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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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Kaleidoscope

[카게스가] Kaleidoscope 02

Fong 2016. 12. 25. 23:08


컬러버스 AU


디페스타에서 판매될 예정입니다.


전편(1화)이 대폭 수정되었음으로 전편을 한번 읽으시는 걸 추천드려요!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슬슬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밤이 늦기 전에 다시 미야기로 돌려보내야 한다. 미야기에는 의외로 버스가 없어서 일찍 다녀야 했었던 자신의 학창시절을 기억해내고 핸드폰 화면을 가볍게 노크하며 시간을 보았다.


  “신칸센 타야 하지? 몇 시로 했어?”

  “표가 없어서 하룻밤 여기서 묵고 아침에 가려고요.”


  이 시기에 표가 없던가? 집으로 잘 내려가지 않는 스가와라는 신칸센의 표까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갑자기 도쿄에 뚝 떨어진 자신의 미성년자의 파트너가 혼자 도쿄에 있을 예정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하룻밤 자고 올 생각인 채비를 한 가방도 있으니 작정하고 온 것이다. 혹시 아는 친척이라도 있나?


  “어디서?”

  “캡슐호텔이요.”



이 근처에 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핸드폰을 꺼냈다. 아직 스마트폰이 아닌 점이 신기하면서도 막연하게 카게야마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캡슐호텔이라,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파트너인데 도쿄까지 온데다가 처음 도쿄에 온 날 캡슐호텔에서 서러움에 울다 잠들었던 과거까지 함께 떠올랐다.


  “음, 그건 내가 맘이 편치가 않은데.”


  말을 하고도 스스로의 입이 방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지, 못할 말도 아니잖아? 먼저 도쿄에 살고 있는 어른으로서 당연한 생각이다. 게다가 앞으로 몇 년간 함께할 파트너인데 방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색체맹증의 치료법은 단 한 가지, 잦은 접촉뿐이다.

  갈등하는 표정의 스가와라를 카게야마가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잠깐 기다려봐.’ 라는 말과 함께 핸드폰을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런색과 녹차 색으로 배합되어있던 커튼을 열고 스가와라가 나갔다. 스가와라가 나간 빈자리를 빤히 바라보다가 카게야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도쿄로 오기 전, 파트너를 만나도 확신이 서지 않으면 어찌해야 하냐는 질문에 중학교 동창인 쿠니미는 별다른 고민 없이 키스를 해, 라고 내뱉었다. 옆에서 그걸 들었던 주변 사람들이 심한 동요를 보였다. 카게야마도 놀란 눈으로 쿠니미를 보았으나 되려 쿠니미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더 잘 보이는 거 모르셨나요? 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그래서 정말로 담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쿠니미에게 만일 상대가 입술을 굳게 닫고 있을 경우에 하는 법도 배워서 패기 있게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기분은 좋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검은색, 회색, 흰색을 제외한 세상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 전설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이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스가와라의 입 안에 자신의 혀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정신을 따뜻한 온천물에 담가서 따뜻하게 덥혀지는 것 같았다. 피어오르는 열기와 뱃속에서부터 느껴지는 요상한 감각이 좋다.

  모두가 키스를 하면 이렇게 되는 걸까? 다음에 쿠니미에게 만나면 그가 좋아하는 소금카라멜을 건네며 물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조금 남은 음료를 마셨다. 차갑고 달달한 음료가 혀끝을 싸고 돌았다. 하지만 스가와라의 입에서 맛보았던 커피맛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쿠로오 나 하룻밤만 누구 재워도 괜찮아?”


  모르는 이름을 부르는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숙사인가? 기숙사면 외부인은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카게야마의 짧은 고민이 무색하게 스가와라는 곧 고마워, 하며 전화가 끊었다. 그리고 커튼이 열리며 스가와라가 카게야마를 향해 말했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어차피 룸메이트는 지금 없다. 허락도 방금 받았다.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람의 집에서 묵고 가는 것이 편할 리가 없으나 그래도 자주 볼 사이인데 이 정도는 수용할 것이다. 스가와라의 예상대로 카게야마는 ‘감사합니다.’ 라며 스가와라의 뒤를 따랐다.

