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걸어요

[카게스가] Kaleidoscope 01 본문

하이큐/Kaleidoscope

[카게스가] Kaleidoscope 01

Fong 2016. 12. 1. 01:21

컬러버스 AU.

디페스타에서 판매할 수도 있어요... 아마.





  색체맹증[色彩盲症], 컬러리스(Colorless)란?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일종의 색맹 증상입니다.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이는 증상입니다.

  일본에서는 200X년에 색체맹증이라는 증상으로 등록되어 진료되기 시작하였으며 국제적인 병명은 컬러리스라 부르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도 컬러리스라는 이름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컬러리스는 성장 중인 모든 사람이 걸릴 가능성이 있는 병입니다. 면역체계 및 환경, 식생활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한 것 역시 밝혀지지 않았으며 유전적 요소도 거의 희박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색체맹증은 전염되지 않으며 유전되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컬러리스는 사람에게 볼 수있는 색을 빼앗아 간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치료가 불가능 한 증상도 아닙니다. 색체맹증의 증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두 고유의 인자가 존재합니다. 놀랍게도 같은 인자를 가진 사람도 있는데, 전 세계에서 단 두 명만 같은 인자를 갖고 있습니다. 똑같이 색체맹증을 앓는 사람이죠. 신기한 것은 두 사람이 접촉하면 색체맹증의 증상은 사라지며 장기적으로 색체맹증이 완치되기도 합니다.


  같은 인자를 가진 사람을 찾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혹은 당신만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세상에 색을 가져올 사람이니까요. 같은 인자를 가진 사람도 당신처럼 흑암을 살다가 운명처럼 색을 보기 시작할 것 입니다.


  저희 컬러리스 센터는 색체맹증을 가진 여러분에게 이 넓은 세상에서 좀 더 빠르게 같은 인자를 사람과 연결시키기 위한 곳 입니다. 또한 교육, 생활지원, 치료에 있어 색체맹증을 앓고 있는 여러분과 그 가족을 위해 전면적으로 서포트하고 있습니다.



─ 일본 컬러리스 센터





Kaleidoscope





  “이쪽이 카게야마 토비오 군이야.”

  “스, 스가와라 코우시입니다.”


  사람의 성장은 언제 멈추는가. 보편적으로 성인이라 인정하는 20살? 사람은 약 25살까지 성장이 가능하다. 특히 남자의 경우는 그 발달이 여자에 비해 느리기 때문에 25살까지 성장한다고 보기도 한다. 신체적인 성장은 드물지만, 뇌의 성장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심리학개론 시간에 배운 지식들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까딱하면 두 자릿수나 차이나는 남자아이를 보며 스가와라 코우시는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성장의 막바지인 24살에 컬러리스가 된 것도 모자라서 적합자라고 소개받은 사람은 17살의 고등학생이었다. 키는 스가와라보다 크지만 얼굴은 조금 어려 보였다. 굳어있는 행동이나 표정에서 사춘기 청소년의 표정이 보였다. 검은색 가쿠란에 남색의 머리카락, 머리카락보다 더 채도가 높은 남청색의 눈동자. 잘못 소개받은 것이 아니었다. 미미하지만 눈을 마주하고 나서야 색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하... 농담은 아니셨네요.”

  “대학원에도 진학한다는 녀석이 교수 말을 못 믿겠다는 거냐?”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너무 어려서 놀랐어요.”


  그리고 이 나이에 걸릴 줄도 몰랐죠. 당황스러운 건 스가와라나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 고등학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부러 도쿄까지 올라왔으니 말할 것도 없겠지. 스가와라는 자신이 연장이고 게다가 컬러리스 관련 공부를 하고 있기도 했고 방학을 맞아 컬러리스 센터(Colorless Center)에서 인턴으로 일도 하고 있다. 그러니 조금 더 안심시킬 수 있는 태도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소 경험해 봄으로 증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우카이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카게야마와 함께 나온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넘겨주었다. 카게야마는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며 무슨 의도인지 생각지 못하다가 스가와라가 번호를 남겨달라는 말에 그제서야 자신의 번호를 남겨 주었다.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만지는 것 반 보았지 직접 만져본 적은 없어 허둥거렸다.


