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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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Kaleidoscope

[카게스가] Kaleidoscope 03

Fong 2016. 12. 30. 19:05

컬러버스 AU


1월 7일 디페스타 P19에 위탁 판매됩니다.






  아침은 패스트푸드점의 아침메뉴를 먹여 보냈다. 주말이기 때문인지 신칸센의 이용객은 상당히 많았다.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줘, 라는 제법 보호자스러운 말을 끝으로 짧은 만남은 끝났다. 카게야마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기차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한 번 스가와라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한 번 더 인사한 후에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다.

  열차가 떠날 때 까지 지키고 서 있었더라면 제법 낭만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토요일도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럴 여유는 없었다. 자리에 잘 착석한 것을 본 스가와라는 그 상태로 자신의 근무지로 향했다. 그 상태로 카게야마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있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카게야마에게서 문자가 두 통이나 도착해 있었다.

  하나는 재워주셔서 감사했고 카레가 맛있었고 색이 한순간이라도 보이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하나는 집에 잘 도착했다는 내용과 많이 바쁘신가봐요., 라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전에 보낸 문자에 대한 답장이 없어 보낸 것 같았다. 문자보다는 전화를 더 선호하는 스가와라는 전화를 하려다가 무턱대고 전화는 것도 좋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고 문자를 남겼다.

  그렇게 아침, 점심, 저녁을 기준으로 두세 번 정도 연락이 오고갔다. 끼니는 거르지 않았는지, 수면은 잘 취하고 있는지와 같은 정말 형식적인 인사 외에는 오고간 것이 없었다. 스가와라도 있었던 이야기에 대해 시시콜콜 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카게야마는 의욕을 보이고 있었으나 말주변이 없는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모양인지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그만두는 일이 많았다.

 이번 주 주말에도 자신이 도쿄에 올라오겠다는 연락에 스가와라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내려갈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카게야마가 먼저 올라온다고 하는데 막아설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카게야마가 간 뒤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방도 청소해 두었다. 이번 주는 완벽했다. 오이카와가 잠깐 들렸을 때도 ‘무슨 바람이 불어서 청소를 했어?’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분명 완벽한 상태이다. 이번에는 완벽하리라는 생각으로 카게야마에게 잘 자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다음날, 스가와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당장 내일부터 미야기지부로 옮겨가라는 전근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도쿄지부 컬러리스 센터에서의 인턴은 엘리트 코스나 다름없는데 도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해서 미야기 시골마을로 돌아가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카이 교수에게로부터 전해들은 스가와라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통지서를 보았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어제까지만 해도 별 말씀 없으셨잖아요?”

  “지금 미야기로 옮겨달라고 매달려야 하는 쪽은 너야, 스가와라. 카게야마군은 아직 가능성이 있지만, 너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한부라고.”


  복도에 걸린 실내 금연이라는 안내판이 무색하게 우카이 교수는 담배를 태웠다. 재떨이에 툭툭, 하고 스가와라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담뱃재를 털어버리고 스가와라를 보았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근무하겠다는 스가와라는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희귀한 케이스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청소년은 보통 20살을 기준으로 성인으로 보고 또 20살을 기점으로 완치된 사례가 많기 때문에 그나마 시간이 많은 편이지만, 20살 이상, 연령적으로 성인으로 판단된 사람은 언제 성장이 멈출지 모르기 때문에 신속한 조취가 필요하다. 실제로 발병한지 50일 만에 성장이 멈추어 본인은 물론 파트너도 완치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양쪽이 평생 흑백의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시한부라는 말에 스가와라는 자신이 카게야마를 만나 조금 들떠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흑백의 세상이 익숙한 상태라 하더라도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옷을 입는다거나, 음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구분하기도 어려웠고 아이들이 노란색을 달라고 할 때마다 몇 번째에 있는 것이냐고 되묻기도 해야 한다.