  센터에서 걸어서 20분, 버스로 8분이었으나 스가와라는 일부러 걸었다. 퇴근 시간과 겹쳐 차가 막히거나 사람이 가득한 버스에는 타고 싶지 않았다. 카게야마도 말없이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게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카게야마가 빤히 바라보자 카게야마의 의견은 듣지 않고 곧바로 오른손을 잡았다. 시내는 복잡하기 때문에 혹시나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잡은 손이었다.

  카게야마와 손을 맞잡은 순간 눈에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간판들과 회색이기만 하던 하늘이 약간의 푸른색을 머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황홀한 기분이었다. 자신이 원래 살아가던 세상은 이런 모습이었지, 하고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이런 것을 의도하고 손을 잡았던 것은 아니었다. 옆에 선 카게야마는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은 상태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숨을 크게 내뱉으며 눈을 깜박였다.


  “가자.”

  “아... 네...!”


  스가와라는 천천히 걸었다. 색체맹증을 얻고 나서야 자신이 읽고 보았던 수많은 환자들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게야마는 영문도 모르고 부모의 손길에 끌려가는 유치원생처럼 스가와라의 뒤를 따라가야 했다. 일부러 카게야마를 배려하는 마음을 천천히 걸었다. 스가와라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보아왔던 것들이 다시 똑같이 보인다는 점이 안심시켜 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빨리 찾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뻤는가를 묻는다면, 스가와라는 횡단보도에 가지런히 간격을 맞춘 새하얀 페인트를 보는 것조차도 흥미롭다는 대답을 해줄 것이다. 그리고 횡단보도의 페인트가 가지런하다는 생각을 한 순간, 가지런함과 반대되는 개념이 것들이 떠오르며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던 자신의 방이 생각났다.

  재워준다고 말은 했으니 방안은 폭탄을 맞은 것 마냥 더러웠다. 쿠로오의 방은 열지 않을 테니 볼 필요도 없다. 자신이 방만 정돈되어 있지 않다면 괜찮았겠지만, 계속 인스턴트 마파두부를 시켜먹고 컵라면을 먹고 그대로 두거나 담요를 덮고 거실에서 TV를 보다 잠든 흔적 등등의 것들이 떠올랐다. 손님을 맞이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방이다. 어디서 기다리라고 할까? 그게 더 수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시장을 보도록 시키는 것도 떠올렸으나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장을 봐오라고 말하는 것도 좀 그렇고 게다가 카게야마는 이곳의 지리를 모른다.


  “저, 카게야마. 지금 우리 집 청소가 안 되어 있어서 조금 더러울거야.”

  “네, 상관없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느니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카게야마는 개의치 않은 태도였기에 스가와라는 안심했다. 절대 원래 더럽게 사는 편은 아니다. 기말 연구 보고서와 시험 때문에 바빴다. 일도 급격히 많아지기도 했고 또 무엇보다 갑작스런 색체맹증이 오는 바람에 약간의 우울한 기분으로 살다 보니 그런 것이다. 부끄러운 마음에 애써 마음으로 항변해 보았지만, 더러운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우링 각시 같은 사람이 청소라도 해 놓고 갔으면 참 좋겠다. 헛된 생각을 하며 스가와라는 비밀번호를 눌러 방문을 열었다.


  “... 스가와라씨는 의외로 청소 싫어하시나보네요.”


  너 방금 괜찮다며!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어!? 아마 오이카와나 쿠로오 였으면 바로 말했을 거다. 카게야마니까,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뿐이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게 그나마 깨끗한 편에 속한 부엌 옆의 식탁의자에 앉으라고 권하고는 빠르게 거실을 청소했다. 다행이도 먹고 남은 일회용 그릇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빨래를 정리한 자신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혼자 앉아서 청소하는 스가와라를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신은 저쪽이야, 라고 말해주려다가 쿠로오의 방문 옆의 기둥에 놓여있는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스가와라를 도울 생각인 모양이었다.


