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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스가른

[카게스가] 기억재생기 02

Fong 2017. 4. 3. 21:13

센티넬버스 AU.





카게야마는 스가와라가 퇴원하기 직전까지 병실에서 지내겠다는 말에 작전에 막 다녀왔으니 집에서 쉬라며 말렸지만, 상부는 카게야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지기를 바랐는지 스가와라의 개인실에 간이침대를 하나 넣어 주어 카게야마가 잘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카라스노에게 있어서 스가와라는 잃을 수 없는 인재 중 하나였다. 카게야마도 충분히 우수한 가이드지만, 사람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는 센티넬의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스가와라 자체도 연구 대상일 정도였다.

특혜의 특혜를 받은 환경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례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스가와라의 이런 상태를 상부가 환영하는 분위기라는 것과 사와무라가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결국 그냥 넘기게 되었다.

대기상태도 아닌 휴식을 명령받은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와 함께하기 위해 병실에 있었지만, 몇 번이고 병실에서 쫓겨나거나 스가와라가 나가야 했다. 무슨 검사는 그렇게 많이 받는지, 스가와라는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다녀올게’라며 밝게 웃었지만 카게야마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23살의 스가와라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상황을 받아드린다는 것은 이미 그 전부터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병원 밥 맛없어.”


스가와라가 볼멘소리를 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내밀고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내려가는 눈썹이나 축 처지는 눈꼬리가 귀여웠다. 볼을 부풀렸다가 내뱉으면서 불만족을 표출하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스가와라는 싫다는 말을 하면서도 밥을 먹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23살의 스가와라는 그대로 숟가락을 놓아 버렸다.


“어쩔 수 없죠. 일단 스가와라씨는 환자시고....”


어쩜 너까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라고 표정으로 말하는 스가와라의 얼굴에 카게야마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실망한 표정인가? 아니, 저건 질렸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하는 히나타의 표정과 비슷했다. 필사적으로 말을 돌려보려 하거나 어떻게 해서든 다른 대답을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난 얼굴이었다. 언제나 상냥하게 웃는다고 생각했던 스가와라는 생각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생해서 임무에 다녀왔는데, 또 맛없는 밥 먹는 거 싫지 않아?”


눈을 반짝이며 묻는 스가와라에게 막 각인했던 자신이라면 솔직하게 ‘이것도 좋은데요.’ 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8살의 카게야마는 조금 더 능숙해지고 사람의 표정과 감정, 말을 듣고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적어도 스가와라에 관한 것은 최대한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 애썼다. 그동안의 스가와라는 외면하거나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행동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스가와라는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나만 다른 것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것과 출입이 자유로운 카게야마가 다른 음식을 사다줄 것을 원하는 것이다. 일부러 돌려서 말하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카게야마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스가와라는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웃는 카게야마를 보며 거짓말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그, 아니. 딱히 내가 밥을 먹기 싫은 게 아니라....”

“뭐 사올까요? 불닭? 저번에 드셨던-, 아, 해산물이 올려진 매운 피자도 좋아하셨잖, 아니 좋아 하셨어요.”


카게야마의 말에 스가와라가 활짝 웃으면서 불닭! 하고 말했다. 벌써 수저를 놓고 불닭을 사올 카게야마를 기다릴 태세였다. 초롱초롱 빛나는 얼굴을 보니 카게야마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가와라에게 밥그릇은 절반 정도는 비워달라는 말을 남기고 겉옷을 걸쳤다. 다녀와! 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아름답고 달콤한지, 카게야마는 있는 힘껏 달렸다.

불닭은 카게야마와도 자주 먹었던 음식이다. 입술이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았음에도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었고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듯한 흡족함을 보였었다. 피자는 저번 달 신상품이였다. 카게야마랑 먹은 적은 없지만, 저번에 의무실 앞을 지나갈 때 시켜서 먹는 것을 지나가며 우연히 보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연이라고 하기엔 억지가 있었다. 아프지도 않고 일도 없으면서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스가와라의 머리카락이라도, 목소리라도 듣기 위해 지나간 곳이다. 스가와라와 헤어지고 나서부터 스가와라의 주변이나 스가와라가 갈만한 장소에 가곤 했었다. 그렇게 배회하는 카게야마를 본 사와무라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으나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센터에서 두 블록을 지나면 있는 불닭집에서 주문을 하자 사장 부부가 오랜만이네요, 하고 카게야마에게 인사했다. 그 인사를 듣는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서비스로 조금 더 넣었다는 사장 부부의 말에 우렁차게 감사인사를 하고 빠르게 뛰어 센터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자마자 복도를 달리다가 코너에서 걸어나온 사와무라와 부딪칠 뻔 했다. 사와무라가 온 방향은 스가와라의 병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아, 아직 퇴근 안하셨어요?”