  스가와라는 이미 색을 알고 있어서 이러한 색이였지, 라는 유추를 할 수 있었지만 파트너인 카게야마는 스가와라는 확연히 다르다. 태어났을 때부터 색을 보지 못했던 소년이 이제야 색을 보기 시작했는데 자신 때문에 그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공포로 다가왔다. 색체맹증은 혼자만 앓는 증상이 아니었다.


  “얼른 가서 짐 정리 하고. 내일 가면 아마 오이카와가 마중 나와 있을 거다. 미야기는 기숙사도 제공해 주니까 옷만 챙겨 가면 될 거야.”

  “네.”


  갑작스런 전근 발령에 자신의 자리에 놓여 있던 물건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들만 챙겼다. 자료도 미리 백업해두면서 무엇을 챙겨가야 할지 고민했다. 스가와라를 아는 직원들이 미야기로 가서 빨리 완치되면 좋겠네요, 라며 좋은 말을 한 마디씩 하고 갔다. 하지만 전혀 마음의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당장 내일이라도 성장이 멈춰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정신없이 물건과 자료들을 수습하고 집에 도착하자 문 앞에 가방 하나와 여행용 트렁크 하나, 그리고 때탄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막 씻고 나온 쿠로오가 수건 한 장만 하반신에 두른 상태로 머리카락을 말리며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스가와라... 무슨 일이야?”

  “응?”

  “상태 좀 안 좋아 보이는데, 조퇴했어?”


  스가와라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이야? 쿠로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스가와라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새하얗게 질려있는 룸메이트의 얼굴을 그냥 둘 수 없는 쿠로오는 스가와라의 뒤를 따라갔다.


  “어이- 스가와라 코우시씨? 괜찮은 거 맞으세요?”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히기 직전의 문고리를 잡았다. 힘으로는 절대 쿠로오를 이길 수 없다. 쓸모없는 소모전을 할 기운도 없었다. 스가와라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문을 닫기 위해 문을 쿠로오 쪽으로 밀었다.


  “응, 괜찮아.”

  “안 괜찮은 사람이 괜찮다고 하는 거 알고 있죠?”


  쿠로오는 스가와라가 마음대로 하는 것을 두고 보다가 슬쩍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며 기분을 풀어주는 성격이었다. 덕분에 팀에서도 인기가 많고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받고 있기도 했다. 대학 배구팀인 쿠로오와 스가와라는 전산상의 오류로 1학년에 룸메이트가 되었다가 2학년 때부터 이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오이카와 같은 동기보다도 더 친한 사이였다.


  “정말 괜찮으니까 옷이나 입고 와.”


  옷을 입고 오라는 말에 쿠로오는 자신을 완전히 배척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읽고 문을 닫아 주었다. 집에 오는 길에 산 맥주가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쿠로오에게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취미는 없었지만 스가와라에게서 한두마디라도 더 꺼내 들으려면 술이 필요했다. 스가와라는 술을 좋아하는데다가 술만 들어가면 평소보다 더 말을 한다.

  색체맹증 판단을 받은 것은 약 3주 전, 쿠로오가 오사카 원정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그때도 사색이 된 얼굴로 뭔가 이상하다며 패닉에 빠져 있었다. 아마 스스로 색체맹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던 것 같다. 오늘도 그때와 버금가는 얼굴이긴 했으나 옷을 입고 오라고 한다던가, 그대로 현관에 주저앉지 않은 것만으로도 전보다는 나은 상태라고 판단했다.

  쿠로오가 옷을 입고 스가와라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도 돼, 하고 방금 전 보단 조금 기운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방에 들어가니 스가와라는 장기연수를 다녀왔을 때 구입했던 커다란 케리어에 짐을 넣어 정리하고 있었다.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오더니 이젠 열심히 자신의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있다. 조금 괜찮아 보이는 것 같아 보여서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쿠로오의 생각을 읽었는지 스가와라가 쿠로오를 올려다보고 다시 케리어로 눈을 돌렸다.


  “나 내일 미야기로 내려가. 3개월 정도.”

  “방학 내내?”

  “내 파트너가 미야기에 있어서.”


