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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반했습니다.

Fong 2016. 2. 20. 23:39

오이카게 전력 60분 : AU (자유)




“좋은 아침~”


연구실 출근시간 10분 전에 한 손에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안전하게 도착하는 여유를 부리며 들어오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얼굴이 해맑았다. 이제 학기가 끝나고 모든 채점도 끝났다. 성적은 이미 냈고 드디어 내일이 성적 마감일이다. 오늘까지 정정신청을 받는다고 했으나 그것도 어제로 끝났다. 오늘만큼은 적당히 연구실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6시에 칼퇴를 하더라도, 30분 정도 일찍 가더라도 그 누구도 자신을 붙잡을 사람은 없다.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오는 오이카와를 보며 먼저 와 있던 학생들이 인사를 건넨다. 3학기 생이자 연구실의 대표의 여유였다 3학기 생이 되어서 겨우 청소를 면제받았다. 가장 안쪽에 가장 큰 책상에 앉은 오이카와가 자신의 책상위에 커피를 놓고 컴퓨터를 켰다. 눈앞의 모니터 두 개를 켠 후 삼분의 이정도 남은 커피를 들이키다가 자신의 옆에 있는 응접용 테이블을 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단정하고 차분한 느낌의 학생이었다. 오이카와와 눈이 맞은 그 남자는 뻣뻣한 얼굴로 오이카와를 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교수님의 손님인가? 지도교수는 모래가 되어서야 외국에서 돌아온다. 그렇다면 아무리 봐도 학부생으로 보이는 이 학생은 누구일까?


“아, 안녕하세요. 오이카와 조교님.”

“누구?”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밤하늘 같은 눈동자였다. 밤을 새고 새벽 4시쯤에 저 멀리서 보이는 빛과 어둠이 만나는 부분의 색과도 같았다. 단정한 머리와 옷차림처럼 차분하고 곧은 느낌의 학생이었다. 정장이라던게 제복이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저런 얼굴이면 좋겠다, 라고 생각되었을 법한 그런 얼굴이었다.


“저, 저는 소프트웨어 학과의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응. 그런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두었다. 살짝 주위를 둘러보니 주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손님이 왔으면 미리 말을 해 주던가, 라고 살짝 짜증을 부릴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학부생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어젯밤에서야 오늘까지 정정신청을 할 수 있다고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아, 정정? 조금만 기다려봐. 무슨 과목이었지?”

“정보사회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책꽂이 한쪽에 정리해 두었던 성적표를 꺼냈다. 슥, 하고 한눈에 보자 A0 부근에 있는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A? 보통 이 점수대의 학생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 왜 찾아온 걸까? 컨닝이라도 했다고 고백하려는 건가? 오이카와는 성적표와 과제와 시험지를 한 번에 들고 카게야마의 앞에 두었다.


“A0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네. 분명 A+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낮게 나온 것 같아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기말 시험이나 과제에서 점수를 못 받은 거 같아서 확인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뭐라고? 도대체 어디서 A+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거야? 웃기지도 않아 정말. 카게야마라는 학생의 말을 들은 연구실의 맴버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오이카와를 보고 있었다. ‘내 채점은 절대 틀리지 않아!’ 라고 항상 자신하던 오이카와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채점 실수로 인해 단 한명도 점수를 올려준 적은 없다.


“그래? 그럼 거기 시험지 있으니까 본인거 찾아. 나는 과제 쪽을 찾을 테니까.”


짜증나. 오이카와는 표정을 구기지는 않았지만, 웃는 얼굴은 계속 유지했다. ‘언제나 웃는 얼굴에 머리도 좋은 멋진 오이카와 조교님’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오이카와가 찾은 과제 다섯 개 중에 3개는 만점이었다. 두 개는 팀으로 낸 과제였기 때문에 만점은 받지 못했다. 과제로는 채점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반대편에 앉은 카게야마쪽을 보았다. 중간고사는 30점 만점의 28점. 중간고사 최고점이었다. 같이 채점했던 동기들이 ‘이정도면 만점을 줘도 된다’ 고 하는 점수를 기어코 깎았다. 주관식 문제의 답변이 적절하지 않다 라던가, 전부 적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성적에서 A+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기말고사뿐이다.

자신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찾은 카게야마는 자신의 시험지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미간에 잡힌 주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생긴 주름일 것이다. 오이카와는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면서 자신의 책상 쪽으로 손을 뻗어서 파란색 팬을 집었다. 언제나 채점을 설명해줄 때 사용하던 펜이었다. 40점 만점에 30점. 엄청난 점수였다.


“저, 3번 문제는 왜 0점인가요?”


오이카와가 미리 출력해둔 3번 문제를 보았다. 가장 많은 지적과 불만족이 들어오는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를 만드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최근은 모든 콘텐츠에 스토리텔링이 들어가야 한다는 교수님의 의견에 따라 나오는 문제였다.

