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걸어요

[카게스가] 다섯 발자국 본문

하이큐/스가른

[카게스가] 다섯 발자국

Fong 2017. 1. 29. 19:13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기념 글인데... 설날이다 끝나가네요..()

귀성길 조심히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카게스가 전력 재회 혹은 스가른 전력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로 써서 완성하고 싶었는데 너무 길어지게 되었네요...

썰 기반의 글입니다만 썰을 보시면 네타에요 (?)

썰은 이쪽-> http://dkanakfeowkscl.postype.com/post/519209/

추천 BGM은 스마트폰 게임 아이츄! 에 나오는 그룹  F∞F - 咲いては散る花のように 입니다.

명곡이니 꼭 구매해서 들어주세요..!!





01.

일본 배구의 새로운 희망이라 불리우는 카게야마 토비오는 사흘 전 해외 배구팀과의 계약 채결에 성공하면서 팀을 이적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다음 날 스포츠 신문에서는 카게야마의 이적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능한 선수를 축복하는 말도 많았다.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쌍벽을 이루는 팀으로 이적하는 것이기에 또다른 흥미진진한 경기를 볼 수도 있다는 예측들이 난무했다.

카게야마 토비오의 애인인 스가와라 코우시는 그 사실을 당일에 알게 되었다. 스가와라는 오사카 출장중이었다. 문자로 ‘알려드릴게 하나 있어요.’ 라고 통보하여 스가와라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회의가 끝난 후 스가와라에게 이적하게 되는 사실을 밝혔다. ‘축하해, 너도 가고 싶어했잖아?’ 라고 밝에 이야기 하고 전화가 끝날 때는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끊었다.

그래서 스가와라가 돌아온 후에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에서 열리는 조촐하지만 행복한 해외팀 이적 축하 파티는 분명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해야 했다. 적어도 카게야마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 저녁은 밀페유나베를 먹었다. 집에 육수를 끓인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기에 카게야마는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무슨 메뉴인지 알 수 있었다. 씻고, 자리에 앉아 스가와라가 만든 나베를 함께 먹었다. 식사의 막바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오늘도 맛있는 저녁이었고 설거지는 자신이 하겠다는 이야기를 언제쯤 할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카게야마. 해외로 이적하게 된 거 정말 축하해.”

“아... 네. 감사합니다.”


카게야마가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뒷통수를 긁었다. 스가와라는 그런 카게야마의 행동을 좋아했다. 누군가의 칭찬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가장 사랑스럽다.


“그런데 있잖아, 나는 너 못 기다려.”


식사를 마친 스가와라가 젓가락을 내려두고 마치 ‘오늘 아침 버스가 안와서 택시를 타고 갔어.’ 라고 말하듯 입을 열었다. 수줍게 웃던 카게야마의 얼굴이 어정쩡하게 굳었다. 네? 하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스가와라는 이미 결단을 한 얼굴이었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에게 함께 외국으로 가자고 한 적도 없었고 스가와라 역시 이야기 하지 않았다. 스가와라에게는 스가와라의 일이 있다. 스가와라가 일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자신이 배구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나서 그 일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해외로 가고 싶다는 말은 했었지만, 그 이후에 것은 논의하지 않았었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이별통보에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고 그것은 카게야마가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저녁은 순식간에 깨져서 그 잔해들만 남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스가와라는 정확히 일주일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해서 나가버렸다. 스가와라의 번호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번호가 되어 있었고 회사 근처에서 기다려 보았으나 카게야마를 먼저 발견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갖은 노력을 해 보았지만 결국은 스가와라를 만나지 못하고 비행기를 탔다. 신문에는 초췌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스가와라가 사 주었던 검은색의 야구모자를 쓰고 공항을 이용하는 사진이 실렸다.




02.

- “카게야마 선수, 오늘은 주전이 아니네요?”

- “아- 역시 그 마의 주간 인걸까요? 이젠 슬슬 극복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이죠.”

- “이 주기가 해외 이적을 기준으로 시작된 걸로 봐선....”


TV에서는 오늘은 벤치에 앉아있던 카게야마가 서브로 교체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TV로 들리는 소리만 들어도 카게야마를 외치는 소리가 찌렁찌렁하게 울렸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여전히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었고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비슷한 몸값을 받는 배구스타가 되어 있었다.


- “카게야마 선수 서브-! 아-! 혹시나가 역시가 되었네요.”

- “그래도 서브 정도는 성공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카게야마 선수가....”

“쟤 바보 아냐??”