  그건 다행이네. 쿠로오는 널려있는 옷들을 사이를 피해 바닥을 디디고 스가와라의 침대에 앉았다. 스가와라의 옆에 맥주 캔을 두고 자신의 몫으로 가져온 맥주를 먼저 따서 몇 모금 마셨다. 원래 한 사람이 먼저 뜯으면 다른 한 사람도 뜯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 소리에 잠시 손을 멈추던 스가와라가 망설이다가 다시 부지런하게 손을 움직였다.


  “성인이 색체맹증인건 흔하지 않잖아?”

  “그렇지.”

  “그런데.... 후우....”


  결국 스가와라가 자신의 오른편으로 손을 뻗어 맥주를 땄다. 물을 마시는 것 마냥 몇 모금을 단숨에 넘긴 스가와라가 후, 하고 숨을 내뱉었다. 술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맥주를 쿠로오가 놓았던 자리에 돌려놓은 후에 스가와라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성인이면 언제 성장이 멈추는지 모르니까, 길어지면 파트너도 영원히 색을 못 볼 수도 있데.”


  집으로 돌아오기 전, 스가와라는 마지막으로 성인이 되어 색체맹증이 나타난 사람을 연구한 논문들을 훑어보았다. 현재 기록으로는 발병일을 기준으로 최대 2년에서 최소 50일 안에 치료되지 못하면 파트너와 그 어떤 접촉을 하더라도 색을 볼 수 없었다. 표본은 매우 적지만, 통계적으로 25살 이상일수록 날짜가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보고된 케이스는 15건, 그중 스가와라와 비슷한 나이인 23살의 색체맹증 환자 중에는 최단기록인 50일인 환자가 두 명이나 있었다. 스가와라가 쿠로오와는 3주 하고도 이틀 만에 보는 것이니 23일이 지났다. 27일 후에는 영영 치료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그 보다 더 일찍 멈추어서 최단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파트너 고등학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응. 태어날 때부터 색체맹증이여서 색을 본 적이 없었다더라. 나로 색을 봤는데, 나 때문에 다시는 색을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느긋하게 있었던 내가 너무 한심해.”


  정말로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의 어린 컬러리스들은 처음에는 공포로 물들어 굳어져 있지만, 반드시 나타난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다들 밝고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환경 탓에 가볍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먼저 미야기로 갔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과거의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맥주에 입을 대었다.


  “뭔가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으음, 하고 스가와라가 남은 맥주를 비웠다. 빈 캔을 쿠로오에게 흔들어 보였고 쿠로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다는 표정으로 캔을 내려놓은 스가와라는 아무런 생각 없이 대답했다.


  “키스 하고 나면 10초 정도 가더라.”


  침대에 기대 앉아 있던 스가와라는 벌써 몸이 뻐근한 느낌에 기지개를 켜며 허리를 좌우로 움직였다. 근육이 잡아당겨지는 기분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쿠로오는 스가와라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들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보수적을 뛰어넘어 쑥맥에 가까운 스가와라가 저런 단어를 입에 담을 리가 없는데. 잠시간의 침묵을 지키던 쿠로오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키스?”

  “응. 컬러리스인 자기 친구가 키스하면 보인다고 했다면서 내 멱살을 쥐고....”


  아니, 잠깐만. 지금 내 입으로 키스 했다고 말했나? 고등학생이랑 키스 했다고 말한 거 맞지? 게다가 일방적으로 키스를 당했다고 말했어! 쿠로오를 보며 이야기하던 스가와라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다시 짐 정리를 했다. 귀까지 붉어진 것을 본 쿠로오가 오야오야? 하며 놀리기 시작했다. 3개월 전 들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하자면 이번이 스가와라의 첫 키스일 것이다.


  “좋겠다~ 누군 영계랑 키스도 하고.”

  “여, 영계가 뭐야! 못 하는 말이 없어!!”

  “동네사람들! 스가와라가 아직 젖살도 덜 빠진 고등학생이랑 키스 했데요!!”