  “스마트폰은 안 써?”

  “네.”


  그 위에 더하기 버튼 눌러서, 새 연락처 추가로 들어가서 이름 남겨줘. 내가 문자 보내둘게. 스가와라는 자신보다 키가 큰 고등학생에게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대형견을 훈련시키는 기분이 들어 재미있었다. 도쿄에 있는 고등학생들은 대학생인 자신보다도 스마트폰에 대해 훨씬 아는 것들이 많아 잘 다루는 모습들을 보다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니 귀여웠다.

  그 작은 기계에 고개를 처박으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다. 스가와라는 자연스럽게 카게야마의 옆에 붙어 까치발을 살짝 들어 자신의 핸드폰을 부드럽게 터치했다. 오, 하며 입력창으로 변하자마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름에 자신의 성을 써 넣었다. 影山 飛雄. 이런 이름이었구나. 토비오라는 이름이 귀엽다는 생각만 했는데 막상 한자로 쓰여진 것을 보니 좋은 뜻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응. 내가 먼저 문자를....”


  기본 벨소리나 다름없는 밋밋한 전자음이 카게야마의 주머니에서 울렸다. 폴더를 열어본 카게야마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면을 바라보다가 스가와라를 보고 먼저 고개부터 숙였다. 스가와라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라며 복도를 뛰어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빠르게 사라진 카게야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침 시간이 겹쳐서 짧게 인사만 하고 가야 한다던 교수님의 말을 떠올리고 카게야마에게 전화를 한 사람이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확정지었다. 미야기에 사는 고등학생이 도쿄에는 무슨 볼일인 걸가. 무슨 영재라던가 대회 같은 거라도 나가는 건가 싶었다. 하긴, 도쿄에 막 올라온 사람치고는 짐을 들고 있지 않았다.

  검은색이 사라지고 다시 찾아오는 회색의 공간에서 같은 검은색이라 할지라도 다 다른 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 동기들의 붉은색 립제품을 보며 색을 구분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검은색도 이렇게 다른데 붉은색은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몇 글자를 적었다.


  - 스가와라 코우시입니다. 잘 부탁해.


  아니야 이건 좀 진부한데. 뒤에 이모티콘이나 얼굴 표정을 넣어 보았지만 역시나 이상했다. 익숙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별로 유행에 민감해 보이는 고등학생은 아닌 것 같았으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붙잡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가와라!”

  “오이카와?”


  이번학기에 미야기 지부에서 실습을 하게 되어 아예 미야기로 내려갔던 동기 오이카와 토오루가 카게야마가 뛰쳐나갔던 길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반반한 얼굴과 여자들이 힐끔힐끔 돌아보게 하는 옷차림에 일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흰 색의 가운과 명찰이 그에 걸음에 맞게 흔들렸다. 의아한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자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오늘 1학기 업무보고 마감일이잖아.”

  “직접 오는 거였어?”

  “겸사겸사 다른 지역으로 간 학생들 기말도 본다고 해서 왔지.”


과연 우카이 교수님, 타 지역으로 갔다고 해서 봐주는 법이 없다. 한쪽 허리에 끼고 오는 상당한 두께의 파일에 스가와라가 오? 하며 반응하자 오이카와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과제가 반 이상이야, 라며 밤새서 하느라 힘들었다며 투덜거렸다. 스가와라는 도쿄로 배정 받아 거처를 옮길 필요 없이 연구보고서와 과제를 계속 제출했었던 것을 기억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웬일로 핸드폰 들고 고민을 해? 애인?”

  “파트너한테 뭐라고 첫인사를 남겨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었어.”

  “도쿄는 조별 임무도 있어?”


  오이카와의 질문에 스가와라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며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보았다가 오이카와에게는 따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했다.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고 사실 오이카와라면 알리기 전에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알려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 컬러리스 됐어.”

  “너 성인 아니었어?”

  “유감스럽게도 몸은 아직 성장 중인 파릇파릇한 청소년인가봐.”


