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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사사] 두 번째 첫사랑

Fong 2017. 4. 22. 14:08

A-2 타입. 인데 거의 두 배정도 글자초과를 해버렸네요.. ()

커미션 넣은 분께서 전문 공개를 원하셔서 전문 공개합니다.



“사사키 씨. 이 분이 오늘부터 사사키씨가 가이딩 할 분이세요.”


막 기획서 작성을 마친 사사키에게 다가온 팀장이 프로필이 적힌 서류 몇 장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사사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가이딩이라니. 사회 부서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게 된지 3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본래 이 회사에 입사한 취지와 목적에 맞는 일을 맞게 되었다.

사사키가 입사한 회사는 보안 회사였다. 정부와 협약을 맺어 기습적으로 출현하는 이생물을 처리하거나 경호와 같은 일들을 처리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의 모체는 마피아라는 둥 여러 소문이 있지만, 제대로 사회 환원 사업도 진행하는 제법 규모가 큰 회사이기에 사사키는 그것을 뜬소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는 사무원의 반 이상은 가이드로 센티넬들이 회사 밖에서 전투나 일을 수행하고 올 동안 가이드는 사무원으로서의 일을 해야 했다. 기본적으로는 사무원의 월급을 받고 가이딩할 센티넬이 생기면 그에 따른 추가수당이 발생하는 조금 특수한 기업이었다.

사사키는 가이드로 입사했으나 지금까지 자신과 맞는 센티넬은 없었다. 물론 다른 센티넬의 임시 가이드로 몇 번 가이딩을 해준 적은 있었지만, 전담으로 맡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오늘 처음으로 자신에게 전담된 사람이 생긴 것이다.

나카하라 츄야, 사사키는 그 이름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부와의 협약에 항상 거론되는 센티넬이었다. 사실 나카하라보단 그의 전담 가이드인 다자이 오사무가 더 유명했다. 가이드이면서도 현장에서 센티넬을 서포트하여 전투에 참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기를 다룰 줄 알기에 마피아라는 소문을 몰고 다녔던 남자였다.


“이 분… 전담 가이드가 있지 않으셨나요? 가이드 분도 전투가 가능하셔서 현장에서 서포트 한다고 들었는데요.”

“그게 말이죠… 행방불명이래요.”

“네?”


팀장은 난처하게 웃었다. 사실 팀장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지만 전달받은 내용은 다자이 오사무라는 가이드의 행방불명으로 제 1후보였던 사사키 노부코로 전담 가이드를 붙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사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어서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흘 전부터 행방불명이 되어서… 지금 그 센티넬이 3페이즈까지 넘어가서 지금 강제 수면으로 본사로 이송중이에요.”


사사키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팀장을 바라보았다. 회사에서는 센티넬의 상태를 총 3가지 상태로 나누고 있다. 팀장이 말한 3페이즈의 경우 능력 폭주로 걷잡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하며 이곳에서는 강제 수면을 취하게 한 후 가이드에게로 이송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2페이즈는 자신이 능력을 사용한 이른바 활성화의 상태였고 1페이즈는 전혀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를 말했다.


“제가 어디로 이동하면 되는 거죠?”

“두 시간 후에 지하 3층으로 가면 담당자가 알려줄 거에요.”


이생물과의 전투는 굉장히 고된 일이라고 들었다. 게다가 사흘 전부터 가이딩을 받지 못한 상태로 3페이즈까지 넘어갔다는 이야기에 사사키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이드가 없는 상태에서도 자신의 몸이 망가지기 직전 까지 싸우다가 3페이즈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사사키의 남편을 생각나게 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긍지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싸우다가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그를 생각하니 입이 썼다. 두 번째로 맞게 된 센티넬도 같은 말로를 밟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사키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두 시간이라니… 너무 느린 거 아닌가요?”

“그 정도면 빠른 거에요. 정부 전담 가이드팀이 괜히 현장 보조원이겠어요?”


사사키의 옆자리에 앉은 다른 직원이 사사키를 안심시키려는 듯 입을 열었다. 본인이 정부 전담 가이드팀에 있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한 말이었다. 사사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말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두 시간은 아마 최대 시간일거에요. 도착하자마자 사사키씨한테 연락이 올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이래봬도 회사가 센티넬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데요. 사사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계속 초조한 마음에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도 사사키를 핀잔주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맡은 센티넬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공감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옆자리에 앉은 직원의 말대로 한 시간하고 이십분쯤 지나자 내선으로 연락이 왔다. 센티넬이 도착했으니 내려와 달라는 전화였다. 사사키가 보고를 하지 않아도 팀장이 먼저 다녀와요, 라고 말해준 덕분에 사사키는 빠르게 내려갈 수 있었다.

