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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무/- ing

헬헤임 프로젝트

Fong 2015. 5. 9. 23:22

원래는 레몬메론+모브메론으로 원고하려고 했는데 외전이 나오는 바람에 엎음...ㅠ


01.
“…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에 적임자를 찾는 과정은 엄격하게 진행될 것이며 또한….”
“아아, 싱겁기는 결국 또 미룬다는 소리잖아.”


유그드라실의 본사에 자리 잡고 있는 회의실의 정적을 깬 남자가 고개를 좌우로 틀더니 나른한 표정으로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모두가 다 겁쟁이에 뒤로 내빼기만 좋아하는 놈들뿐인 모양이다.
젊은 나이에 상임 연구원으로써 활약하고 있는 그는 유그드라실이 관심을 갖는 인제중 한명이었다. 성격이 조금 많이 특이한 것을 제외한다면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예 정해 놓는 게 좋지 않아? 이대로라면 연구고 뭐고… 전부 개죽음을 맞이할 뿐이잖아?”
“… 언행에 주의해 주세요. 우리들이 짊어져야 할 미래는….”
“미래고 뭐고… 애초에 짊어질 생각조차 없지 않아?”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비웃는 투로 입을 열었다. 왼쪽 앞머리만을 내린 특이한 머리스타일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센고쿠 료마, 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도망칠 생각 없으니까. 오히려 흥미로운걸. 혼자서라도 당장 자와메로 가고 싶어.”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당신 혼자는 연구에만 몰두할 가능성이 높으니, 프로젝트를 끌고 나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과거 센고쿠 료마의 상관이었던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자신이 흥미 있는 일 외에는 전혀 의욕을 내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는 시늉으로도 인사평가의 보통의 점수를 받는 남자였다. 제멋대로 일을 벌려놓고 숨기는 일은 또 어찌나 일품인지, 그가 처음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 위염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가.
질질 끌기만 하는 회의에는 지쳤는지 료마가 자리를 벅차고 일어섰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재미없는 회의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럴 바에야 자료들을 보며 연구방법을 더 생각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냥 아무나 고르면 되잖아? 아, 일본인이 좋을 거 같아. 일본까지 가서 외국어를 쓰고 싶지는 않으니까.”


일본에도 있지 않나? 유그드라실 지부가. 사람 한두 명쯤은 있지 않나 싶었다. 예전에 알던 남자 한명을 떠올렸지만, 곧 머릿속에서 지웠다. 당연이 이곳에 있을 줄 알았던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얼굴을 내 비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그드라실이 그렇게 큰 건지, 아니면 생각보다 실력이 없었던 건지는 그로써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명, 후보로 내세울만한 사람이 출장 와있으니 직접 보는 건 어때?”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는 료마에게 상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그 후보자 명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료마가 있다고 해서 도움은커녕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후보자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할까 걱정되었기에 결정되는 사실을 모르는 쪽이 편했다.
과거 상사였던 그가 ‘직접 보라’는 말은 했지만, 자신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결정권이 있다면 세계를 위협하는 이 현상들을 가장 먼저 연구할 수 있는 권한 정도일 것이다. 전부 무섭다느니 그만큼의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지 않아하는 겁쟁이에 무사안일주의의 사람들일 뿐이다.


“유그드라실도 겁쟁이들뿐이지….”