  파릇파릇한 이라는 형용사가 납득되지 않았으나 20대 중반이 되어가는 나이에도 색체맹증에 걸린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세계적으로 보고된 케이스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 손에 꼽는 케이스 중 한명이 자신의 눈앞에 움직이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오이카와 본인도 색체맹증이었으나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완벽하게 나아서 모든 색이 온전하게 보였다.


  “이렇게 늦게도 걸리나?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케이스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이걸로 졸업 해야지 뭐.”


  논문 쓸 것도 없는데 잘 된거라고 생각해. 무덤덤한 스가와라의 말에 오이카와가 그래? 하며 가볍게 넘겼다. 본인이 절망적이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굳이 자신이 도와줄 필요도 없었다. 허리에 끼고 있던 파일들을 반대쪽으로 옮기면서 오이카와가 대화를 다시 스마트폰 쪽으로 돌려왔다.


  “그래서 문자는?”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네.... 고등학생이라서 너무 투박하게 보내면 세대차이 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잖아.”


  이럴거면 청소년과 지원할걸, 가위바위보로 1등을 했던 스가와라는 스스로 아동과를 지원했다. 아이들은 다른 과에 비하면 쉽고 편했다. 최근에는 컬러리스 센터로 수집된 정보들이 통합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파트너를 찾지 못하는 일이 더 드물었다. 스가와라는 서로에게 파트너를 소개시켜 주고 두 사람이 지속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도우며 교육을 시키는 일을 보조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선호하는 과는 오이카와가 배정된 청소년과인데, 청소년과는 대부분 파트너로 지낸지 3, 4년이 지나서 서로가 익숙해지거나 80%이상 치료가 된 아이들이 대부분인지라 치료를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을 잘 구슬리거나 완치판정을 하는 일을 돕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고등학생에 대해 잘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언을 구하려 했으나 오이카와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냥 평범하게 보내. 요즘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그렇게 유행이 민감하진 않더라.”


  난 일부러 더 귀엽게 보냈더니 넷카마세요? 라는 문자도 받았어. 오이카와가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요즘 고등학생들은, 하며 미야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막 시작하려던 참에 우카이 교수님의 연구실 방문이 열렸다. 오이카와가 먼저 우키이에게 인사를 하고 스가와라도 따라서 인사를 했다.


  “뭐야, 와 있었냐?”

  “네, 연구실에 두고 갈까요?”

  “그렇게 해. 아, 시험 보는 교실 바뀐 거 확인 했지?”

  “그럼요. 시험 시간에 뵙겠습니다.”


  오이카와는 또 깍듯이 우카이 교수에게 인사를 했다. 우카이 교수는 오이카와가 온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오이카와는 갔다 올게, 라며 우카이 교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평범하게라,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조언에 따라 처음에 보내려던 문자와 비슷하게 적어 보냈다.


  - 스가와라 코우시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굳이 연하에게 존칭을 쓸 필요는 없겠지, 앞으로도 계속 볼 텐데 불편하게 경어를 사용하는 것 보단 조금 더 허물없는 관계가 좋다고 생각했다. 색체맹증을 앓는 사람들의 파트너는 깊은 유대로 엮여 있다는 교과서의 내용처럼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와 조금 더 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 날 저녁은 오랜만에 만난 오이카와를 포함한 동기들과 저녁 술자리를 가졌다. 원래 룸메이트가 있었으나, 합숙으로 방을 비운 덕에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거실에 불을 켜고 소파위에 풀썩 쓰러지고 나서 문자의 착신음이 들였다. 볼지 말지 고민하다가 아직 카게야마에게서 답장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 저도 잘 부탁드려요. 스가와라 씨.


  의외로 정상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그대로 쓰러져 잠들려던 차에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이번 주에 또 볼 수 있는지에 관한 문자였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문장에 그래도 생각했던 고등학생과는 다른 이미지였다. 스가와라는 방학쯤이라고 생각한 고등학교의 일정을 생각하며 금요일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 약속 날짜를 잡았다.