사사키가 도착한 병실은 생각보다 추웠다. 영안실을 착각하고 들어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지만, 센티넬의 상태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최대한 폭주를 막기 위한 방책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에 안심하고 산소 호흡기에 온갖 장치에 몸의 상태를 피드백 해주는 기계들을 훑어본 사사키는 전담 직원이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손을 뻗었다.

손이 뜨거웠다. 그 차가운 방에서도 좀처럼 식지 않을 것 같은 열기를 품고 있었다. 기계들은 이미 위험 수치를 넘어서 붉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본 전 남편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 같아 착잡했다.

사사키가 가이딩을 진행할 동안 컴퓨터로 모니터링 하던 여성이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검은 머리카락에 아래쪽의 머리카락은 흰색으로 물든 남자 역시도 뒤에  서서 경과를 보고 있다가 사사키의 뒤에 조심스럽게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5분 쯤 지나기 시작하자 점점 하향곡선을 보이기 시작한 수치에 금발의 여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서 있던 과묵해보이는 남자 역시도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사사키는 나카하라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체온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 같이 뜨거웠던 손이 점점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방이 춥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금 더 가이딩을 진행하셔야 할것 같은데, 앉아서 하세요.”

“감사합니다.”


어느새 옆을 다가온 금발의 여성이 사사키에게 말했다. 친절하게 빨대까지 꽂은 오렌지 쥬스를 건네주었다. 차갑게 돌던 냉방은 이미 전원을 껐다. 붉은색을 표시하던 숫자들도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몇몇 기계에서는 녹색 빛을 내는 숫자로 표시되기도 했다. 사사키는 자신에게 음료를 건넨, 아마도 이런 상황이 익숙한 금발의 여성이 자신보다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그녀 역시도 가이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사키씨… 맞으시죠? 사사키씨가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나카하라 선배가 평소처럼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사흘이나 강제 수면에 들어가셔서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흘씩이나? 사사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자, 뒤에서 말없이 모니터를 보고 있던 남자가 히구치, 하고 조금 강하게 그녀를 불렀다. 히구치라 불린 그녀는 곧 실언이었다며 잊어달라는 말을 덧붙이며 황급히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왔다.

1페이즈의 상태로 돌아오기까지는 두 시간이나 걸렸다. 곧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진 상태였다. 히구치는 사사키의 팀에서 조기퇴근을 해도 된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1페이즈로 떨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히구치가 나카하라에게 씌워져 있던 마스크를 벗기고 능숙하게 링거를 주사했다. 투명하고 하얀 것을 보니 포도당인 것 같았다.

사사키는 제대로 된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나카하라가 일어나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말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또 보게 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카하라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3페이즈로 넘어가서 강제수면을 당한 후 일어난 것 치고는 가볍고 편안했다. 약에 절여져서 잠들었던 감각보단 숙면을 취한, 집에서 푹신한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라고 생각하다가 이 개운한 감각은 가이딩을 받은 후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10년이나 함께 했던 다자이는 조직을 떠났다. 가이드로서 최상의 합을 보이던 다자이는 임무 전날 나카하라에게 고했다. 이곳을 나가겠다고 나카하라에게 밝혔다. 항상 헛소리를 하던 사람이었던지라 아 그래? 하며 넘겼었다. 그날 답지 않게 잔잔하게 미소지으며 그 동안 즐거웠다는 소리를 한 것을 상부에 보고했었더라면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몸에 연결된 여러 장치들을 때어냈다. 분명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한계치를 넘어 소리를 꺼둔 모양이었다. 모든 수치가 0으로 변하면 깨어났다는 것을 알고 사람이 올 것이다. 나카하라는 침착하게 몸에 붙여진 것들을 때어내고 마지막으로 링거 바늘까지 뽑아내고 웃을 추스릴때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일어나셨나요?”


히구치는 서류를 들고 있었고 그 뒤에는 식판을 들고 오는 직원이 보였다. 일어나자 마자 뭘 먹이려는 것을 보니 나카하라의 정신적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바로 아침부터 일터로 보낼 모양인 것 같았다. 이제 와서 너무하다며 거부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것보다 더 한 상태에서도 전투에 임했지 않았던가.


