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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론&포도 셀프 카메라

Fong 2015. 12. 27. 02:32


특촬 흑화 / 백화 합작 : humk98.wix.com/blackorwhite 


쿠레시마 미츠자네 백화 



아버지와 같은 이름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교장선생님의 연설과 젊은 이사장이 말하는 것 치고는 조금 진부한 축하인사가 끝났다. 단상에서 내려오면서 표정 조금 어두워졌다가 두 번째 줄에서 오른쪽으로 다섯 번째에 서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었다.

신입생 대표 선서는 하지 못했다. 이사장과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올라간다면 편파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른다며 거절했다. 사실 성적도 미치지 못했지만, 제법 그럴듯한 이유였기 때문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다. 유명인이 될 생각은 없다. 조용히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준비되어 있는 루트를 밟아 올라가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다.

입학식이 끝나고 교장선생님과 젊은 이사장 그 외의 중역으로 보이는 선생님들이 가득한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익숙하지 않았던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 되었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형이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내가 똑같이 하는 것은 틀린 일은 아니다.

쿠레시마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난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직 교복은 큰 모양이구나.”


입학식이 끝났다. 학교의 운동장을 지나면서 형이, 젊은 이사장이 내게 말했다. 넉넉하다 못해 헐렁한 교복을 보는 시선에 약간의 걱정이 보였다. 이대로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 스스로도 다른 아이들 보다 작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름 많이 먹고, 방학때도 열심히 운동을 했다. 키는 조금 자랐으나 어깨가 넓어진다거나, 체격이 좋아지는 일은 없었다.

어렸을 때 보았단 형은 마르고 작지 않았다. 크고 멋진 사람이었다. 나도 고등학생이 되면 당연히 저렇게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 조금 불만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빨리 어른이 되어서 형의 도움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나도 갓 입학했을 때는 그랬으니까.”

“형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느냐는 얼굴로 나를 보던 형이 다시 시선을 앞으로 두었다. 앞으로 다섯 발 자국 정도 더 걸으면 교문이었다.


“입학했을 때, 아버지께서 못마땅한 얼굴로 교복이 왜 그 모양이냐고 하셨었지. 부랴부랴 하루만에 교복을 조금 줄여서 딱 맞게 입고 다녔었다.”


한 학기가 지난 후에는 다시 옷을 사야 했지. 너도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도 좋다, 옷을 줄여서 입었다는 말이 얼떨떨하게 느껴졌다. 형이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니 아버지가 그런 것을 신경쓰고 옷을 줄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고 이상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항상 반듯반듯해서 표준이자 정석이라고 생각되었던 형의 모습이 아닌,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교복을 줄여서 입고 다녔을 형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게 그렇게 웃긴 일이었나?”

“아, 아니. 형은 별로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전화를 받을 때는 그렇게 무서운 얼굴인 형이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움직였다는 것이 상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형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행동하고 자라왔으니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거겠지.

나도 형처럼 되기 위해서라면 아버지의 명령을 듣고 따라야 했던 걸까? 아버지는 왜 나에게는 그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던 걸까.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석한 입학식과 졸업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전부 형과 함께한 행사들이었다.

형은 나의 부모의 역할까지도 하고 있다. 동시에 형으로서의 위치도 지키려고 힘쓰는 것이 보인다. 열 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자주 말을 걸고 문제집을 추천해 주거나 종종 필기구를 사다 주기도 한다. 보통의 부모들도 하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선물받은 적은 없다.


“형. 나랑 사진 찍어줄 수 있어?”

“사진?”

“응. 입학 기념으로 한 장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누군가가 찍어주는 입학기념 사진이 아닌, 정말 가족이고 형제끼리 찍은 것 같은 사진을 찍고 싶어서 셀프 카메라 모드로 변경했다. 아니나 다를까 형은 찍어줄 사람을 찾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형의 옷자락을 한 번 잡아당기자, 형이 내쪽을 보았다. 셀프 카메라 모드인 것을 보고는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최긴에 최신을 달릴 나이라도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 같은 태도였다. 셀프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는 표정 같았다. 아니면 여자 아이들만 쓴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렇게 하면… 들어오려나?”


내가 열심히 발돋음을 하며 핸드폰을 들자, 형이 대신 핸드폰을 들어주었다. 두 사람이 한 번에 나올 수 있도록 찍으면 되는데, 형은 굳이 배경을 넣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경에 학교를 넣으면 나 혹은 형이 실종되었고, 두 사람이 다 들어가면 학교 건물 대신 인조잔디가 배경이 되었다.

학교는 필요 없으니 형이랑 찍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이 상태로 더 주저하다간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찍어달라고 말할 것 같은 마음에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형 교복만 나오면… 괜찮지 않을까?”


굳이 학교를 넣어야 할 이유가 없다. 솔직하게 말하지면,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간 학교라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형은 이런 마음을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하고는 형이 몸을 살짝 숙였다. 친구들과 함께 찍을 때처럼 피스 사인은 하지 못했다. 나는 살짝 웃었으나, 형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형도 본인의 얼굴이 굳어있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든 얼굴을 펴 보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 번에 나오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3분이 넘도록 씨름을 했다. 아마도 형의 핸드폰이 울리지 않았더라면 10분은 넘게 그 자리에 있었지 않았을까. 형은 일이 있어서 나를 먼저 집에 바래다주고 회사에 갔지만, 형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에는 졸업식 때 좀 더 어른스럽고 남자다운 모습으로 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 핸드폰 앨범에 제일 첫 번째로 출력되는 형과 나의 모습이 조금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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