  그 이후로 다른 문자는 오고가지 않았다. 문자를 먼저 해도 괜찮은 것인지, 너무 친한 척 한다며 경계하지는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인해 문자를 보내지 못했다. 사실 이틀 째 되는 날 부터는 카게야마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다가 목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생각이 났다. 처음 색체맹증이 발병했을 때는 죽을 것 만 같았는데 벌써 익숙해진 것 같았다.

  카게야마와는 금요일 오후 다섯시라는 에매한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다. 카게야마가 먼저 제시한 시간이라 취소하기도 어려웠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가 자신을 처음 본 날 입고 왔던 검은색 가쿠란에 물건이 많이 들어있는 것 같은 크로스백을 매고 있었다. 센터 로비에서 보기로 했던 스가와라는 약속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한 카게야마에게로 다가갔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지만, 시선들을 피하려면 신속한 이동이 필수였다.


  “카게야마. 잘 지냈어?”

  “아, 네.”


  익숙하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주변에 지나가던 부모와 한 아이가 인사를 했다.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조심히 돌아가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대화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센터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우리 일단, 밖으로 나갈까? 여기서 이야기하기엔 좀 그렇지?”


  카게야마는 이곳이여도 생관 없었지만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스가와라의 표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의 의사를 표현하자 스가와라는 빠른 속도로 근처의 건물로 들어갔다. 룸카페라고 적힌 간판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카게야마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 외에 더 신경쓰이는 부분은 카게야마의 가쿠란이다. 도쿄에는 방학에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은 거의 없었고 이 동네의 중고등학교 중에 가쿠란을 입는 학교는 없다. 명백한 타지인이라는 것이 들어나 이목이 쏠리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룸카페로 말없이 따라 들어왔다. 금세 마실 것을 선택한 스가와라와는 달리 한참이나 뒤적거리고 나서 주문을 했다. 종업원은 주문을 받는 내내 이 기묘한 조합을 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 카게야마와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어 나가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맞다. 미야기에 살고 있다면서? 나도 미야기 출신이야.”

  “네, 우카이 의사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때 마침 종업원이 와서 주문했던 음료와 케이크를 놓고 갔다. 핫초코와 아메리카노, 초코치즈 케이크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스가와라가 먼저 커피에 손을 댔다. 두 번 정도 불고 커피를 마셨다. 나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제 앞에 놓인 핫쵸코를 빤히 보다가 스가와라를 보았다. 색이 보이는 걸까? 적어도 스가와라는 머그컵이나 눈앞의 색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과 흰색의 조합이라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들었던 것처럼 흑백의 시야 속에 카게야마만 색이 보였다. 대부분 검은색과 흰색의 배합이라 거의 색체로 보기 어려웠지만 눈을 보면 색이 보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불과 한 달전 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실 스가와라 씨가 너무 하얀 분이셔서 사실 잘못 매칭된 줄 알았습니다.”


  나도 네가 검은색 계열의 사람이여서 같은 생각을 했었지, 괜히 청소년에게 상처가 될 말은 하지 않기로 하고 묵묵히 카게야마의 말을 들었다. 아직까지는 카게야마 외의 것들에서 다른 색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시간이 약인 걸까. 앞으로 색을 보려면 손을 맞잡고 다녀야 하는 걸까? 답답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색체맹증은 스가와라가 이론적으로 배운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이렇게나 다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촬영기법처럼 눈앞의 카게야마만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도 눈을 보고 알았어요. 전 스가와라씨 같은 눈은 처음 봤어요.”

  “눈?”

  “네. 엄청 예쁩니다.”


  그 말 한마디 하는 것이 긴장이 되었는지 침 삼키는 소리가 스가와라에게도 들렸다. 예쁘다는 말을 듣는 스가와라도 무안해졌다. 예쁘장한 외모라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눈이 예쁘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살짝 붉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오면서 덩달아 스가와라도 부끄러워졌다. 무안한 기분에 다시 머그잔을 잡고 커피로 입술을 축였다.


  “그... 스가와라 씨는 컬러리스에 대해서 공부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병아리 수준이지만, 공부하고 있어.”


