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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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무/- ing

오버로드 미츠자네

Fong 2015. 8. 23. 23:28


본 글은 오버로드 라이더즈 '식물의 목소리'의 류겐-쿠레시마 미츠자네 파트를 작성할 때 쓰여진 글로써, 본 내용과는 다른 형식입니다.

원작(?) 을 보고 보시면 더 재미있을... 지도요?



01.

미츠자네가 난간의 바깥쪽을 잡았다가, 앗, 하고 급하게 손을 때어냈다. 녹슬고 날카로운 쇠붙이가 손끝에 박혔다가 떨어졌다. 황급히 손을 땐 미츠자네가 상처를 보았다.
조금만 더 깊게 파였어도 피가 날 뻔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미츠자네는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몸의 변화에 아무런 사고도 하지 못했다. 그 상처는 아마도 피가 날만한 상처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잘못 본 걸까? 눈이 이상해 졌나? 그저 손에 자국이 났을 뿐인 것을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 엄지로 상처가 났던 손끝을 만져 보았지만,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다. 귀신에 홀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 건가.


“밋치, 괜찮아?”

“아, 어, 응. 조금 날카로운 곳에 손이 닿아서 놀랐을 뿐이야.”


보이지는 않았겠지? 그냥 자신만 본 헛것임이 틀림없다. 방금 자신의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바보 같은 헛것을 보았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야 몰려있던 피곤이 몰려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저녁에 보자!”


잭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고급 승용차에 오르는 미츠자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굳은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서 절대 연락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즉시 약속을 잡았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유그드라실의 새로운 건물은 여기서 걸어서 십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잭의 전화 상대도 아무런 망설임과 지체 없이 약속을 잡았다. 그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별일이군. 네가 먼저 만나자고 할 줄이야. 뉴욕은 어땠나?”
“지금은 제 이야기보다도 미츠자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미츠자네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에 타카토라가 입을 다물었다. 비서가 와서 커피와 녹차를 내려두고 방을 나갔다. 비서가 나간 후, 타카토라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근엄한 표정을 지었던 타카토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 신자처럼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엄지의 관절을 매만지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미츠자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은폐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오늘 미츠자네한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잠도 없어지고 식욕도 없고,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고 소리나 감각에 예민해진데다가 기억력도 비상할 정도로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
“그리고 눈앞에서 상처가 회복되는 걸 봤어요.”


잭의 말을 들은 타카토라가 눈을 감았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맞잡은 손의 새하얀 뼈마디가 보였다. 손톱이 손등을 파고 들어서 피가 날 것만 같았다.


“이건 전부 코우타가 변해갔던 과정입니다.”
“알고 있다.”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코우타의 센고쿠 드라이버에 직접 록시드를 끼어주었던 자신이다. 그의 몸에 변화에 대해서는 드문드문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설마 미츠자네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내가 제대로 처신하지 않았기에 생긴 나의 과오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더 먼저 알았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통솔하고 바른 길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자만심에 미츠자네를 망치고 말았다.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잖아요.”


질책, 비판, 책임을 묻는 그의 곧은 눈. 타카토라는 이것을 원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제대로 꼬집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타카토라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손가락질 하며 지켜보는 쪽이 더 편했다.


“만에 한에 잘못해서 세상에 들어난다거나... 유그드라실은 모르고 있는 거죠?”


타카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긍정했다. 잭도 혼란스러워 보였다. 오랜만에 찾은 친구에게 일어난 변화에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미츠자네는 아무것도 모르던데요.”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미츠자네를 위한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제 입으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입에 담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제 단 한명밖에 남지 않은 가족에게 사랑하는 동생에게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미츠자네를 위한 것 뿐만이 아니었다. 타카토라에게 있어서도 같이 인생을 보내며 늙고, 죽음을 기다릴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로 만들 수 밖에 없다. 타카토라는 인간이다. 미츠자네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는 한, 또 다시 미츠자네를 혼자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되돌아 갈 길도 없이 혼자로 만드는 일이 뼈에 사무치도록 슬프게 느껴졌다.


“미츠자네의 문제는 이제 당신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또 뭔가 변화가 있으면 연락 주세요. 연락처는 알고 계시죠?”
“그렇게 하지.”