흐음, 하고 오이카와가 고개를 카게야마 쪽으로 기울였다. 카게야마쪽으로 오렌지 같은 향기가 났다. 남자에게서 날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은 향기였다. 움찔, 하고 놀랐던 카게야마는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오이카와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재미없어.”

“네?”

“재미없어. 진부해. 이거 교수님이 말한 그대로잖아?”

“배웠던걸 적은 답변이 0점을 받을 이유라고는 생각되지 않….”

“이 문제 기말고사 한 달 전부터 말하지 않았어?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줬다고 생각하는데.”


아 이런 학생은 매 학기마다 한두 명씩 있었다. 이번 학기는 없을 줄 알았더니 기어코 나타나고 만다.


“그렇지만….”

“창의력을 본다는 문제를 교수님이 말한 그대로 적는 게 정답일리 없잖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시험지를 넘겨보았다. 스토리텔링을 하는 시험은 10점, 나머지를 전부 만점을 받았다는 소리이다. 거짓말이지, 자신도 이 수업을 들었지만 만점을 받은 적은 없었다. 언제나 1, 2점씩 어딘가에서 깎였었다. 거짓말. 그럴 리가 없다. 스스로가 채점했지만 스스로의 채점을 믿을 수가 없었다.


“… 네.”

“다른 건 없지? A0에서 올려주기는 힘들어.”

“예. 아침부터 연락도 없이 죄송했습니다.”


꾸벅, 하고 책상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한 카게야마가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한 얼굴이었지만, 고쳐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한 학기동안 감사했습니다, 제법 예의바른 인사를 하고 연구실을 나갔다.


“꽤 예의 있네.”


방을 나가자마자 먼저 입을 연건 이와이즈미였다. 지금까지 찾아오는 학생들을 대부분 예의도 없었고 우기기만 잘 하는 학생들뿐이었기 때문에 정정을 위해 찾아오는 학부생을 그닥 좋게 보지 않았다.


“저런 학생 저는 처음 봐요. A+받을 점수라고 생각했었다니….”

“어디보자… 점수가… 이야, 이건 올만 한 점수네.”


저번에 왔던 A0였던 학생은 ‘자신은 지각도 하지 않고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라는 이유로 A+를 요구한다던가, 자신이 제대로 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깎인 점수를 만회해달라고 한다거나, 같은 한자의 한 획을 계속 잘못 그어서 감점을 한 것에 항의를 하는 등, 학부생 입장에선 그럴 듯한 이유지만, 채점자의 입장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유들이 많았다. 오죽하면 가만히 듣고 있던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편을 들 정도였다.


“정말이지, 짜증나. 저런 녀석 제일 싫어.”


조교가 귀찮다고 쫑알쫑알 말하는 오이카와였지만, 자신의 채점에 프라이드를 걸고 한다. 자신의 채점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전공을 하고, 해당 분야의 학위를 받는 자신의 지식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당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래도 다른 애들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지 않나?”

“그런 문제가 아니야. 왜 기말고사가 만점인 거야! 게다가 이 과제도! 중간고사도! 절대 이해할 수 없어. 학부생 주제에 어떻게 이걸 완벽하게 쓰는데!”


심통이 난 목소리로 오이카와가 입을 열자, ‘고작 그런 이유로’ 라는 표정을 지은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쉬었다. 누가 저런 걸 20대 중반이 살짝 넘은 해당 분야에 학위를 가질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게다가 저런게 연구실의 대표이고 교수님이 가장 신뢰하는 학생이라고 어디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아침부터 땍땍거리지 마. 때리고 싶어지니까.”

“왜 몰라주는 거야! 이와쨩이라면 알아줘야 하는 거라구!”


시끄러워! 오이카와를 향해 소리친 이와이즈미는 응접용 탁자가 대각선 자리만 아니었더라도 한 대 때리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마음속으로 곱씹었다.

그리고 다음날, 분명 다음 날 오기로 했던 교수님은 하루 일찍 돌아왔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시간을 잘못 계산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이카와는 당연하게 완벽하게 정하기 전의 성적을 교수님께 넘겼다.


“어라? 토비오 군 A0였어? A+로 올려줘.”

“네?”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오기로 해서, 다음 학기부터 우리연구실에 올 거니까. 마음 변해서 다른 쪽 가면 아깝거든.”

“그런 이유로….”


B나 C쪽이면 모를까, 이미 A인 학생을 더 올려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미 한 번 거절하지 않았던가?


“토오루, 조교면 학생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거 아니었어? 카게야마 토비오는 수석에 천재라고 불리는 학생인데.”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올려줘.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웃으면서 성적표를 보는 교수님의 발언에 네, 라고 대답하고 돌아온 오이카와는 납득할 수 없었다. 제 손으로 성적을 올려주면서도 손가락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왜! 어째서! 말도 안 돼!!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아- 정말 짜증나!!”