  카게야마가 처음으로 손을 뻗어 핫초코를 마셨다.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걸 보니 생각보다 마음에든 모양이었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가 될 텐데 초코치즈 케이크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게야마는 전부터 궁금했는데요, 라면서 핫초코를 조금 마셨다.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스가와라를 보며 말했다.


  “정말 키스하면 순식간에 색이 보이나요?”


  푸훕, 머그겁의 커피가 탁자와 스가와라의 청바지 위로 튀었다. 사례가 걸린 스가와라가 고통스럽게 재채기를 하며 휴지로 입을 막았다. 향간에는 그런 소리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고, 아니 애초에 아이들에게 키스를 해 보라고 할 수도 없다. 가벼운 입맞춤이라면 손을 잡는 것과 같은 스킨십에 해당하는 것이니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입에 혀를 넣는 걸 어떻게 애들한테 시킬 수 있겠는가. 별로 좋아서 맺어진 것도 아니고 같은 성별로 묶일 수도 있는 건데.


  “그, 그런 소문이 돌긴 하지? 아직 증명은 안....”

  “제 친구도 컬러리스거든요. 그런데 키스하면 순간적으로 다 보인다고 했어요.”


  그 친구 참 좋은 실험 대상이구나, 라고 받아쳐야 했던 걸까. 17살의 고등학생이 키스를 한다고? 17살끼리의 연애니까 가능한 거겠지? 지금 카게야마가 말하는 키스라는 건 역시 혀를 넣고 움직이는 거겠지? 연막접촉의 효과인가? 아니면 서로의 타액? 같은 인자를 가지고 있는데 같은 인자끼리의 타액교환이 과연 의미가 있는 건가? 아니지 그 전에 지금 거짓 없는 담백한 얼굴의 카게야마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저희도 한 번 해 보면 어떨까요?”

  “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카게야마가 테이블을 짚고 스가와라에게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뒤로 몸을 빼려는 스가와라의 옷깃을 잡아 끌었다. 한 대 맞는 줄 알고 눈을 감아버린 스가와라의 입술에 약간 거칠지만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 아직 첫키스도 못해봤는데 이렇게 남고생에게 첫 키스를 빼앗긴다니! 잔뜩 긴장한 스가와라는 숨도 쉬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사실에 스가와라가 살짝 눈을 떴다. 역시,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소년에게 키스는 이 정도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ㄱ....”


  카게야마는 입을 맞추는 순간에도 눈을 감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스가와라가 살짝 눈을 뜨고 자신을 부르려는 그 순간을 틈타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넣었다. 스가와라의 입 안에서 움직이는 혀는 뜨겁고 달았다. 핫쵸코의 맛이 입안의 커피맛과 마구마구 뒤섞였다. 카게야마의 혀가 자신의 입안을 헤집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몸을 뒤로 빼보려 했지만, 옷깃을 쥐어잡은 손이 어찌나 센지 벗어날 수 없었다.

  혀와 혀가 얽힌다. 혀의 돌기들이 서로 부딪치며 자극을 주고받았다. 닿을 때 마다 찌릿찌릿한 감각이 머릿속에서 번쩍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는 고등학생이고, 오늘 처음 본 상대이고, 게다가 같은 성별이고 원해서 한 키스도 아닌데 스가와라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움직였다. 찰나의 순간만 맛보기에는 아쉬운 감각이었다.

  스가와라의 옷깃을 잡은 손이 느슨해질 무렵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리고 스가와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카게야마의 친구의 증언처럼 정말로 세상이 다시 색으로 물들어 있을지, 아니면 단순한 기분 탓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니던가.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임상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자기 암시를 걸 듯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천천히 눈을 뜬 스가와라의 앞에 보이는 것은 카게야마였다. 짙고 살짝 떨려오는 속눈썹과 남청색의 눈동자가 스가와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카게야마의 뒤로 갈색의 인조 가죽으로 된 소파와 금색으로 칠한 태두리, 베이지색과 말차와 비슷한 색으로 배합되어있는 커튼, 투박한 붉은색의 호출 버튼, 분홍색과 하늘색의 꽃이 그려진 테이블보. 눈을 몇 번 깜박여 보아도 꿈이 아니라는 듯이 그 좁은 공간의 색이 보였다.