잭은 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츠자네가 아니라면 만날 일도 없는 사이였다. 세계적인 대기업의 중역과 이제야 조금 인터넷에서 이름이나 영상이 떠도는 스트리트 댄서. 실로 기묘한 조합이기도 했다.


“미츠자네의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방을 나가기 전 타카토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잭이 돌아보자, 양손을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입을 일자로 다문 타카토라가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연륜이 느껴지는 외모였다. 날이 갈수록 날카로운 눈매가 부드럽게 변하면서 그의 사려 깊음이 보이는 외모였다.
마치 큰 일이라도 해준 사람을 대하는 타카토라의 태도에 잭이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미츠자네도 그렇지만 타카토라도 아직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알아가고 사귀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무지한 모양이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미츠자네의 친구니까 당연한 거죠.”


시원시원한 잭의 대답을 들은 타카토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미츠자네에게는 좋은 형이 있으니, 자신이 잠시 떨어져도 괜찮았던 것이 틀림없다.
잭과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온 미츠자네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얼굴로 손끝을 엄지로 매만졌다. 분명 벌려졌던 상처가 깨끗하고 깔끔하게 없어져 있다. 원래부터 이런 피부를 가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정말일까? 정말로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제 방으로 올라간 미츠자네가 책상 앞에 앉아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연필꽂이로 손을 뻗어 커터칼을 꺼냈다. 손가락에 힘을 주고 올리자 또각또각 하며 한칸식 밀려나는 감각과 함께 날이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 정확하게 세 칸을 올린 미츠자네가 잠시간 칼을 바라보았다.
만약 정말로 헛것을 본 것이면 어쩌지? 보았던 것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찔리면 분명 아플 것이다. 피가 나는가, 상처를 들키는 가 숨길 수 있는가를 떠나서 스스로의 고통이 무서웠다.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던 미츠자네가 오른손으로 칼을 고쳐 잡았다.
정말로 만약에, 제대로 본 것이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진 수면에 비해 또렷한 정신, 민감해진 촉각과 시각, 비정상적인 기억력과 체력. 이 모든 것이 사람이 아니게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쿠레시마 미츠자네가 된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인간이라고 속이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형이나 잭, 비트 라이더즈였던 그들은 인간이 아닌 자신을 받아드려 줄까?
용서받고 뉘우치고 어떤 형태로라도 갚아 나아갔던 죄와는 틀리다.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언제까지 불안에 떨면서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것은 그 모든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확인 절차이다. 몇 년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고민들을 종식시키는 일이다.
미츠자네가 숨을 가다듬었다. 오른손에 커터카를 아래로 향하게 쥐었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자신이 낼수 있는 한 최대한의 힘으로 손바닥을 찔렀다. 살을 찢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커터칼을 손바닥에서 뽑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순간 코우타의 생각이 났다. 자신이 그 창으로 배를 꿰뚫었을 때, 이런 아픔이었을까. 쓸대없는 생각을 한다고 생각한 미츠자네가 자조했다. 상처부위에 손을 가져다 대어 보았다. 손 끝에 축축한 액체라 묻어 나왔다.
역시 인간이었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미츠자네는 자신의 피는 붉은색이었지만, 그 안은 붉은색이 아니라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잭과 있었을 때는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눈앞에서 확인 가능했다.
손바닥 사이에서 세어나오던 피는 이미 멈췄다. 칼에 의해 벌려졌던 피부는 스스로 닫히고 구겨진 천을 다리미로 밀어버리는 것처럼 자국 하나 없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하, 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었다.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속이 후련해졌다. 지금까지 스스로가 생각했던 기행들이 이해가 되었다. 쿠레시마 미츠자네는 이제 괴물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부정당했는데도 왠지 모를 안도감과 평안함이 찾아왔다.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저녁은 오랜만에 만난 비트 라이더즈의 맴버들과 함께 했다. 이제는 술도 함께하는 지리는 화기애애했다. 모두가 맛이 있다고 했던 음식들도 미츠자네에겐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웃으며 맛있네, 하고 대답했다.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그런데 미츠자네는 어떻게 어릴 때 그대로야?”
“무슨 화장품 써? 나는 벌써 노화가 오는 것 같아.”