  “도와드릴게요. 청소기라도 돌릴까요?”

  “어... 응. 코드는 이쪽에 있어.”


  고등학생에게 청소를 도움 받다니,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올라서 일부러 카게야마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주인아저씨가 와도 이렇게 부끄럽진 않았는데 카게야마의 앞에선 너무 부끄러운 기분이다. 스가와라는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급하게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간단하게 씻었다. 그 와중에도 스가와라는 무작정 더러운 건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너도 씻어. 갈아입을 옷 있어?”

  “아, 네!”


  가지고 왔던 가방에서 짐들이 나온다. 가지런히 정리된 운동화와 물병, 속옷 몇 벌과 유니폼으로 보이는 옷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탈취제 한 통을 다 부어버린 냄새가 났다. 운동을 막 마치고 온 쿠로오의 땀 냄새보단 나아 보였다. 칫솔까지 챙겨가는 걸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운동을 하고 온 걸까?


  “저녁은 카레라도 괜찮아?”

  “네! 저 카레 좋아해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히 제한적인 요리 외에는 전혀 소질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쿠로오가 해주는 저녁을 먹었었다. 쿠로오가 원정에 간 이후로는 한 번도 주방을 쓰지 않았으니 약 2주 만에 칼을 잡게 되었다. 오늘은 부디 맛이 괜찮기를 기원하며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냈다.

  카레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당근이 조금 서걱거렸지만 카레야마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카게야마는 원래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스가와라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으나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공부 이야기를 하면 친척 어른 같아 보일 것 같아 공부이야기를 빼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카게야마는 대체 뭘 하며 사는 건지, 드라마나 영화, 연예인 이야기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모르는 연예인이 더 많았다. 역시 할 이야기는 학교 이야기 밖에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할쯤에는 이미 식사를 마친 뒤였다.

  설거지는 본인이 하겠다며 카게야마가 나섰고 스가와라는 사양하지 않았다. 바싹하게 말라버린 스펀지를 보며 카게야마가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모르는 척 하고 거실에 작은 상을 폈다. 컬러리스 센터에서 일하려면 관련 학과를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시험도 봐야 했다. 내년이 졸업이니 지금부터 준비해 두어야 했다.

  카게야마는 설거지를 마치고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다가 스가와라의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그제야 스가와라는 TV봐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는 다시 책으로 고개를 두었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TV를 켰다. 공영방송밖에 흘러나오지 않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방금 전 스가와라가 말했던 드라마가 나오는 채널에서 멈추었다.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는 지 카게야마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일 아침에는 스가와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저, 손... 잡아도 괜찮을까요?”


  드라마가 중반 쯤 흘러갔을 때가 되어서야 스가와라에게 말을 걸었다. 스가와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보다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스가와라의 손가락을 쥐어 잡았다. 카게야마의 손가락은 생각보다 길어서 한 번에 스가와라의 손가락을 가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TV를 보는구나.....”


  카게야마의 중얼거림에 스가와라가 고개를 들었다. 책이 흑백에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접촉하는 동안 색이 돌아온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TV는 스가와라가 전에 보이던 대로 형형색색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극적일 정도로 번쩍거리는 느낌이었다.


  “스가와씨 덕분에 이런 세상을 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자신도 카게야마 덕분에 다시 색을 되찾은 건데 이렇게까지 감사의 표현이 필요할까? 스가와라는 색을 되찾은 것이고 카게야마에게는 색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인가 카게야마는 TV를 보면서도 넋 나간 사람처럼 눈을 고정시켰다. 광고에서도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TV를 처음 본 아기와도 같았다.

  11시쯤이 되자 카게야마가 졸기 시작했다. 스가와라의 밤은 이제 시작이었으나 한창 자랄 시기의 고등학생에게는 수면이 중요하단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책을 덮었다.


  “피곤하지? 이제 자자.”