  “너 조용히 안 해!?”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방이었기 때문에 큰 소리로 말하면 옆방에 들리는 건 당연했다. 이 주변은 대부분 학생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에서 누가 듣고 있을지 모른다. 스가와라가 붉어진 얼굴로 당황해서는 근처의 베개를 집어다가 쿠로오를 몇 번 때렸다.


  “아무튼, 가장 효과 있는 게 키스면 하루 종일 키스만 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 나도 일상이라는게 있잖아.”

  “아니면... 이거?”


  왼손으로는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오른손의 검지를 치켜들어 원 사이로 통과시켰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스스로 고등학생과 짜릿했던 키스를 고백했던 것 보다 더 붉어진 스가와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매우 엄격한 집안에서 손만 잡아도 애기가 생긴다는 말을 믿고 자란 것 같은 태도였다.


  “걔는 고등학생이라고...!”

  “스가,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요즘 고등학생이 얼마나 빠른데. 네가 느린 거야.”

  “아, 아니 그래도, 그, 나, 나이차가....”

  “시간이 별로 없다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가야지 뭘.”


  너 지금 남 이야기라고 되는 대로 말하는 거지! 스가와라가 빽 소리를 지르자 쿠로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남 일이잖아? 라고 웃으며 물건이 날아오기 전에 스가와라의 방을 빠져나갔다. 완전히 쿠로오에게 놀아났다는 것을 생각하니 분했다.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왜 카게야마와 그런 행위까지 고려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치료법은 그저 잦은 접촉으로만 나와 있었기에 정말 쿠로오에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가 아무리 치료를 위해서라지만 그런 부적절한 관계는 역시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과했던 걱정은 없어진 것 같았다. 한동안 쿠로오를 못 볼 것 같으니 외식이라도 해야지, 반쯤 정리한 옷가지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영영 오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미야기에 체류하는 짧은 기간도 아니라는 것이 스가와라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가장 빠른 기차표를 끊고 나서 스가와라는 자신이 미야기에 내려가는 결정적 원인이 되는 카게야마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일방적으로 정해진 일이었기에 당연히 카게야마에게 알려졌겠지만, 전해듣는 것과 스가와라가 직접 전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되어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6시 반 정도면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 “스가와라씨?”

  “어... 안녕 카게야마.”


  전화 너머로도 카게야마가 놀라 당황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누구야? 하며 수군거리는 남자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친구들과 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다음에 뭐라고 해야 하더라, 라고 잠시 고민하던 스가와라는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용건만 빠르게 말하는 쪽을 선택했다.


  “나 내일부터 미야기에서 근무하게 됐어.”

  - “내일이요?”

  “응, 방학이 끝날 때 까지는 미야기에 있을 것 같아.”


  카게야마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무언가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어딘가 이동하느라 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금 소란스러웠던 소리가 사라지고 바람이 부는 소리가 났다.


  - “그럼 미야기에 오시면 어디서 지내세요?”

  “기숙사가 배정된다고 하더라고.”


  오이카와가 안내해 준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받지 못했다. 먼저 가 있던 오이카와와 같은 기숙사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아니면 의외로 번듯한 방을 얻어 줄지도 모른다. 일단 학생이자 환자였고, 특이 케이스로 분리되어 관리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냥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서 출퇴근을 해도 나쁘지 않을 텐데.


  - “...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니야. 너만 앓는 병도 아니고, 같이 치료해 나가야 하는 건데 미안할게 뭐가 있어.”


  아무래도 일부러 미야기로 옮겨 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자신도 강제적으로 옮겨간다는 이야기를 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미야기에 도착 하면 연락 줄게, 라는 말로 전화를 끝냈다. 조심히 오세요, 라는 친절한 목소리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애써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사실들이 다시금 스가와라의 머릿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자신이 카게야마한테 미안할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카게야마는 전화를 끊기 전에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카게야마는 정말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왜 이제야 나타난건지에 대한 화풀이라도 해야 정당한 게 아닐까? 카게야마는 정말 자신에게 첫 눈에 반하기라도 한 걸까.