리카의 질문에 미츠자네가 당황했다가, 자연스럽게 웃으며 별로 특별한 것은 쓰지 않는다며 손사레를 쳤다. 리카의 질문에는 악의가 없다. 주변에서는 단지 남자에게 화장품을 물어서 당황했다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미츠자네는 도련님이잖아, 라며 다들 어물쩡거리겨 넘겼다.
대화가 끝나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왔다. 리카의 질문에 동요했던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가게 안의 공기보다 차가운 바깥 공기를 쐬고 있는 미츠자네의 옆에 잭이 나란히 섰다.


“괜찮아?”
“응? 아, 난 괜찮아. 술도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만나서 들뜬 것 같아.”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잭을 보자, 잭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그만둔 표정으로 그렇다면 다행이고, 라고 대답했다. 차가 몇 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버스가 끊길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늦어진다 하더라도 집에서 걱정할 나이도 아니었다.


“밋치, 난 아마 이번을 마지막으로 자와메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다. 애초에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돌아온 점이 오히려 의아하게 느껴졌다. 꿈을 포기하고 돌아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낮에 잭을 만났을 때 미츠자네는 고민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가 벌써 돌아와야 할 이유는 없다.


“응. 그래도 연락은 잊지 않고 할테니까. 연락 씹지 마.”
“알겠어.”


예전에 연락을 받고 보기만 하고 답장을 하지 않던 시절이 떠올랐는지, 잭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지금도 잭과 연락은 하지만, 성실하게 대답하거나 즉각 답장을 해주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제 입으로 알겠다고 말하면서 머릿속에 되새겼다.
잭은 좋은 사람이다. 코우타만큼이나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목표도 뚜렷하다. 밝고 사교적인 성격, 글자 그대로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잭이다.
바람이 부는 소리와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말이 안 들릴 정도의 소음은 아니었지만, 잭이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미츠자네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해도, 우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들은 친구니까.”
“... 갑자기 왜 그래.”


잭의 갑작스러운 말에 자신을 친구라고 불러주었던 코우타의 생각이 났다. 이곳에 오기 전 자신이 확정지었던 사실을 잭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오지 않을 생각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것을 위해서 따라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술마셔서 그런가? 좀 부끄럽지만 너한테는 이렇게 말해줘야만 확실하게 이해한다고 생각되서 그랬어.”


재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사실 잘 모르잖아? 잭이 손을 뻗어서 미츠자네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마치 동생에게 대하는 태도처럼 대하자 살짝 얼굴을 찌푸렸으나, 이내 웃으며 눈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내뱉었다.
잭은 좋은 사람이다.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는 그에게 배워야 한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이런 말들을 해주는 것이 틀림없다.



02.
오랜만에 만난 미츠자네는 잘 지내고 있냐는 잭의 물음에 최근 자신의 상태에 대해 여과 없이 말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미츠자네에게 다가와준 사람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미츠자네가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생활에 익숙해 진거 아니야?”


미 츠자네의 이야기를 들은 잭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미츠자네는 원래 머리가 좋았다. 그 정도쯤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잭은 아무런 생각 없이 대답했다. 또래에 비해서 특출난 사람이었기에 그것은 특별히 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렵게 느껴졌다.
잭이 자신의 손에 들린 캔 커피를 들이켰다. 일본에 있을 때 자주 마시던 커피였다. 커피를 쭉 들이킨 잭은 ‘맛이 변했어.’ 라며 작게 투덜거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잭의 태도에 자신이 정말 과민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의 맛은 변했지만, 항구 근처의 공원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비트 라이더즈 시절만 해도 새로 만들어진 공원이라 모든 것이 새것이었지만, 지금은 세월의 흔적을 안고 있었다. 헬헤임의 풍파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추억들이 남아있었다.
푸른색을 잃은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난간에 두 사람이 기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공원보다는 가이무의 차고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 그런 걸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래.”


잭의 말에 자신의 상태를 수긍하는 모습을 본 잭이 소리내어 웃으면서 미츠자네를 보았다. 일본을 떠나기 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미츠자네는 정말 변한게 없다니까.”