  “아, 아뇨!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지금 침 흘릴 뻔 했는데. 스가와라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눌러 참고 방으로 들어가 바닥에 깔 도톰한 이불과 얇은 이불을 가져왔다. 어차피 남자끼리니까 한 이불에서 자도 괜찮겠지. 게다가 스가와라가 생각했던 색체맹증의 치료법은 이런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낮에 했던 키스가 생각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또 다시 그렇게 무방비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달아오르는 얼굴을 진정시키고 나가자 전화를 붙잡고 있는 카게야마가 보였다. 네, 네,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작게 들려오는 전화 너머의 사람은 여성이었다.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듣는 모양이었다. 나도 저렇게 엄마가 잔소리 해줄 때가 있었는데, 불과 몇 년 전의 일임에도 아득한 옛날의 일 같은 생각이 되었다. 키는 자신보다 훨씬 크다 하더라도 카게야마가 아직도 어리다는 것이 느껴졌다.

  전화가 끝나갈 쯤에 스가와라가 이불을 들고 나갔다.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 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베개 필요해? 카게야마가 고개를 저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누울 자리에 베개를 놓고 이불을 폈다. 설마 한 이불에서 자는 건가, 라는 눈으로 자신을 보다가 합숙을 떠올리고는 금세 수긍했다. 날도 점점 더워지고 있고 중간이 이불을 차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가와라가 불을 껐다. 베개가 베란다가 있는 쪽으로 놓여 있어서 카게야마도 머리를 두고 누웠다. 스가와라가 곁에 눕자, 회색이라고 생각했던 창틀이 짙은 고동색이라는 것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색이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 건물 밖의 가로등 때문이겠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카게야마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아, 밖에 가로등 신경 쓰여? 12시면 자동으로 꺼지니까, 조금만 참아.”


  스가와라는 천장을 쳐다보는 자세로 누웠다가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결국은 자신이 원래 자던 자세로 몸을 돌렸다. 카게야마를 옆으로 바라보는 자세였다. 팔이나 다리가 중간중간 닿았다가 떨어졌지만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잡고 자는 것 보다 이쪽이 더 편한 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와 한 이불을 덮고 잠든 것은 오랜만인지라 스가와라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원래 잠들 시간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카게야마가 아까와는 달리 눈을 말똥말똥 뜨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신생아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마냥 창밖을 보다가 스가와라와 눈이 마주쳤다. 말없이 스가와라의 눈을 보던 카게야마가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스가와라씨의 눈동자는 밤이면 달이랑 똑같은 색으로 변하시네요.”

  “그, 그래?”


  가로등을 잘못 본 건 아닐까? 스가와라도 고개를 좀 더 들어 하늘을 보자 환한 가로등불 뒤로 조금 크고 둥근 달이 보였다. 흰색인지 연한 노란색인지 모를 색으로 빛나는 달을 보며 밤에 자신의 눈동자가 저런 색으로 빛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카게야마는 꿈속에 있는 것처럼 하늘을 쳐다보았다. 스가와라도 덩달아서 하늘을 보다가 갑작스럽게 가로등이 꺼졌다. 12시가 된 모양이었다. 빛에 익숙해졌던 눈이 점점 어두운 색을 더 많이 담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자야지, 라는 생각으로 몸을 조금 웅크렸다.


  “밤하늘이 검은색이 아니네요. 너무... 신기해요.”


  그랬던가? 카게야마의 말에 하늘을 보려고 시선을 올리다가 카게야마의 얼굴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달빛으로 보이는 얼굴은 숨길 수 없는 행복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과 입을 다물고 있으면 조금 무섭게 생긴 얼굴이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카게야마에게서 저 표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스가와라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사나운 맹수까진 아니더라도 자신보다 월등히 크고 조금 무서운 인상의 카게야마를 원하는 대로 다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가와라 앞에서만 귀여워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더 많은 색을 보자.”


  그렇게 많은 색을 보고, 더 많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알고 나면 색체맹증은 악몽이었던 것처럼 지나가고 더 많은 시간들을 알록달록한 색깔들에 둘러쌓여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 스가와라는 파트너로서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할 것이다. 






앞으로 1~2회 분량 정도 샘플로 올라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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