시끄러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와이즈미가 던진 켄음료가 오이카와의 안면에 원쿠션을 디디고 책상 위로 떨어졌다.





성적을 마감하고 졸업을 준비하기 위해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올려줄 수 밖에 없었던 학생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 여유따윈 없었다. 빨리 졸업하고 박사과정으로 들어가서 박사들이 모여 있는 연구실로 가면 그만이다. 조금 더 높은 학교로 가는 방법도 있다.

딱 한 학기, 재학중인 3개월만 보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 올려줄 수밖에 없었던 머리좋고 짜증나는 카게야마 토비오를 보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지나는 것이 가장 좋은 약이다. 학생인 카게야마 앞에서 언제까지 ‘항상 웃는 머리도 좋은 멋진 오이카와 토오루 조교님’을 연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학기정도는 분명 가능할 것이다.

방학 내내 오이카와는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학교에 왔다. 새벽까지 쓴 논문을 한번 훑어보고 수정된 부분을 교수님께 보여드리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한다. 그리고 8시 반에 나가서 카페라떼를 사서 들어오면 정확하게 8시 50분이 된다. 청소 담당인 후배들이 청소를 끝낼 시간이다.


“… 왜 여기에 있어?”

“아, 안녕하세요!”


기분 좋기 시작하려던 아침이 눈앞에 나타난 존재에 의해 무너졌다. 긴장한 얼굴로 문 앞에 서있다가 자신이 오는 것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왜? 어재서? 무슨 일로? 


“오, 오늘부터 신세지게 될 카게야마 토비오….”

“그러니까 왜 벌써 왔냐고.”


오이카와보다 살짝 작은 카게야마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전에 성적 정정하러 왔을 때, 오이카와 조교님… 아니, 선배가 이 시간에 오셨기에 이쯤 오면 된다고 생각해서 왔습니다.”

“아- 그래?”


천재라더니 정말 기억력 하나는 좋네, 문을 열고 연구실로 들어가자 오이카와를 향한 인사와 뒤에 따라 들어오는 토비오를 향한 시선이 따라왔다. 카게야마는 꾸벅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교수님이 언제 오라고 한 적도 없는데 알아서 개강 첫날에 일찍 오는 모습은 연구실의 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대기화면으로 되어 있던 컴퓨터를 다시 원래 상태로 돌려놓았다. 분명 자신의 앞에 앉아있어야 할 이와이즈미가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카게야마가 앉았다.


“이와쨩? 왜 그쪽으로 갔어?”

“교수님께서 조교 인수인계랑 쓸만한 후배님 잘 가르치라고 바꾸라고 했었잖아.”

“그런 말 들은 적 없어!”


선배 도서관 갔을 때 오셔서 말씀하셨었어요, 라고 2학기 생이 된 야바하가 말했다. 납득할 수 없는 배치이지만, 교수의 말은 절대적이다. 분하고 아무리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했다.

텃새라도 부릴까, 라고 생각했던 오이카와의 생각과는 달리 카게야마는 자신이 먼저 움직였다.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프린트한 서류를 알아차리고 바로 가져다준다거나, 물을 가져다준다거나, 7시에 온다는 걸 알고 8시 30분에 맞춰서 커피를 사오는 수고까지 들이고 있었다.


“카게야마.”

“네.”


책에 시선을 묻고 있던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카게야마 괴롭히지 마’ 라는 소리가 들려왔을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두 사람만 있는 공간이었다.


“왜 거기까지 하는 거야?”


내가 시킨 적도 없잖아? 카게야마가 사흘만에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것이 카페라떼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온 커피를 홀짝였다. 언제나 바로바로 대답하는 카게야마는 평소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저….”

“A+ 때문에 그래? 그거 교수님이 올리라고 해서 올린거야.”

“그건 아니고….”

“그럼 뭐야? 누가 보면 내가 협박하는 줄 알겠어.”

“그… 그…”


뭐야? 왜 얼굴이 빨게져? 귀까지? 내가 약점이라도 잡았나? 아직 안 보이지만, 반드시 잡아서 약올릴 것이다. 오이카와 선배님이라며 우러러보게 해줄 것이다. 이 우수한 선배인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바, 반했습니다.”

“…응?”

“저번 학기에 오이카와 선배를 보고… 그… 반해서 대학원에 왔습니다.”


거짓 없고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자신에게 고백하는 후배에게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멋지고 똑똑한 오이카와 조교님은, 예비 석사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이 그 짙은 남색의 눈동자로부터 눈을 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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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력 60분이 아니에요! 두 시간 넘게 썼습니다. 90분 안에 끝낼 줄 알았어요.. (?


게다가 급전개.. 죄송.. 합니다..ㅠ.ㅠ.ㅠㅠㅠ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현실감이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일부분은 실화니까요...


조교 그만하고 싶습니다.



아 그래고 영업(?) 해주신 미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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