  카게야마 토비오, 라는 글자라 화면에 3초 정도 떠 있다가 다시 대기화면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알록달록했던 기본 배경화면이었으나 지금은 컬러리스용 화면으로 바뀌었다. 고작 한 달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서 모든 것에 적응하고 있었다. 아마 카게야마도 불편함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스가와라는 인간이 색을 보는 것이 사치스러운 행위라는 생각까지 했다.


  “스가, 간만에 봤는데 한잔 할래?”


  스마트폰을 붙잡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스가와라는 갑작스런 쿠로오의 부름에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그래, 가자. 라고 대답했으나 어딘가 시원찮은 대답에 쿠로오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녁에 혼자 놔두면 또 혼자 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파고 들까봐 얼굴을 내밀어 본 것이었는데, 쿠로오의 예상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꼬치 먹으러 가자.”

  “아- 양꼬치에는 칭다오인데.”


  콕 집어 양고기라고 말한 적도 없는 스가와라는 양꼬치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봤는데 또 한동안 못볼 것 같으니 하루 정도는 우울한 친구가 원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쿠로오도 싫어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래도 술은 조금 조절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스가와라는 새벽까지 쿠로오와 술을 마시고 비몽사몽간에 신칸센을 타고 기절하듯이 잠들었다가 미야기에 도착하자마자 숙취해소 음료를 단숨에 비워냈다. 다른 곳은 괜찮았는데 계속 머리가 아팠다. 급한 데로 화장실로 들어가서 머리와 옷을 다듬어 보았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것 외에는 평소와는 다름없어 보였다.

  화장실에서 나와 개찰구를 통과하자 가볍지만 결코 후줄근하지 않은, 오히려 차려입은 쪽에 속한 오이카와가 보였다. 마치 주변에 무슨 방어막이라도 치고 있는 것 마냥 그의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도쿄에서도 먹히는 얼굴이 미야기에서 안 먹히겠어?

  스가와라가 개찰구 밖으로 나오자 유난히 들떠 보이는 오이카와가 웃으며 스가와라를 반겼다. 정말 즐거움으로 반기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반기는 건지 표현하기 묘한 얼굴이었다. 즐거워 보이는 건 확실했다. 즐거운 이유도 순수하게 자신이 반갑기 때문도 아닌 것 같았다.


  “스가쨩도 미야기 촌구석으로 끌려왔구나.”

  “그게 기뻐서 웃고 있었어?”

  “그럼! 너 내가 미야기 배정됐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기억 안나?”


  그건 네가 오키나와나 훗카이도에 갈지언정 절대 미야기는 안 될 거야, 라고 호언장담 해놓고 미야기로 가게 되었으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다 바쁘고, 내가 돌아왔더니 자기들은 도쿄로 가버리잖아. 투덜거리며 그동안 자신이 심심하고 외로웠다는 것을 표출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두루두루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극소수에 가까운 사람이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택시에 타고 나서 스가와라는 잊지 않고 카게야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도착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시간이 되면 연락하자는 내용을 적었다. 스가와라의 문자를 보던 오이카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스가쨩이 토비오의 파트너였다니....”

  “네가 어떻게 카게야마를 알아?”

  “내 담당이라서. 망할 토비오쨩 사교성도 나쁘고 말주변도 없으면서 하고 싶은 건 많고....”


  스가와라는 자신이 오이카와의 어떤 스위치라도 누른 것 같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카게야마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매번 뚱한 표정이라서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고 한다. 카게야마와 함께 상담치료를 받는 쿠니미 아키라, 라고 하는 학생 역시도 항상 의욕 없는 얼굴이라 처음에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쿠니미라는 학생의 앞에는 별다른 수식어가 붙지 않는 걸 보니 오이카와는 아직도 카게야마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어 보였다. 오이카와는 그간 카게야마가 자신에게 한 악행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듣고 싶었지만 몰려오는 졸음에 맞장구를 치는 것이 최선이었다.

  미야기의 컬러리스 센터는 스가와라가 알던 곳에서 조금 더 크고 최신식이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올해 5월에 이사를 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따.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 시설은 도쿄지부보다 더 좋았다. 크기는 도쿄지부에 비하면 작았지만, 스가와라의 예상보다는 컸다.