료마가 자신의 모국어로 중얼거렸다. 연구실로 돌아가려면 이사진들의 개인실이 있는 복도를 지나가야 한다. 말 한번 잘못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최소한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하는 쪽이 유리했다. 무서운 것 보단 귀찮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이사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왔다. 유럽에 있는 본사에선 보기 힘든 흑발의 남자였다. 피부로 봐서도 동양인이 확실했다. 아까 들었던 그 사람인가, 싶어 다가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본적 있는 외모에 료마가 기억을 뒤집는데 애를 썼다. 누구인지 떠올리기 위해 그 자리에 멈춰 서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로 다가갔다.
약간의 한숨을 쉬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지금은 뭐가 그리 더운 건지, 땀까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지금 날씨가 동아시아 국가보다 더웠던가? 그에게로 다가갈 동안 본적이 있는 그에 대한 모든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찾아내기 시작했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얼굴에 딱히 미간을 찌푸리지 않아도 입 꼬리가 올라가지 않는 이상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표정을 지닌 사람을 딱 한명 알고 있었다.
기억 속에 있던 그 남자보다 키가 더 컸고 더 마른 체격이 되어 있었으며, 멋 같은 건 부릴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가 머리를 다듬기까지 했다. 장족의 발전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은 변한다고 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확신하긴 이르다고 생각했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타카… 토라?”


그 동양인 남자가 료마의 말에 반응했다. 놀란 얼굴로 료마쪽을 돌아보았다.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있는 얼굴이었다. 마치 들켜선 안 될 것을 보인 사람처럼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이렇게 당황한 그는 본적이 없다.


“역시? 쿠레시마 타카토라. 맞지?”
“료마…? 왜 여기에…?”


유그드라실에서 료마를 본 것이 의외였기 때문일까, 입을 열지 못했다. 무언가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벙찐 표정으로 료마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어 보지만, 입 밖으로 낼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모양인지 뻐끔거릴 뿐이었다.
이사장실의 문이 열리면서 사람 한명이 나왔다. 아마도 이 방의 주인이자 유그드라실에 열 명도 넘게 있는 이사 중 한명일 것이다. 료마를 알아보지 못하는걸 보니 연구부문은 아닌 모양이었다. 료마와 타카토라가 대화중이었다는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료마를 한번 바라보고는 타카토라를 보며 미소 지었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료마가 향하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조금 떨어져서 걸으려는 타카토라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고 자신의 옆으로 붙이는 모양새와 당황한 눈으로 그 이사와 료마를 힐끗 쳐다보며 반 강제적으로 향하는 발걸음에서 타카토라가 무엇을 했는지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취미가 있었던가? 아니면 그 유명한 로비? 료마는 타카토라를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부친과 모친을 본적이 있다. 먼발치에서 봤기에 봤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라면 많이 들었다. 부친은 연구원 출신의 중역이었고 지금은 미국에서 의약부분 담당자로써 활약하고 있었으며 모친은 미국지부의 지부장이었다.
그런 집안의 장남이 여자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행위들을 행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본사에 한 자리라도 얻고 싶은 걸까? 아니면 정말로 취향인 건가? 인맥구성? 매번 동물만 연구하다 보니 사람에 관한 것을 생각하려니 번거롭게 느껴졌다.
항상 연구실에만 앉아서 지내던 료마는 오랜만에 회의 자료가 정리된 파일을 연구실 직원들에게 건네받으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 유그드라실 유럽지부에 온 동양인은 딱 한명이고, 프로젝트 아크가 실행될 자와메 지부에서 직함에 비해 비교적 많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그 유명한 쿠레시마 부부의 장남에 키도 크고 미남인데다가 영어는 완벽하게 구사하지만, 독일어가 조금 서툰 남자라는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후보지 리스트의 가장 처음에 올라온 사람의 프로필이 쿠레시마 타카토라였다. 본인 스스로가 프로젝트 아크의 실행을 원했고 그를 위해 자와메시의 생활 및 시스템 자체를 바꿔놓았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그 지역의 권한의 일부까지도 위임받았다고 한다. 내부에서도 그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모양이었다.
문득, 낮에 다른 남자의 팔을 허리에 두르고 끌려가듯 눈앞에서 사라진 타카토라가 생각났다. 이것이 타카토라 본인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평가받아서 나온 결과라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는 걸까. 아니, 이 리스트가 작성되기 전부터 이미 몸을 팔고 다리를 벌려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 자료에 따르면 타카토라의 허리에 팔을 둘렀던 사람은 프로젝트 아크를 이끌어나갈 사람에 대한 표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헬헤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사 중 한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료마는 타카토라에게 흥미가 생겼다. 모두가 기피하고 피하려는 프로젝트 아크에 몸을 던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타카토라는 연구자가 아니다. 머리는 좋았지만, 과학이라는 과목에 딱히 흥미를 두지는 않았었다. 단순한 권력이 필요해서? 아니면 지배욕? 그것도 아니면 그저 인정받고 싶어서? 그 쿠레시마 타카토라가?