“가이드 찾은 모양이네?”

“아, 네. 후보인 분이 계셨습니다. 본사에 계셔서 조금 가이딩이 늦어졌습니다.”


히구치가 나카하라에게 서류를 건네주려는 것을 보고는 식사를 먼저 한 후에 보겠다고 둘러댔다. 사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와인이나 한 잔, 아니 한 병마시고 정신을 잃은 듯이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히구치가 자신에게 주려는 서류가 새로운 가이드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카하라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10년이나 함께 했던 가이드도 떠나는 판에 이제 와서 새로 매칭된 가이드를 알고 친분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또 떠나갈 것이 뻔했다. 현장 보조원도 아니고 본사에서 근무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붙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카하라는 억지라 죽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침 일찍 다시 현장으로 복귀해야 했다. 같이 본사로 왔다던 아쿠타가와는 이생물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은 즉시 출발했다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바쁜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센티넬은 자력으로 원래의 상태, 1페이즈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인 휴식과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매우 느린 시간이 걸리지만 1페이즈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보통 센티넬들은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면 곧바로 가이딩을 받고 1페이즈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대기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나카하라는 돌아오자마자 곧장 휴식을 취했다. 자신의 전담 가이드를 현장 보조요원으로 발령해 달라는 요청서조차 재출하지 않아 가이딩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사사키가 가이드로 배정되었음에도 3페이즈의 상태에서 강제 수면 조치를 당하고 본사로 귀환한지 딱 세 번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 날도 나카하라는 자정이 된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다자이가 행방불명이 된 후에 불면증으로 인해 항상 그 시간에 일어났던 수면패턴이 점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몸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자정이고 몸은 편안한 느낌이었지만, 정신은 온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것이 분명한 상태였다.

나카하라는 이제 익숙하게 몸을 일으켰다. 손을 움직여 몸에 붙은 것들을 때어내려는 순간, 한쪽 손에서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카하라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처음 보는 여성이 자신의 손을 잡고 간이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지? 라는 생각은 순식간에 그녀가 가이드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머리로는 이해한 상태였지만 이성적으로는 받아드리지 못했다. 나카하라의 최초의 가이드는 나카하라를 돌봐 주었던 오자키라는 여성이었는데, 나카하라에게 있어 오자키는 이성이라기 보단 보호자에 가까웠다. 그 다음으로 만난 가이드가 다자이였다. 즉, 나카하라는 지금까지 이성의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아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어디 가이딩 뿐이랴, 어릴 적부터 센티넬로서의 충분한 자질을 보인 덕에 회사와 연결되어 있는 마피아에서 부터 전투에 참가하느라 사적으로 여성과의 만남이나 접촉을 가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나카하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처했다.

일단 손을 빼고 싶었다. 처음 보는 여자와 손을 잡는 취미는 없었다. 그래도 이것은 가이딩이다. 그녀는 철저하게 일이라 생각하고 잡았을 텐데 나카하라 혼자서 이상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으려다가도 조금만 움직여도 잡히는 말랑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손을 말없이 빼는 것 보다 우선 깨워서 쉬게 하는 편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우선 말을 걸어서 깨우고, 그 다음에 손을 뺀 후에 가이딩을 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된 이상 친근한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너무 좋은 사람처럼 티내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무례하지 않게….


“나카하라씨?”

“네!?”


사사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화들짝 놀란 나카하라가 놀라서 자신의 손을 거두었다. 손에 갑자기 힘을 주는 바람에 링거로 피가 역류했다. 정말 놀란 표정의 나카하라를 보고는 사사키가 살짝 웃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나카하라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쩔 줄을 몰랐다. 자신이 지금 몸에 여러 기구들을 달고 있느라 옷을 제대로 여미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고 황급히 몸에 붙은 것들을 때어내며 옷을 여몄다.


“바, 방금 일어나서 제가 경황이 없어서… 그….”


말을 해야 하는데! 가이딩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고 이름을 소개하는 정도로 끝내고 빨리 돌려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처음보는 여성에게 반신이긴 하나 맨살을 보인데다가 여성의 웃는 얼굴에 붉게 달아오른 적은 처음이었기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이미 익숙하니까요.”