  “왔냐? 오이카와.”

  “응! 아, 이쪽이 인턴 관리 담당인 이와이즈미 하지메쨩이야.”


  하지메쨩, 이라는 호칭에 오이카와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라는 이름이 묘하게 익숙했다. 어디서 들어 보았더라? 어딘가의 보고서? 스가와라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고민을 우선 접었다. 자신의 관리 담당이라는 남자와의 인사가 더 먼저였다. 듬직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오이카와의 이미지와는 거의 반대되는 사림이었다.


  “스가와라 코우시입니다.”


  살짝 웃으며 악수를 청하자 이와이즈미가 흔쾌히 손을 뻗었다. 오이카와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눈을 굴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와이즈미의 깍듯한 모습은 자주 보았지만 스가와라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예의를 차리는 모습은 실습 때 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네, 오이카와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우선 스가와라씨의 담당의인 타케다 선생님께서 검사를 먼저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짐은 제가 맡아 두겠습니다.”


  뭘 가만히 있어, 망할카와.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알겠어, 라며 스가와라를 의료병동으로 데리고 갔다. 망할카와, 라는 이름이 묘하게 입에 붙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라고 생각하다가 오이카와가 술만 마시면 전 애인처럼 꼭 새벽에 전화를 걸었던 사람이 온갖 짜증을 내며 오이카와를 불렀던 별명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와이즈미씨가 혹시 그 ‘이와쨩’이야?”

  “응. 이와쨩도 여기 취직했더라고.”


  탈의실 이쪽이야, 라고 말하고는 언제 받아온 건지 모를 검사지를 스가와라에게 내밀었다. 종이 한가득 돌아야 할 방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런 건 도쿄 지부에서 확진 판정 받았을 때도 했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특이한 케이스다보니 여러모로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저 근무만 한다고 생각하고 술을 마시고 온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얌전히 2차에서 멈췄어야 했다.


  “끝나면 연락해. 밥 먹자.”


  오이카와는 친절하게 스가와라가 탈의실을 들어갈 때 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같이 놀 사람이 없었던 걸까. 이렇게까지 살가운 오이카와와 함께한 적은 거의 없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제발 이상한 곳에서 재검사가 뜨지 않기를 바라며 스가와라가 옷을 갈아입고 오이카와가 준 종이를 따라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정확히 12시 10분 전에 끝났고 오이카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오이카와와 함께하는 식사에는 이와이즈미도 같이 하게 되었다. 여기에 온 이후로 항상 이와이즈미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며 앞으로 자주 볼 테니 서로 말 편하게 해, 라며 다시 인사시켜 주었다.


  “두 사람 다 아동과인데 나 혼자 청소년과네... 오이카와씨 외톨이야.”

  “얼씨구 거기서 네가 제일 즐겁게 돌아다니잖아.”

  “어쩐지 도쿄에 있을 때 보다 얼굴도 좋아 보이더라.”


  왜 내 편이 아니라 날 갈구는 사람이 늘어난 걸까? 둘 다 처음 구내식당에 왔을 때는 영원히 친해지지 못할 것처럼 서먹서먹하더니 식사가 끝날 쯤에는 고등학교 동창마냥 죽이 척척 맞았다. 정확하게는 오이카와를 향한 여러 의견과 생각이 일치했다. 두 사람은 오이카아에게 차가운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갈라졌다.


  “저녁에 보자!”


  마치 동네 친구들과 약속을 하듯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원래도 잘 웃고 밝은 성격이었지만, 스가와라가 온 것이 상당히 좋은지 평소보다 더 해실거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좋은가, 라는 생각으로 이와이즈미가 힐끗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스가와라는 거의 기절하기 직전의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괜찮아?”

  “아니... 어제 새벽까지 술 마시고 와서 졸려 죽을 거 같아.”

  “그런 거 치곤 멀쩡해 보이던데.”

  “식곤증이 오는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지... 한 30분만 지나면 괜찮아.”