“나한테는 언제 찾아오려나.”


분명 타카토라에게도 일부 인사들이 전해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압도적인 추천을 받았을 리가 없다. 두 번째 후보 역시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구 외에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은 오랜만이었다.


02.
사실 센고쿠 료마는 언젠가는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려줄 것 같은 사람이 생각났다. 그는 유그드라실의 무엇에 매료된 걸까? 자신처럼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센고쿠... 료마....”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타카토라, 라고 불렀던 사람이었다. 1학년부터 쭉 같은 반이었다. 유별난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타카토라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사고방식이나 생각체계가 일반 사람과 다를 뿐이었다. 시험 점수는 상위권이었지만, 최선을 다 하지는 않았다. 딱 한번, 항상 1등이었던 타카토라를 2등을 밀어낸 적은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그가 1등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타카토라는 료마가 자신보다 머리가 좋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언제나 료마는 자신보다 위에 설수 있었지만 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담담했다. 그 후부터 료마는 ‘쿠레시마 군’ 대신에 ‘타카토라’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대학은 같은 아마키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전공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만나는 횟수가 급격하게 적어졌다. 사실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연락할 수 있었지만, 이유없이 사람을 불러내는 성격들이 아니었기에 소원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료마는 유그드라실에 들어오는 것이 오히려 아까울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유그드라실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간다 하더라도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료마가 아직도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타카토라는 그것이 궁금해졌다. 의미 없이 살아가던 그를 매료시킨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03.
타카토라는 소박한 사람이었다. 일본에서도 그의 이런 점은 유명했는데, 식사 약속이 없다면 사원식당에 식사를 했다. 오히려 사내식당을 더 좋아했다. 일본에서는 타카토라가 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관리자가 안절부절못한 눈으로 본다던가, 숨죽이며 밥을 먹거나 신기하게 쳐다보는 일이 많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런 갑갑한 시선들이 없어서 한결 편했다.
본사로 온 이유는 프로젝트를 자신이 따내기 위해서도 있지만, 자와메시를 유그드라실이 목표로 하는 미래 도시로 만들기 위한 과정들과 앞으로의 일정들을 보고하기 위해 온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타카토라는 일을 맡으면서 의문을 갖게 된 점이 있었다. 왜 유그드라실은 자와메시에 주목하는가?
자와메는 크랙 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아직 세상에는 공표되지 않았지만, 다른 차원의 공간을 이어주고 그 공간에 있는 것들을 왕래하나는 일종의 연결통로였다. 크랙에서 흘러나온 식물이 현지에 적응하여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불규칙적으로 열리는 크랙이 지구상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라는 정보만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그드라실의 자와메에 대한 정책은 오히려 유그드라실이 더 손해를 보는 것들이 많았다. 일본 정부에게서 자와메시의 군사적 제도적인 부분을 모두 위임받기까지는 그만큼의 자본을 쏟아 부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 체결만 본사에서 협상이 된다면 자와메시는 유그드라실의 사유재산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 된다.


“밥 먹을 때는 식사에 집중해야지. 타카토라.”