그렇겠죠. 이번으로 세 번째인데. 혹시 강제 수면 중에 이상한 잠꼬대는 하지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나카하라만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자신의 업보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줄곧 웃던 사사키는 한번 숨을 깊게 내뱉고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나카하라 씨는 왜 전투 후에 저를 호출하지 않으시는 거죠?”


사사키는 세 번째로 강제 수면으로 돌아온 나카하라를 맞이하면서 오늘 만큼은 꼭 얼굴을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화를 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가이드가 행방불명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그것에 관한 뒷이야기도 히구치에게 들은 지 오래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사키는 기분이 나빴다.


“제 이름은 알고 계신가요?”

“… 아뇨.”


할 말이 없었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는 신뢰관계가 맺어질 때 더 많을 효과를 낸다. 단순히 제어 가능하게 해줄 뿐 아니라 더 큰 위력을 나타낼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것을 모르는 센티넬과 가이드는 없다. 일방적으로 피한 것은 나카하라였기에 스스로도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저는 당신의 가이드인 사사키 노부코 입니다. 나카하라씨. 저를 믿어 주세요.”


진중한 표정으로 나카하라의 눈을 맞춰오는 사사키의 눈에 나카하라는 할 말을 잃었다. 10년간 앙숙처럼 지내왔던 다자이보다도 더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카하라의 손을 잡아오며 이야기하는 사사키의 모습에 나카하라는 네,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사키라면 믿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겨왔다.

다음 날 나카하라는 가이딩을 받기까지의 시간이 지연된다는 이유로 자주 출몰되어 사람이 드문 지역이 아닌 도시 내부 담당 부서로 바뀌었다. 상당히 일방적인 배치였지만 같이 일하던 히구치나 아쿠타가와도 같이 이동되었으니 그나마 나았다. 자신이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배치는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부서가 바뀐 이후로 이틀은 본부에서 놀다가 사흘째 아침에 일이 터졌다. 주위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라는 명령이 붙었지만 나카하라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이 최소한이었다고 주장하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도시 내부에 나오는 이생물은 외곽에 비하면 너무나도 약했다. 이정도의 수준이라면 굳이 가이딩을 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가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던 사사키의 얼굴이 생각났다. 고민하던 나카하라는 결국 본부로 귀환하는 차 안에서 가이드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넣었다.


“잘 다녀왔나요?”


웃으며 나카하라를 맞이하는 사사키의 얼굴에 나카하라가 잠시 주춤거렸다. 비웃음으로 자신을 맞이한 사람은 있었으나 이렇게 반갑게 나카하라를 맞이해준 사람은 없었다. 나카하라가 주춤거리며 머뭇거렸다.

사사키는 문득 자신이 처음으로 전 남편에게 가이딩을 해주던 날이 떠올랐다. 그 역시도 나카하라처럼 가이딩을 위해 온 자신을 보며 머뭇거리가 미소를 지었었다. 나카하라도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사사키를 보며 미소를 보였다. 안심한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게다가 사사키가 먼저 손을 뻗어 장갑을 벗기고 손을 잡아 주자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까지도 멋쩍게 손을 내밀 던 그와 비슷하다고 느껴서 마치 결혼 전의 상태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제가 아는 사람을… 닮으셨네요.”


호감가는 행동이라는 걸까, 아니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라는 걸까. 나카하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사사키가 자신을 걱정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걱정 어린 시선으로 한 손을 잡고 그 손에 난 상처들을 쓰다듬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사키보다 훨씬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이런 상처들을 달고 있다는 것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런 상처를 입으면서도 최대한 가이드 없이 버티려 했다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담당자가 와서 1페이즈로 떨어졌는지 확인하겠다고 올 때까지 사사키는 계속 그 손을 잡고 있었다.

여자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사사키가 특별한 걸까. 그날 하루 종일 나카하라는 사사키가 잡아 주었던 손을 바라보았다. 쥐었다 폈다 하며 그 감각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하얗고 얇은 손가락이 나카하라의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사사키가 자신의 손을 잡아 줄 것을 생각하니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긴장되면서도 기뻤다가, 떨리면서 행복하고 또 그 손을 잡고 싶은 기분에 나카하라는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며 밤잠까지 설치게 되었다.

처음 며칠간은 사사키만 떠오르면 가이딩 때 만졌던 그 사소한 접촉이 생각나서 한밤중에 괴수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은 기분이 들다가, 사사키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벙찐 표정으로 사사키의 얼굴을 보던 자신의 미련한 행동에 이불을 차기도 했다. 점차 사사키가 가이딩을 해주는 동안 나카하라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자는 제안을 했다.

