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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스가] 운명 방지 렌즈 본문

하이큐/스가른

[카게스가] 운명 방지 렌즈

Fong 2017. 2. 10. 23:23

카게스가 전력 60 : 시선

컬러버스 AU.




사람이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 감각세포의 발달이 더디기 때문에 세상은 흐릿하며 흑과 백으로 보인다. 점점 자라나면서 세포가 여러 자극에 노출되기 시작하고 나서야 빛과 어두움을 알며 사물의 생김새와 모양을 알며 세세하고 작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색은 조금 다르다.

운명의 사람을 만나야만 보인다는 색은 인간의 발달과 성장을 무시한다. 운명의 사람을 일찍 만나면 일찍 색이 보이고, 죽기 전에 만나면 죽기 전에서야 색을 보고 죽는다. 운명의 사람을 얼마나 일찍 만나게 되는지에 따라 색을 빨리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충전식이기에 일정 시간, 일정 기간 동안 서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미운 정도 정이고, 볼수록 아름답다고 하는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의 ‘운명의 상대’와 결혼을 한다. 때문에 색이 보인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저주이기도 했다.


- “저희는 운명 같은 건 믿지 않아요. 사랑이 어떻게 운명이 될 수 있죠? 저는 사람에게는 사랑할 사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두 분의 ‘운명의 상대’역시도 색을 보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데, 그 상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그 사람도 자기만의 사랑을 찾고 있겠죠.”


쯧쯧, TV를 보던 할머니가 혀끝을 찼다. 그리고는 요즘 애들은 어떻게 변한게 없니, 하며 손주가 깎아놓은 사과를 집어 먹었다. 신가한 표정으로 TV를 보던 스가와라 코우시는 헤에, 하는 감탄을 했다. 마치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같은 표정이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 눈을 보게 되더라도 색이 보이지 않게 하는 특수렌즈에 관한 뉴스였다. 최근 젊은층에게서 유행하고 있는 렌즈의 위혐성에 대한 보도였다. 일부는 찬성하고 일부는 반대하는 이야기였다. 사과의 동그란 부분을 전부 접시에 깎아두고 사과의 씨 주변에 붙어있는 작은 과육을 스가와라가 베어 먹었다.


“니네 애비도 저 시절엔 똑같은 소리를 했지. 그래서 이상한 안대도 쓰고다니고 그러더니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년도 안 되어서 사요코를 데려오지 뭐니.”

“그래요?”

“어휴, 어머니. 저도 사실 그랬었어요. 저도 안대를 쓰고 다녔었는데-....”


소파에 앉아 있던 스가와라의 어머니가 옛날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운명의 상대를 거부하는 시위 현장에서 만났다는 사랑 이야기였다. 스가와라는 사과에 얼마 남지 않은 과육을 전부 먹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가와라는 사과의 씨 주변에 붙은, 이 작은 과육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자신의 사랑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방으로 들어온 스가와라는 방문을 잠그고 책상에 앉아서 재빠르게 서랍을 열어 렌즈 케이스와 새척액을 꺼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눈에서 얇은 렌즈를 벗겨내어 통 안에 넣었다. 조금 찝찝하지만 내일 아침에 다시 이것을 끼우고 학교 가는길에 있는 공중화장실에서 새척액으로 깨끗하게 씻은 후에 다시 끼어야 했다.

운명 방지 렌즈, 인터넷, 안경점, 렌즈가게에서 쉽게 구하고 쉽게 살 수 있다. 가격은 조금 있는 편이었지만 스가와라에게 있어서 용돈을 조금만 모으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스가와라도 운명 방지 렌즈를 비웃었던 적이 있었다. 생물학적 요소에 굴복하지 못하는 겁쟁이들이나 선택하는 방법이라고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고 있었다.

두 달 전, 스가와라는 2학년 반장의 마지막 임무로 신입생안내를 맡아야 했다. 예쁘고 호감가는 얼굴이라는 이유로 교문에서 안내를 도맡아야 했다. 웃으면서 5분마다 인사를 해야 했고 차분하고 조금 높은 톤의 목소리로 학부모의 질문에 대답해주며 ‘개학하면 보자.’ 라는 마음에도 없는 인사도 흘렸다.

