더라면 배의 속도를 더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제대로 알게 해줬어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지금 알게 해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아쿠타가와가 가진 모든 감각기관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았으면 했다.


“널 사랑하고 있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툭, 하고 눈물이 흘렀다. 나카하라가 스위치를 눌러버렸다. 손을 뻗어 닦아주고 싶었지만, 손을 뻗어도 괜찮은 것인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쿠타가와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거짓….”

“나는 그런 거짓말은 안 해.”


결국 나카하라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장갑을 낀 손이 혹시나 눈자위를 누를까봐 조심스럽게 눈 아래를 훔쳐내자 아쿠타가와가 고개를 숙이며 울었다. 아쿠타가와는 감정을 토하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소생도… 나카하라 씨를, 사랑, 하고 있습니다.”


겨우 입 밖으로 낸 마음이 이제야 서로에게 닿았다.






일본어가 아니라 잘 전하기가 어려운거 같은데, 나카하라의 사랑은 愛, 아쿠타가와의 사랑은 戀입니다.

원어가 아니면 전혀 전해지지 않을 뜻이네요….

마지막에 사랑하고 있습니다가 아니라 연모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고 싶었는데 이건 또 한국어적으로 봤을 때 제가 내고 싶은 느낌이 아닌 거 같아서 사랑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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