사사키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했다. 센티넬과의 친분관계도 중요했고 무엇보다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카하라와 함께 있으면 전 남편의 가이드였던 시절이 생각났는데, 사사키는 그 향수에 젖는 것을 좋아했다. 나카하라와의 만남의 목적이 항상 향수에 젖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카하라는 여성과 사적으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지만 상당히 매너도 좋았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알았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벌써 인기가 넘쳐났을 사람이었다. 특히 웃을 때 사사키의 눈을 보며 웃는 모습이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되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 했다.







무더위가 조금 질 무렵, 나카하라는 서툴게 데이트를 신청해 왔다.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는 말을 꺼냈다. 평이 좋은 액션 영화였다. 센티넬로써의 싸움이 액션 영화보다 더 자극적일 텐데 왜 이 영화를 보려고 했을까, 고민하다가 영화관에 들어서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연인 예매율 1위, 라는 뻔한 홍보를 그대로 믿은 모양이었다.


“나카하라씨는 정말 이거 보고 싶으세요?”


돈을 지불하기 직전, 사사키가 옆으로 다가와서 나카하라에게 물었다. 나카하라는 네?! 하며 놀란 표정으로 사사키를 보았다. 분명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잘못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나카하라가 당황스러웠다.


“그….”

“같은 시간대에 다른 영화는 없나요?”


사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액션 영화라도 현실을 따라올 정도의 것은 없었다. 센티넬끼리의 대인전투 훈련도 액션영화보다 재미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사키를 배려한 선택이었는데 사사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사키는 나카하라가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로맨스 영화로 바꾸어 예매했다. 실연당한 남녀가 서로 만나 조금씩 사랑을 하는 이야기였다. 나카하라는 자신과 사사키의 관계와 비슷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의 가이딩, 마셨던 커피와 식사들에서 나카하라는 사사키에 관한 정보를 몇 가지 알게 되었다. 사사키는 전에는 다른 기관에서 가이드로 일을 했었으며 누군가의 담당 가이드였다. 게다가 처음 만났던 가이드와는 결혼을 한 사이였으나 첫 가이드, 즉 전 남편은 이미 사망했다. 그리고 나카하라가 두 번째 가이드라는 것이다.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사키인지라 이 정도를 들은 것 만으로도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카하라도 자신의 정보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사키는 나카하라를 관찰함으로 정보를 알아냈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다자이와의 일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영화도 괜찮죠?”

“네. 그럼요.”


카드를 내밀어 결제를 끝낸 나카하라와 사사키는 영화관으로 들어가 배정된 좌석에 앉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팔걸이에 손을 올리다가 손이 닿았다. 나카하라가 먼저 놀라며 손을 빼내자 사사키는 잠시 사고가 정지한 사람처럼 잠깐 팔걸이를 쳐다보고 웃으면서 나카하라를 보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는 행동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모든 순간마다 사사키의 기억들이 사사키 곁에 맴돌며 비슷하거나 같은 행동들을 떠올리며 행복을 느끼는 얼굴이었다. 나카하라를 보며 웃고 있지만 그것은 나카하라를 보며 웃는 웃음이 아니었다. 아마 이름도 모르는 사사키의 전 남편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이 불편했다. 그 어떤 색다른 것을 해보려 해도 사사키는 이미 전 남편과의 추억을 먼저 떠올려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딩을 받을 때 나카하라 역시 전 파트너였던 다자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이었고 지금은, 이 감정은 일이 아닌 개인적인 부분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사키의 모습을 볼 때 마다 쓴웃음을 짓게 되어도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 모든 기억들을 자신의 기억으로 덮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극장의 불이 꺼지고 오직 스크린에서만 비치 흘러 나왔다. 어두운 공간에서 바로 옆에 보이는 사사키를 보며 단 두 사람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예약해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사사키가 재미있을 것 같아 고른 영화였지만 사사키에게는 영 식싱한 이야기였다. 오히려 나카하라가 더 푹 빠져서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며 감성에 젖은 눈으로 이야기 했었다. 이런 순수한 부분 까지도 닮았구나 싶어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다가 나카하라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마주친 눈이었지만 나카하라는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사사키를 보다가 음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웃고 있다가 자신을 보고는 지은 웃음이었다. 이 상황을 모면해야 겠다는 생각에 사사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네, 저도요.”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나카하라는 정면과 바닥을 보고 있었고 사사키는 나카하라를 보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걷는 시간이 지속되자 나카하라가 조금 더 천천히 걸었다. 보통 이런 말을 하면 걸음이 느려졌기 때문에 그에 맞춘 것이었다. 사사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카하라를 보았다. 나카하라도 사사키의 걸음이 늦춰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사사키를 보았다.