머 리가 좋다던가, 말을 고르는 표정이라던가, 아! 방금 그 손버릇도 여전히 똑같아. 잭은 미츠자네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 계속해서 주절거렸다. 점점 별것도 아닌 것들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잭의 표현에 미츠자네가 실없이 웃어버렸다.


“얼굴도 그대로인거 아냐? 나는 미국 가서 많이 변했는데.”
“키는 아직 그대로야.”
“어디 상처 하나도 없고... 부럽다- 도련님 생활.”


도 련님이라는 단어에 미츠자네가 언짢은 기색을 보이자, 잭이 씨익 웃으며 미츠자네의 머리를 자신의 팔로 감싸서 내리고는 주먹을 쥐고 손가락의 관절로 머리카락 아이를 마구 해집었다. 미츠자네가 짜증을 내며 빠져나오자 잭이 소리내서 웃었다.


“지금 우리가 몇 살이라고 생각...!”
“너 방금 삐졌지? 아직 어린애인 점도 똑같네.”


자 신을 놀릴 생각으로 가득 찬 얼굴을 본 미츠자네가 한숨을 쉬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오랜시간 고민한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잭은 시원시원한 성격이기에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 부분은 미츠자네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가이무 차고는 아직도 있어? 바론쪽은 이미 다른 걸로 바뀌었던데.”
“나도 잘 안 가봐서 모르겠어.”
“오랜만에 가보자.”


모 두와 함께 만날 시간은 한참 남았기 때문에 미츠자네와 잭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이무의 차고로 향했다. 예전에는 모두가 그곳에서 모여서 회의를 하거나 춤 연습을 했었다. 그때의 일들을 기억 속에서 끌어내며 다시 한 번 추억을 되새겼다.




03.


“왜 나한테 말 하지 않았어?”
“그건....”


미츠자네는 자신이 오버로드가 되었다는 것이 어떤 사실인지 알고 하는 말일까? 숨이 막혀 왔다. 형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말하기가 무서웠다.


“형에게 있어서 인간이 아닌 동생은 필요가 없는 거야?”


타카토라는 누구보다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프로젝트 아크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외부에 들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오버로드가 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오버로드가 되었다는 사실을 외부에 숨기는 것은 언뜻 보면 자신을 보호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미츠자네에게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습인 쿠레시마 미츠자네만을 인정하겠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쿠레시마의 일원으로서 유능한 인재로, 자랑스러운 동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틀림없다. 오버로드인 자신을 숨기고, 오버로드가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당사자에게 숨긴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아니면... 인정할수 없는 거야?”
“... 미츠자네... 나는....”


타카토라는 여전히 미츠자네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맞잡은 손이 떨리고 있다. 무섭기라도 한 걸까? 이제와서?
미츠자네는 자신이 먹던 포크를 집어들어서 티슈로 깨끗하게 닦았다. 타카토라의 시선이 미츠자네의 포크를 따라다녔다.


“형이 인정하지 못한다면, 지금 인정하게 해줄게.”


미츠자네는 포크를 고쳐잡았다. 타카토라가 미쳐 시선을 돌리기 전에 그대로 자신의 손목을 찔렀다. 살을 찢는 아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질 것이다. 포크를 따라 시선을 돌리던 타카토라가 숨을 들이마쉬는 소리가 들렸다.


“미츠자네, 제발....”


타카토라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기기 전에, 그대로 포크를 비틀자 살이 비틀어지며 찢어졌다. 피가 포크를 타고 흘러서 책상위에 떨어졌다.


“형, 보여?”
“그만, 그만해....”


애원에 가까운 타카토라의 말에 미츠자네가 손목에서 포크를 뽑아냈다. 방금 포크를 닦았던 티슈의 깨끗한 부분에 피에 젖은 포크를 닦아냈다. 그 사이 미츠자네의 손목은 점점 상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해 형? 예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생각하고 날 대한거 아니었어?”


태연했던 미츠자네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왔다. 타카토라는 그제서야 자신이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영원히 모르기를 바랐다. 자신 때문에 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타카토라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나는 무서워 형. 내가 레뒤에 같은 정말로 괴물이 되어버려서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파멸시킬까봐 무서워.”