혹시라도 자신의 운명의 상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열심히 눈을 마주했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입학식이 시작되고 5분이 지나서야 교문은 한산해졌다. 슬슬 철수해야 할까, 라는 생각으로 맞은편에 선 1학년 반장에게 말을 걸기 위해 시선을 돌린 순간, 누군가가 열심히 교실로 뛰어오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빠르게 스가와라를 지나쳐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스가와라보다도 월등히 큰 키, 빼어난 이목구비, 숨을 몰아쉬며 뛰는 소리와 땀 냄새가 자극적이었다. 배구부였지만 친구들이나 후배들의 땀 냄새는 별로 달갑지 않고 숨을 몰아쉬는 소리 역시 별다른 자극이 아니었지만, 방금 자나간 신입생은 달랐다. 스가와라는 그가 점으로 변해 신입생의 대열로 섞여 들어갈 때 까지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후배를 한번 보고 다시 점이되어 사라진 입학생의 무리를 바라보다가 하하, 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입을 가려야만 했다.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그 때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한 마음은 학교를 개학을 떠올릴 때 마다 두근거려서, 결국 스가와라는 개학 하루 전에 운명 방지 렌즈를 구매했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그 렌즈를 구매한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한 결정적 이유는 신입부원으로 찾아온 것을 직접 맞이하게 되었을 때 였다.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라고 뻣뻣하게 굳은 표정과 몸으로 자신을 살짝 내려다보는 그 눈을 보면서, 스가와라는 자신의 구매를 후회하지 않았다. 인터넷 쇼핑이었다면 별 다섯 개에 프리미엄 상품평까지 적었을 것이다. 더불어 예비용 렌즈도 구매할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그 얼굴이 좋았다. 스가와라 스스로도 남자가 좋았던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정도로 카게야마의 얼굴이 좋았다. 두 번째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스가와라 선배 하고 병아리처럼 부르며 따라오는 소리가 좋았다. 스가와라보다 한참이나 컸지만, 자신의 곁에 있어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세 번째는 그가 카게야마 토비오라서 좋았다. 카게야마는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지만 절대 자만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뛰어난 면모에 대해 들어내는 것에는 거침없었다. 또 모든 사람에게서 배웠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에게 ‘배울 점이 많은 존경하는 선배’ 라는 말까지 들었다. 전혀 망설임이 없는 진실을 담은 표정이 좋았다. 아직 그 눈을 본 적은 없지만, 분명 그 눈도 진실함만이 가득 들어차 있는 눈일 것이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를 잘 따랐다. 스가와라의 주변은 원래 사람이 많고 따르는 사람이 많았었지만, 카게야마는 조금 특별하게 따랐다. 주변에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지적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가 운명의 상대가 있다거나, 두 사람이 서로를 소개하는 때가 아니면 운명의 상대에 대한 질문은 실례이기 때문이다.


“스가와라 선배는....”

“응?”


합숙을 대비한 준비로 제비뽑기로 각자가 자신의 할 일을 정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와 같은 것을 뽑았다. 먼지투성이에 제멋대로 쌓아 둔 제 2창고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스가와라는 입으로는 운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내심 카게야마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하늘이 자신을 도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카게야마 앞에서 렌즈를 벗겨내어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은 없었다.


“그....”


무언가 망설인다. 설마 운명의 상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눈을 이리 저리 굴리며 어떻게든 스가와라는 바라보지 않으려 하고 혀로 계속 아랫입술을 핥으며 두 손을 등 뒤로 돌린 상태로 불안정한 상태를 내보였다. 내 운명의 상대는 아작 안 나타났어, 라고 말하면 카게야마는 뭐라 말할까? 엊그제 TV에서 보았던 것 같은 사람이 될까?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


“스, 스가와라 선배는....”


스가와라는 신경쓰지 않기 위해 가장 위쪽에 있는 상자에 손을 뻗었다. 겨우 검지와 중지가 닿았다. 양 손가락에 힘을 주고 앞쪽으로 당겨보자 의외로 쉽게 빠졌다. 설마 빈 상장인가? 싶어 위쪽을 바라보았다가 바로 그 위에 놓인 종이들이 스가와라를 덮쳤다. 무언가의 포스터 같았다. 두 새게가 연달아 떨어지면서 그 위에 함께 앉아있던 먼지도 스가와라에게 떨어졌다.