“낮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덕분에 일을 다 못했거든.”


한 손에 머그컵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커피 분말을 담은 통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퇴근까지는 아직도 한참인 것 같았다. 사와무라는 힐끗 카게야마의 손에 쥔 봉투를 보며 전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사와무라의 시선이 머무는 것을 확인한 카게야마가 안절부절못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스가와라는 환자였다. 환자에게 이런 자극적인 음식을 먹게 두어도 괜찮은 걸까. 간호사들에게 들키는 것 보다 사와무라에게 들켜 혼나는 것이 더 무서웠다. 스가와라가 혼날지도 모르니 미리 변명을 생각해야 한다.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힘이 없어 보여서 제가 먼저 사온다고 했어요?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깜짝 선물을 영어로 뭐라고 하더라.

빠르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카게야마의 표정을 본 사와무라가 살짝 웃으며 어깨를 토닥여 주며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지 않은가. 스가와라는 신체적인 상태 때문에 병실에 있는 것이 아니니 상관없을 것이다.


“네가 고생이 많다.”


사와무라는 그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탕비실쪽으로 향했다. 카게야마는 자신을 지나쳐 가는 사와무라를 바라보다가 스가와라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그간 카게야마의 속쓰린 일들을 다 알고 있는 사와무라의 쓴 웃음이 마음에 걸렸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자신을 기다릴 스가와라의 병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속 스가와라씨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 영원히 지내고 싶었다.


“와! 진짜 오랜만에 먹는 것 같다! 고마워!!”


활짝 핀 스가와라의 얼굴에 카게야마도 살짝 웃었다. 기계적으로 밥을 입안에 넣어 씹던 아까와는 확연이 다른 표정이다. 매콤하다 못해 기침이 나올 정도의 매운 냄새가 풍겨왔다. 금세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지만 스가와라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카게야마는 3년만에 입에 넣는 것부터 고통스러운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스가와라와 함께라면 지옥까지도 함께 갈 수 있는 카게야마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식사를 함께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스가와라는 몰래 버리고 온다면서 봉투에 남은 잔해들을 싸들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나갔다. 카게야마가 나가려 했으나 사다 주었는데 처리까지 맡길 수는 없다며 밖으로 나갔다.

카게야마는 환기를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창문을 열었다. 별로 여닫는 일이 없는 창문인지 몇 번 힘을 주어도 잘 열리지 않았다. 또 힘조절을 하지 못해서 기물파손을 하는 일은 최대한 막고 싶었던 카게야마가 한번에 힘을 주어 열자, 듣고싶지 않은 소리와 함께 문이 반쯤 열렸다. 동시에 따끔하는 손끝의 통증이 느껴졌다. 어딘가에 배인 모양이었다.

손끝에 한 줄로 선이 그어져서 피가 살짝 맺히려 했으나,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밴드를 붙여야 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큰 일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래도 피상풍이라도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손바닥을 보며 고민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현장에서 다치는 것을 생각하면 이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





환기를 마치고 조금 차가운 공기가 떠도는 방은 어둠과 정적으로 가득 차서, 초침소리만 들려왔다. 그래도 12시에는 소등하지 않으면 혼이 난다며 스가와라가 서둘러서 불을 껐다.

스가와라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적막이 가득하다는 것은 카게야마에게 약간의 불안과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을 체험하게 해 주었다. 그 어떤 애정어린 행위도, 입맞춤도, 눈빛도 없었던 한 번의 효과적인 가이딩 활동 외의 목적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던 차가웠던 섹스가 생각났다.

한 번은 섹스를 마치고 곧바로 씻은 후, 카게야마가 아직 씻고 있었을 때 말없이 나가버린 일이 생각났다. 그 때도 이렇게 초침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울렸다. 자신의 울음소리 정도는 쉽게 파묻힐 것 같은 밤이었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이 정적이 싫었다.

분명 지금의 스가와라는 차가웠던 스가와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하고 두려웠다. 영원히 이 상태인 쪽이 좋았다. 영영 기억을 되찾지 못해서 자신과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기억만을 갖고 있는 스가와라와 한참이나 남은여생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속 이렇게....