그럴 리가 없다. 너는 가장 사랑스러운 동생이고, 가장 착한 사람이라고 말해줘야 한다. 동생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과거의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타카토라는 침묵했다.
뼈마디가 새하얗게 들어날 정도로 손을 잡고 덜덜 떨고있는 타카토라를 본 미츠자네는 타카토라가 자신을 두려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거절하고 있다. 가장 자신의 곁에서 붙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거절당했다.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타카토라를 두고 미츠자네가 방에서 나갔다. 그것이 미츠자네를 마지막으로 보게 된 날이었다.
그날 이후, 미츠자네는 타카토라와 마주보며 식사하지 않았다. 며칠동안 출장을 다녀온 사이 미츠자네는 이미 저번에 보여 주었던 숲속의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짤막하고 내용만 들어있는 문자만을 받았다.
별장은 좋았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자신의 행적을 되돌아보고 곱씹기에는 알맞은 장소였다. 자신이 오버로드가 된 이유는 헬헤임의 심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버로드로 변해버린 것은 잘못한 아이에게 주는 벌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집에서의 생활은 죽음을 기다리는 노년의 생활 같았다. 형이 남겨두고 간 따분한 책들을 보거나, 집 근처를 천천히 걷거나, 오래된 나무처럼 흔들의자나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형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안부인사와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준비해 주겠다는 말들이었다. 고용한 숲의 관리인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방문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형의 문자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날 부터는 형답지 않은 내용들을 적어서 보내주었다. 날씨 이야기, 일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 가끔 마주치는 비트 라이더즈들의 이야기를 했다.
반년 정도 후에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로부터 한달 뒤에는 잭에게 별장 주소를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미츠자네는 단 한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얼마 후에 잭에게서 편지가 왔다. 자신의 사진이 찍힌 포스터와 잡지들을 잔뜩 보냈다. 포스터에는 잭의 싸인까지 있었다. 그것을 본 미츠자네가 헛웃음을 지었다.
잭의 편지는 간결했다. 사실 편지라고 보기에도 힘들 정도로 짧았다. 포스트잇에 적어서 잡지의 맨 위에 붙였을 뿐이었다. ‘잘 지내고 있어?’ 며칠만에 만난 사이처럼 묻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핸드폰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 잭은 전화를 하지 않고 편지를 보내왔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편지가 도착했다. 물론 타카토라의 문자도 매일매일 도착했지만, 단 한번도 보고싶다거나, 찾아오겠다는 말은 포함되지 않았다.
잭의 편지가 스무통째 배달되었던 날을 기점으로 타카토라는 더 이상 문자를 보내오지 않았다. 첫날은 바빠서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은 드디어 지칠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셋째 날부터는 하루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끊기는 것이 불안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화를 하는 것은 무서웠다. 자신을 거절할까봐 두려웠다. 혹시라도 받지 않으면 미츠자네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안절부절 못하고 핸드폰을 바라본지 이틀이 지난 날, 타카토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거짓말 같아서 빤히 화면을 바라보다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미츠자네? 연락을 못해서 미안하다.”
전화를 받고 이어진 침묵을 깬 것은 타카토라였다. 잠긴 목소리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조금 무리를 해서, 간호사들이 핸드폰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연락할 수가 없었다.”
“... 그래?”
“당분간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응.”


목소리가 듣고싶었던 것이 본심이었지만, 미츠자네가 자신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건강하게 잘 지내라.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말 하고.”
“알겠어.”


그럼, 타카토라의 전화가 끊겼다.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형의 전화인데, 단 한번도 만나러 오지 않는 형의 전화인데도 눈물이 났다. 핸드폰을 붙잡은 미츠자네가 서럽게 흐느꼈다.
전화를 마친 타카토라는 통화 종료화면을 보여주는 핸드폰을 뚫어지게 처다보았다. 타카토라의 통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잭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거에요?”


원래 낮간지러운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사무적으로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것을 기대했던 잭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환자에거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안되는 일이다.
사실 전화도 잭이 와서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간호사들은 열흘동안 타카토라에게 헨드폰과 노트북을 압수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해외에 살고 있는 가족에게 연락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나서야 겨우 연락할 수가 있었다.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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