콜록거리며 손부체질을 하던 스가와라의 눈에도 먼지가 들어갔는지 눈이 따가웠다. 괜찮으세요? 라며 카게야마가 스가와라와의 거리를 한 걸음 좁혀서 한숨이 쉬면 닿은 거리까지 다가왔다. 스가와라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는 상태였다. 계속해서 눈을 감고 싶었지만, 카게야마가 이 이상 호들갑을 떨면 다른 부원들에게도 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괜찮아, 라고 말하며 가볍게 눈을 비볐다.

먼저 왼쪽의 렌즈가 빠져 나왔다. 스가와라는 잠시만, 하며 뒤를 돌아서 주머니 속이 렌즈통에 왼쪽의 눈에서 빠져나온 렌즈를 넣고 오른쪽의 멀쩡한 렌즈도 빼냈다. 창고의 등마저 고장이 난 상태였기에 바깥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만 구분해서 정리를 해야만 했다. 우선은 창고안의 짐을 전부 빼고, 창고를 청소한 다음 물건을 정리해서 다시 넣는 방법으로 시작했다.

두 사람의 협업은 생각보다 좋았다. 카게야마가 창고 안에서 물건을 꺼내면, 스가와라는 창고 문에서 그 앞에 쭉 늘어놓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끝나면 빠르게 화장실로 가서 렌즈를 끼고 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혹시라도 카게야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무런 색도 보이지 않는 다면,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고통스러웠다.


“스가와라, 잘 하고 있어?”

“응. 그쪽은 어때?”

“나도 잘 되고 있어. 자, 음료.”


시미즈는 일부러 음료를 전해주러 왔는지 봉투 속의 캔 두 개를 꺼내 주었다. 카게야마! 조금만 쉬자. 스가와라가 창고안의 카게야마를 부르자 네!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조금이라고 빨리 끝내고 싶었는지 카게야마는 짐을 들고 창고 밖으로 나와서 스가와라가 늘어놓은 짐 옆에 먼지가 가득한 플라스틱 박스를 두었다.

카게야마는 평소처럼 스가와라가 건네주는 음료수를 받았다. 눈높이가 조금 위인 카게야마를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어야 한다. 스가와라는 음료수를 건네주고 나서 한참이나 카게야마를 바라본 후에야 전에 어머니가 말씀해 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네가 마시는 스포츠 드링크는 파란색과 흰색으로 되어 있고, 따는 부분은 은색을 띄고 있다는 말부터 스가와라의 부 활동을 위해 맞춘 체육복은 검은색이라는 이야기, 사람의 피부는 무조건 흰색, 회색, 검은색이 아니라던 말. 사람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은 각자 다른 색을 갖고 있다던 말들이 스쳐지나갔다.

툭, 하고 스가와라가 스포츠 드링크를 떨어뜨렸다. 카게야마도 그 자리에 굳어서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스가와라가 들고 있던 것은 카게야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다고 했던 종류였다. 가장 최악이라고 평했던 스포츠 드링크는 초록색이라던 이야기가 생각나고 나서야 저것이 초록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수없이 많은 색들이 생각났다.


“카게야먀.”


조각상처럼 서로를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스가와라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사지 말걸, 용기를 더 내서 그 눈을 바라볼걸 그랬다. 운명의 상대 결혼서류가 없더라도 부부로 인정한다는 법의 반대 시위에서 만난 부모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신은 역시 부모를 닮은 모양이었다.


“너는 운명을 믿어?”


나는 오늘부터 믿기로 했어. 그러니 부디, 너도 오늘부터 운명을 믿기를. 스가와라가 침을 삼켰다. 온 세상의 색을 담고 있는 그 침묵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았던 침묵 중 가장 무겁고 견디기 힘든 침묵이었다. 그 기다림의 끝에는 카게야마 특유의 살짝 낮은 미성이 스가와라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 네.”





처음부터 그런건 필요 없었던거죠~!!!

카게스가의 운명적 사랑 너무 당연한거 아닌가요???(


시선이라는 주제를 들은 순간 당연히 컬러버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컬러버스를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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