“왜 그러세요?”

“네? 나카하라씨가 갑자기 천천히 걸으셔서 어디 불편하신 줄 알고….”

“그럴리가요. 저는 사사키씨가….”


제가요? 라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사사키를 보고는 나카하라는 아닙니다, 하고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자각하며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더 괜찮은 기분이었다.

나카하라는 사사키의 오피스텔 근처까지 데려다 주고는 다시 본부로 돌아갔다. 사사키는 왜 나카하라가 자신의 말을 듣고는 속도를 늦추었는지, 또 왜 자신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분명 즐거웠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지 않던가. 마치가 전 남편과의 연애를 하던 것처럼, 기쁘고 조금은 설렘이 감도는 시간들이었기에 사사키는 나카하라와의 시간이 즐거웠다.

전 남편은 비슷한 나이였지만, 나카하라는 사사키보다 어리다. 그렇기에 나카하라에게서 첫 연애에서만 느끼는 풋풋함이 사사키를 향수에 젖게 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사사키는 나카하라가 왜 쓴 웃음을 지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카하라와 함께 했던 시간의 기저에는 전 남편이 항상 있었다.

상당히 실례이지 않은가. 나카하라는 자신을 향해 명백한 이성으로서의, 연애 상대로서의 호감을 느끼고 있고 사사키 역시도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과 겹쳐 보고 있었다는 것이 나카하라에게 못할 행동을 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사과해야겠네.”


전 남편과 나카하라는 달라도 한참 다른데, 왜 그랬을까.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나카하라가 신기할 정도였다. 동시에 그렇게까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내일 만날 것이라 생각했던 나카하라와는 생각보다 빠르게 만날 수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이생물에 의해 깊은 새벽에 호출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카하라가 본부에 돌아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이생물 출현의 신고를 받았다. 사사키와 식사를 하고 온 날은 항상 나카하라의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나카하라는 빠르게 장갑을 챙겨 차에 올랐다. 게다가 전투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이번에 나타난 이생물은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은 종류라고 합니다.”

“그래봤자 뭐 공격하거나 부수거나 둘 중 하나겠지 뭐.”


히구치의 보고에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자연스럽게 인이어를 장착하고 통신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했다. 팔에 3페이즈에 들어갈 경우 울리는 경보 장치를 찼다. 히구치는 보고서의 내용에 의문을 품고 있었으며 상부 또한 그랬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이생물체는 없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나카하라 선배가 선두에 서고, 아쿠타가와 선배가 후방 지원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라고 하는데, 그대로 할까요?”

“그러자.”


이생물체가 나타났다는 현장에 도착했는지 차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나카하라가 차 안에 걸쳐진 시간을 읊고 작전을 시작하겠다는 보고를 마친 후 마치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고요한 현장에 발을 디뎠다. 보통은 전부 부숴져 있거나, 부상자가 있다거나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한 것이 정상인데, 유독 조용한 것이 이상했다.


-“선배, 전부 대피했다고 합니다.”

“대피? 구경꾼들이나 기자들은 어딜 가고?”

-“지… 의하면… 선… 조….”


전파 노이즈가 심했다. 보통 이렇게 심한 방해 전파가 나오지는 않는다. 지직거리는 소리에 히구치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카하라가 무슨 말을 대답하더라도 아마 히구치도 제대로 듣지 못할 것이다. 외곽지역도 아닌데 전파가 이상한 현상은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거물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오랜만에 몸 좀 풀겠네.”

“맞아 맞아- 사람이 가끔 몸도 풀고 그래야지. 안 그래? 츄야.”


목을 좌우로 가볍게 꺾으며 나카하라가 입을 열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에 나카하라가 시선을 돌리자 왼편에서 너무 잘 알아서 한 대 때리고 싶은 사람이 걸어 나왔다.


“다자이…? 야, 너 대체…!”