“카게야마, 자?”

“아뇨.”


스가와라도 이 정적이 두려웠는지 입을 열었다. 아니면 단순히 심심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오기 전 까지는 혼자서 이 병실에서 보냈을 테니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스가와라가 침대 위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개인실이라서 조금 더 좋은 침대를 받았을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있잖아, 나는 내가 30살 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네가 28이라는 것도 신기하고.”

“그런가요?”

“응.”


스가와라에게는 까마득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왜냐면 아직 자신은 20대 초반이었고 지금부터 꿈꾸기 시작할 나이였다. 카게야마와의 힘들고 고되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활동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카게야마는 자신이 얼마나 함께 활동하는 알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정식 요원이 아닌 카게야마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고 혼자 싸워내고 피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30살의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게 전부 전했을까를 생각하다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22살의 자신도 20살의 카게야마에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게야먀.”

“네.”


시간이 지나도 카게야마는 변함이 없다. 불러도 금세 대답해주고 어디든 함께 다니려고 해준다. 그러니 30살의 자신과 카게야마는 아마 변함없이 행복하게 붙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확신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알던 카게야마와는 조금 달랐다. 조심성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경계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중간중간에 만난 다이치나 키요코를 살짝 떠 보았지만 다들 달라진 것은 없다며 입을 맞춘 대답을 해 주었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아니면 원래 헤어진 사이인데 자신을 위해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아니면 28살의 카게야마가 어른스러워져서 자신이 적응하지 못한 것 일 수도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기 와서 같이 자면 안 돼? 여기가 더 넓은데.”

“네, 거기로 갈게요.”


선배가 이렇게 어리광이 많았나? 스가와라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스가와라가 잠들면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베게와 이불은 자리에 두고 스가와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맨몸으로 온 카게야마를 본 스가와라가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카게야마는 크니까, 일인용 침대에서 함께 자면 불편하겠지.

스가와라는 몸을 조금 뒤로 옮겨서 카게야마가 누울 수 있게 해 주었다. 바로 옆에 주운 카게야마를 쳐다본 스가와라가 웃었다. 역시 붙어있는 쪽이 더 편안했다. 각인된 상대는 역시 다르다. 카게야마가 오기 전 까지 다른 가이드와 함께 있어 보았지만, 카게야마 만큼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있잖아, 카게야마....”


아직도 날 좋아해? 어둠속에 익숙해진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카게야마의 눈을 보게 해주었다. 올곧이 자신만을 바라보는 저 눈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괜한 착각이었을 것이다. 잠자코 자신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키스... 해줄래?”


그 말에 카게야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어 스가와라의 얼굴을 감싸고 살짝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먹은 불닭 때문인 건지 뜨거운 입안이었다. 뜨겁고 얇은 연막에 카게야마의 혀가 훑고 지나갈 때마다 스가와라는 조금씩 움찔거렸다. 스가와라는 언제나 자신보다 키스를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깊게 파고 들어서 치열을 훑고 혀 아래의 미끈거리고 말랑한 부분을 건드리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떨어졌다.


“너...! 너! 어, 언제부터...!?”

“아... 놀라셨어요? 죄송해요.”


언제부터 이렇게 야하게 키스하게 되었지? 서툴게 혀를 집어넣는 것 외에는 하지 못했었는데. 스가와라도 전혀 생각 못한 곳을 접근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긴, 이제 막 어른의 딱지를 땐 자신과 달리 카게야마는 이제 28살이니까. 키스도 28년간 해왔을 거고, 섹스도 그랬을 텐데. 카게야마가 카게야마로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스가와라의 반응에 카게야마도 적지 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먼저 키스해달라고 해놓고 놀라서 내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아니, 그... 싫은 건 아니고... 조금, 정말 조금 놀라서....”


얼굴이 확 달아오를 정도로 놀랐다. 이 상태로 계속 혀와 입술을 부비다가는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어른의 기술의 보이는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기분이 좋았다.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단번에 나른하고 야릇한 기분으로 변하는 키스는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해줘.”


스가와라가 먼저 손을 뻗어 입을 맞춰왔다. 천천히, 라는 말을 기억하며 카게야마가 문을 감고 스가와라를 껴안았다. 이번에는 스가와라가 놀라지 않고 끝까지, 스가와라가 만족스러운 키스를 나누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다음주 월요일 저녁에 또 올라올것 같아요!

힘내면 한번 더 할 수도 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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