  정 안되면 비타민이라도 맞지 뭐. 스가와라 코우시가 온다는 소리에 오이카와는 제일 먼저 스가와라가 엄청난 노력파에 어떻게든 하고야 마는 타입이라 옆에서 잘 말려줘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라는 생각을 했다. 또 스가와라가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두 번째로 언급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피곤한 것도 새벽까지 술을 마시느라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자신도 모르게 오이카와에게 잔소리를 하는 말투로 말했다.


  “카게야마 앞에선 술 마시지 마.”

  “당연하지. 그런데 이와이즈미도 카게야마를 알아?”

  “오이카와랑 붙어 있으면 다 알게 되더라.”


  과연, 자신보다 오랜 시간 카게야마를 본 사람들이었다. 3층에 도착하는 알림음을 듣자마자 스가와라가 벽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켰다. 입이 찢어질 것처럼 하품을 하며 내렸다. 설마 내가 청소년 앞에서 술을 마시겠어? 라고 하품 섞인 대답을 했다. 이와이즈미는 그 대답에 꽤나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일은 도쿄에서 하던 것과 똑같았다. 도쿄에서는 전담 단체 프로그램을 맡았지만, 이곳에서는 보조로 이곳저곳을 다녀야 했다. 컬러리스 전문 치료사라는 직업은 의료인에 속하였으나 육체적인 치료보단 정신적인 부분과 색체맹증의 치료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두 사람과 두 사람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살피며 치료를 돕는 상담사에 가까운 직업이다. 때문에 스가와라는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가며 아동과 치료실을 오갔다.

  도쿄에서 온 인턴이라는 소리에 스가와라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가지 일을 맡게 되어 도쿄보다는 많은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더 피곤해질 것은 확실했다. 이래서는 따로 공부할 시간은커녕 환자를 분석하고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것으로 3개월을 다 보내버릴 것 같았다.


  “카라아게 먹으러 가자!”


  아직도 서류정리가 끝나지 않은 아동과에 오이카와가 아침에 봤던 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러나 스가와라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고 이와이즈미 역시도 차트를 입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등지고 앉는 자리에 배정되어 있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애석하게도 스가와라와 이와이즈미는 서로 말을 맞춘 것처럼 오이카와의 말에 대답조차 해 주지 않았다.


  “이와쨩! 스가쨩!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오이카와, 내가 말한 건?”

  “아까 다녀왔어. 그보다 지금 7시 넘은 건 알고 있어?”


  스가와라는 말없이 일하다가 오이카와 덕분이 시계를 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집중이 안 되었구나, 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스가와라는 작업하던 모든 내용을 저장하고 컴퓨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가 버벅거리며 몇 번 깜박였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꺼풀 위를 지그시 누르기 고통이 동반되었다. 배고프고 피곤했다. 오전 내내 검사를 하고 오후에는 이곳저곳으로 불려 다녔다. 그리고 진료가 끝나기 10분 전에 담당의를 만났다. 우카이 교수님의 선배라고 소개했지만, 얼굴은 후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당장 편의점에서 주먹밥으로 배를 채우고 눕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카게야마한테 점심에 연락을 안했네, 라는 생각으로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을 꺼내려던 차에 가자! 라는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서 수면을 취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센터 바로 앞에 있는 도시락 집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 후에 오이카와는 센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아파트 단지로 스가와라를 안내했다. 902호, 라는 말과 함께 열쇠를 받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비록 바퀴가 달려있는 가방이긴 하지만 끄는 것조차 힘들고 지치는 행위였다. 빨리 들어가서 씻고, 아냐 그건 생략. 잠이 중요하다. 당장 들어가서 잠들 것이다.


  “다녀오셨어요. 스가와라 씨.”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게야마가 보였다. 편안한 옷을 입은 카게야마가 샤프를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혼자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집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눈앞에 보였다. 너무 졸려서 환각에 시달리고 있는 건가? 스가와라가 눈을 비비고 몇 번이나 깜박이고 난 후에 보아도 여전히 카게야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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