나카하라가 저벅저벅 그를 향해 걸어갔다. 대체 어디로 어떻게 사라지면 GPS까지도 따돌리며 종적을 감출 수 있는가. 무슨 일이 있어 본부에서 무단으로 사라지고 나카하라가 폭주를 시작할 때에 맞추어 현장에서 사라졌는가. 왜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었으며 뻔뻔하게 이제야 나타났는지도 묻고 싶었다.

그리고 대체 파트너였던 자신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모든 종적을 감추어야 했던 이유도 그 입으로 듣고 싶었다. 다자이의 얼굴만 보고 그 손에 쥐어진 사람을 발견하기 전 까지 잔뜩 화를 내려고 했다. 익숙한 밤하늘의 색과도 같은 머리카락의 여성을 발견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츄야의 새로운 가이드라면서? 뭐라고 부르더라…?”

“사사키씨!!”


음, 그래. 사사키 노부코. 디저트의 이름을 부르듯 웃으며 다자이가 자신의 발 앞에 그 손에 쥐고 있던 사사키의 멱살을 던지듯 놓았다. 얼굴은 머리카락에 의해 가려져 있었지만, 사사키가 확실했다. 오늘 함께 영화관에 갔을 때 입었던 연한 갈색의 치마와 하늘색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얼굴부터 목, 가슴 부근까지 피로 흥건했다. 게다가 바닥에 던져졌을 때 이미 정신을 잃었는지 조금의 반항도, 신음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유감이야. 츄야.”

“다자이, 너 지금 네가 뭘 했는지는 알고…!”


다자이와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앙숙으로 유명했지만 센티넬과 가이드로서의 합은 가장 잘 맞는 조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붙어 다녀야 했다. 얄밉게 서로를 놀리거나 제아무리 짓궂은 장난이 얼마나 하겠어, 라는 생각을 뒤엎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행동 까지도 서슴치 않는 사이였다.

하지만 나카하라의 눈앞에서 벌어진 이건, 짓궂은 장난을 넘어선 부류였다. 피해의 범위가 나카하라에게서 그치는 것이 전부였다. 나카하라가 아닌 주위 사람을 건드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카하라 스스로도 알았다. 순간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이 능력을 한계치 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히구치나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인이어를 통해서 당장 후방으로 돌아오라는 소리가 들려야 했으나, 들리지도 않았다. 들린다 하더라도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폭주로 병상에 누웠다가 지금쯤 죽어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정말로 정말-.”


나카하라가 빠르게 다자이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다자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두 발자국 떨어져 나오며 가볍게 피했다. 오히려 이상황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유감이야.”

“다자이!!!”


분노에 가득 찬 나카하라가 주먹을 휘두르려다가 허벅지를 스친 고통에 그 근원지를 살피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순간, 마치 빛을 이용한 3D아트로 된 방안에 갖힌 사람처럼 주위가 일렁이며 환경을 바꾸었다. 분명 같은 새벽녘이었는데 가로등 때문인지 조금 더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나카하라의 머리를 잡고 강하게 흔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카하라씨!!”


아쿠타가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영문도 모르고 아팠던 허벅지가 아쿠타가와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쿠타가와가 왜? 라고 자각하자마자 먹통이었던 인이어에서 히구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환상이에요 선배!!”


그 말을 들은 순간 자신이 후려치려 했던 사람이 현장에 도착한 다른 센티넬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눈앞에 던져졌던 사사키였던 인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3페이즈까지의 한계치를 알려주는 측정기기다 시끄럽게 울어댔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눈앞에서 액체와도 같은 형태의 이생물체가 찢어발겨지고 있었다. 아쿠타가와의 능력인 것 같았다. 분명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 모든 것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소리도 벙벙하게 들려오고 코에서도 무언가 흐르는 것 같았다. 손을 들어 닦아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이 감기며 시야가 흐려졌다.

이게 뭐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진짜 사사키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나카하라가 안도했다. 정말 센티넬은 못해먹을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직업, 10대 시절부터 암암리에 굴려져 왔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음지에서 양지로 무대를 바꾸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금 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정부와 협약을 맺은 기업의 전투요원이라는 제법 양지의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지의 일에 동원되어 이생물이 아닌 사람을 죽여야 했던 어느 날, 다자이가 달도 별도 없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던 것이 생각났다.