  “증명... 했네요.”


  어쩜 저렇게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을 수 있지? 스가와라는 자신이 카게야마와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고 얼굴을 붉혔다.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신비한 광경은 오래가지 않았다. 붓을 물통에 넣고 흔들어서 그 색을 지우듯이 스가와라의 시야에서 색이 사라져갔다.

  다시 흑백으로 돌아온 시야 덕분에 금세 진정할 수 있었다. 이것이 과연 다행인 건지, 아니면 큰일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자신보다 침착한 카게야마를 보며 스가와라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저희 한 번 더....”

  “안 돼! 절대 안 돼!!”


  흥분한 것이 분명한 카게야마가 다급하게 말을 꺼냈지만 스가와라는 칼 같이 거절했다. 누굴 파렴치한으로 만들 생각인 걸까. 내 첫 키스는 어떻게 된 거지. 아무리 색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한 번 더 하자는 말이 나오는 거지? 색이 보이는 것이 신기해서? 아니면 혀가 엮이는 그 감각이 좋아서? 전자라면 이해하겠지만 후자의 의미라면 스가와라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큰 소리를 내며 고개도 저으며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말했지만, 카게야마의 혀가 입안으로 밀려들어와 탐하던 그 때가 스가와라 스스로도 아찔할만큼 좋았다. 솔직히 한 번쯤은 더 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 좋다고 고등학생을 붙잡고 계속 입술을 비비자는 말은 하지 못한다.

  스가와라가 아는 접촉은 손을 잡거나, 같이 손을 잡고 자거나 하는 친구이상의 접촉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단 카게야마는 어리다. 지금까지 같은 성별의 사람을 좋아해본 적이 없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사귀어본 사람이 없어서 키스라는 것이 원래 기분이 좋은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기분이 좋고 순식간에 색이 보인다 하더라도 스가와라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저기, 카게야마 군.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 스가와라씨 좋아 하는데요?”

  “그런 단순한 좋아함 말고. 그... 연애 감정이라던가, 사귀는 사람이랑 하는 거잖아?”

  “제 주변은 성별에 관계없이 매칭 된 사람이랑 다 사귀고 있는데요?”


  요즘 고등학생이 무섭다. 그야 뭐 자주 접촉하고 만나게 되니 마음도 생기게 된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이렇게 처음 만난 날 부터 키스를 하거나 당연히 사귄다고 믿는 걸 보니 과정이 아닌 결과만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키스야 강제적으로 했다고 하지만, 이다음의 접촉을 바란다면 스가와라는 받아드릴 자신이 없었다. 감정 없이 진행되는 애정행위라는 것을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나는....”

  “저는 스가와라 씨 덕분에 제 생에 처음으로 색을 봤어요. 당연히 색을 준 사람과 사랑하게 되는 거 아닌가요?”


  스가와라는 겨우 한 달, 카게야마는 17년 평생 흑백의 세상에서 살아왔다. 스가와라는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문득, 색체맹증이 완치된 사람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인생의 구원자’ 라며 기쁨과 행복함이 넘쳐나는 표정,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얼굴과 말투, 감출 수 없는 감정을 나타내는 눈. 그 사람과 카게야마의 눈은 같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말에 스가와라는 대답하지 못하고 커피로 목을 축였다. 잘못 말했다간 기대에 가득 찬 카게야마의 꿈을 부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카이 교수님이 색체맹증은 중증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흑백의 세상은 본인이 아니면 모르는 저주이고 감옥이자 미로인 것 같았다. 그러니 이 미로에서 나가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카게야마도 자신도 지금과는 다른 관계가 될 것이다.

  다른 사람처럼 세상이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가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 때가 올 때 까지 카게야마를 정신적으로 받쳐주는 것은 스가와라가 해야 할 몫임이 분명했다.






사실 초고같은 느낌으로 쓰고 있어서 어느날 갑자기 들어와보니 조금 변해있더라<이럴 수도 있어요..ㅠㅠ


-> 수정을 했습니다. 12월 25일 오후 10시 45분경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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