서류를 넘겨보던 타카토라가 놀란 얼굴로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보았다. 료마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앉아서 물을 마셨다. 잠시 료마를 인식하지 못한 모양인지 눈을 꿈뻑거리면서 료마를 보았다. 료마가 햄버거를 한 입 베어물고 얼빠진 타카토라를 바라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네가 한 말이잖아? 밥 먹을 때는 밥에 집중하라고.”
“중요한 일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변명하게 되어버린 타카토라가 서류에서 손을 때고 자신의 앞의 식사에 집중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에 아직까지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서의 표지는 점심식사 후 료마가 반드시 참여해야 할 회의 제목과 같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동양인이 타카토라라는 것이 확실시 되었다. 나중에 받아본 자료에서 최우선 순위로 추천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본인은 이 사실을 모르니 당연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최우선 순위로 된 것이 그의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순전히 능력 덕분인지는 현재의 료마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자와메시 관련은 보고뿐이잖아? 긴장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게다가 싸인만 하면 끝나는 시안이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회의에 관한 것을 언급하자 타카토라는 빵을 먹던 손을 멈추었다. 일부러 자신 앞에서 회의에 참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무언가를 바라고 자신에게 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듣는 사람은 그럴지도 모르지.”
“보고하는 사람도 긴장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타카토라가 입을 다물고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료마의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기 위함이었다. 말없이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넣는 타카토라를 보면서 료마도 식사를 계속했다. 료마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둘 사이에는 갑작스러운 침묵이 돌았다.
타카토라는 여전히 목표중심적인 사람이었는지 료마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식사만을 했다. 셀러드에 빵, 약간의 소고기로 된 점심이었다. 영양 벨런스를 맞춘 식단이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전혀 재미없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흥미가 떨어지지 않았다.
료마가 손을 뻗어서 타카토라의 그릇 위에 있는 방울토마토를 집었다. 료마가 예상한대로 료마의 손을 따라 타카토라의 시선이 움직였다. 음식 하나에 목숨을 걸 사람은 아니지만, 식사예절이 좋지 않다는 둥의 잔소리를 입에 담을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음식을 함부로....”
“일종의 로비라고 생각해. 이보다 더한 것도 남한테 퍼 주면서 쩨쩨하게.”


료마가 농담하는 어조로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도리어 타카토라는 순간적으로 멈춰버린 컴퓨터처럼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얼어붙었다는 표현을 이럴 때 써는 구나, 라고 료마가 인식할 정도였다. 타카토라의 눈이 료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료마가 몇 번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려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틀린 말 한건 아니잖아?”


누군가가 구두 끝 부분으로 종아리를 문지르면서 간질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상대가 료마라는 것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료마의 표정은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먹잇감을 발견한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흥미를 표하는 것처럼, 료마도 생글생글 웃으며 타카토라를 보았다.
료마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타카토라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마치 꼬투리를 잡혀서 성희롱을 당하는 여직원처럼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귀까지 빨갛게 변한 것이 보였다. 부끄러웠다. 그 누구보다도 청렴결백하게 살아오리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가장 저급한 수단을 써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계속 상기되었다.


“나도 기대할 테니까. 타카토라.”


료마는 마지막 한입 남은 햄버거를 입에 넣고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일어났다. 료마가 자리를 떴음에도 타카토라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했던 잔소리들이 다 허울뿐이었다며 자신을 조롱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타카토라는 식사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먹은 것도 다 화장실에서 게워내버렸다.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버틸 수가 없었다.


04.
“자와메시의 정책 및 군사권은 최종 합의 단계로써, 유그드라실과 일본 정부의 서명만 이루어진다면 계획도시 자와메의 모든 프로젝트는 완료됩니다.”


계획도시 자와메 프로젝트는 스무명 남짓한 이사진과 고위급 인사들이 포함된 자리에서 진행되었다. 료마는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연구 부분의 대표라는 신분으로 참석했다. 료마는 타카토라가 프로젝트를 말하는 내내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눈이 마주칠 때 마다가 료마가 귓가에서 기대하고 있을게, 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05.
“타카토라.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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