상대편 센티넬에 의해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뒤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를 읊은 사람처럼 말했었다. 그 목소리가 등 뒤와 인이어에서 들려왔을 때 욕을 한바가지를 해주며 쥐어 패고 싶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혹독하고 치열했었다. 이생물은 찢어 놓으면 그만이었지만, 사람은 제대로 목숨을 끊었는지 확인해야 했으며 가이드는 포로로 데려가야 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하며 살아야 할까, 차라리 지금 죽는게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 순간 엄습해 오는 상처의 고통에 나카하라는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쪽을 선택해야 했었다.

다자이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흙탕물 속에서 살아남아 앞으로 나아가는 전우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감쪽같이 살아져서는 나카하라의 앞에 나타나서 나카하라의 새로운 가이드를 죽였다. 사람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면서 사람을 죽였다.

다자이 오사무는 배신자이다. 거짓말쟁이다. 위선자이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나카하라는 자신의 뇌를 으깨는 듯한 두통에 눈을 떴다.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웃던 다자이는 없었고 새하얀 천장만 보였다. 생기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삭막함의 그 단어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탄생한 방에 누워 있었다.

3페이즈에 접어든 센티넬을 위한 격리실이었다. 한동안 이 격리실에 오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격리실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카하라가 몸을 일으키고 평소처럼 몸에 부착된 것들을 때어내려다가 침대에 머리와 팔을 기대로 엉덩이는 의자에 걸친, 제법 불편한 자세로 잠든 여성이 보였다.

사사키였다. 기도하듯 두 손으로 나카하라의 손을 쥐고 잠든 모습에 자신이 본 것이 꿈과 환각이라는 사실이 감사했다. 사사키는 죽지 않았다. 이렇게 옆에 살아서 자신의 가이딩을 하다 잠들었지 않은가. 사사키는 집에서 쉬다가 달려 나왔는지 제법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불편할텐데, 어떻게든 편한 자세로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흔들어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우선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사사키의 손에서 빼나고 이불을 덮어줄 생각으로 움직였다.

사사키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빼내는 것에는 성공하였으나 사사키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희미하게 눈을 떴던 사사키가 나카하라를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나카하라를 두 팔로 껴안았다.


“나카하라씨! 정말… 정말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진심으로 안도하는 사사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되었다. 그것도 잠시, 주위의 기계에 자신의 몸 상태를 채크하기 위에 상체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우선은 사사키를 먼저 진정시키는게 더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사키는 마치 울 것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너무 걱정했어요. 이틀이나 눈을 못 떠서…. 계속 가이딩을 했는데… 나카하라씨가….”


울음을 참는 목소리였다. 이틀이나 잠들어 있었다니. 나카하라의 짧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사사키의 전 남편은 폭주를 감당하지 못해 세상을 떴다고 들었다. 죽음 까지도 전 남편을 겹쳐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나카하라는 부드럽게 사사키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제 사사키의 전 남편의 그림자에서는 벗어나고 싶었다. 이 이상 담아두었다가는 고백도 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사사키의 곁에 있는 것도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헤어질 수 있는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가 아닌 연인으로 머무르고 싶었다.

하지만 사사키는 어떨까? 나카하라는 그 점에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큼 사사키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고백을 하면 다시는 사사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과 영영 볼 수 없는 것. 어떤 것이 더 힘든 일인지는 굳이 하나하나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사키씨.”


마치 걱정할 줄 몰랐다는 나카하라의 목소리에 울음을 눌러 참았던 사사키가 나카하라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마치 타인처럼 말하며 선을 그어버리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센티넬을 잃는 것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을 또 무력하게 놓치는 일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제가 당연히 걱정을…!”


화를 내려던 사사키의 입술에 나카하라의 입술이 닿아왔다. 조금 뜨거운 나카하라의 입술에 사사키가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부드럽게, 하지만 어딘가가 미숙한 나카하라의 입술은 금세 사사키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좋아합니다. 사사키씨.”


갑자기 입을 맞춘 건 죄송합니다, 하고 작게 덧붙였다. 나카하라의 얼굴은 물론 목덜미 아래부근까지 붉어져 있었다. 잠시 눈을 아래로 두었다가 다시 사사키 쪽으로 두었다. 푸른색의 눈동자가 오로지 사사키만을 보고 있었다.

그 짧은 고백에 이번에는 사사키가 먼저 입을 맞추어 왔다. 가볍게 쪽, 하고 닿았다 떨어졌다. 저도요, 라는 사사키의 목소리가 목덜미에 닿았다. 진작 이렇게 말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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