벌써 열잔 째, 맥주를 들이키던 스가와라의 첫 마디는 이러했다. 맞은편에 앉은 스가와라는 십년간 변함없는 건 카게야마나 스가와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원정 경기를 보았을 때도 술로 시작했었다. 광고를 할 때 마다 스위치라도 누른 사람처럼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카게야마가 나오는 영상을 보다가 웃으면서 또 울었다.

그러다가 스가와라와 카게야마가 헤어진 주기에 있는 경기에서 카게야마의 컨디션은 급격하게 떨어져서 점수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이 헤어진지 1년이 되는 날에는 교체되고 말았다. 스가와라는 그 장면을 보며 펑펑 울었다. 지금처럼, ‘바보’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카게야마가 올림픽 국가대표가 되었을 때도 광고만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스포츠 브렌드의 광고를 보며 울면서도 그 브렌드의 옷을 사서 브로마이드도 받아 보관했다. 신문 기사는 빠짐없이 수집하고 과자 봉지에 프린트된 것도 수집했다. 주변에서는 생각보다 열성적인 팬이신 스가와라 과장님이겠지만, 두 사람의 사이를 알던 사와무라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아직도 사랑하는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바보야... 으흑, 바보...”


다시 사귀자고 해봐 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지금이라도 집 앞에서 기다려 보아라, 메일이라도, 편지라도 보내보라고 말했지만 스가와라는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카게야마를 보며 울고 좋아하기를 반복했다. 벌써 십년 째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직한 스가와라는 의외로 성과가 좋아서 이미 과장의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카게야마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처음 3년 정도는 카게야마만 보아도 대성통곡을 했고 다시 3년이 지났을 때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 없이 흐느꼈고 그 후의 3년부터는 먹먹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혼자 술을 마시며 울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와무라는 연신 ‘바보’ 라고 말하며 우는 친구를 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스가, 적당히 마셔.”

“끄흡, 으으... 바보, 바보아냐? 내가, 내가 그렇게 찼으면... 흡, 그러면, 그러면...!”


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TV중계의 케스터들이 이상한 말을 해댄 덕분이었다. 사와무라는 TV를 끄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스가와라에게 무슨 욕을 들을지 몰라서 우는 스가와라에게 휴지를 쥐어 주었다. 사와무라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너무 술 만 먹지 마. 나이도 있는데 너 속 상한다.”

“몰라아! 저 바보가... 바보 때무니야아....”


아직도 울음이 멈추지 않는 스가와라를 보며 역시 스가와라의 집에서 술을 마신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가와라는 사실 별다른 주사가 있지 않다. 술을 마시면 연신 카게야마를 부르며 보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마치 한 번 촬영한 것을 되감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카게야마 보고 싶다.’ 라는 말을 되풀이하는데, 카게야마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 것 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해서 어쩔줄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읊는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울면서 그 말을 되풀이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필름이 끊겨 잠들어버린다. 귀여우면서도 딱한 술버릇이었다. 


“카게야마가... 보고 싶어....”


배구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스가와라가 코타츠 안에서 잠들었다. 이 뒤처리는 오늘도 사와무라의 몫이었다. 술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03.

스가와라는 매년 겨울 휴가를 낸다. 1월을 맞이하고 열흘정도 지난 어정쩡한 날짜에 이틀이나 휴가를 낸다. 같은 날짜에 휴가를 낸 것이 벌써 십년 째인지라, 인사과에서도 스가와라의 휴가날짜를 미리 알고 타 직원의 휴가를 허가해주지 않을 정도였다. 스가와라는 그런 인사과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도 항상 다짐했다. ‘내년에는 이 날짜에 휴가 낼 일 없게 해야지.’

새해가 시작하고 새해 목표가 흐려지기 시작한 그 날짜는, 카게야마와 스가와라가 헤어졌던 해에 타임캡슐을 묻었던 날짜였다. 이름도 생소한 어느 시골 마을로 무작정 표를 끊어서 갔었다. 어릴 때는 얼마나 패기가 넘치던지, 그때만 해도 스가와라는 자신이 한 사람의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카게야마와 함께하는 생활을 십년 정도는 계속할 것이라 자만하고 있었다.

커다란 벚꽃나무로 추정되는 거목에서 다섯 걸음, 타임캡슐을 묻었다. 스가와라가 사온 편지지를 두 사람이 나눠서 서로에게 쓰는 편지를 쓴 후, 10년 후에 함께 와서 열어보자는 제법 로맨틱한 약속과 함께 묻었다.


‘이렇게 묻고 10년 후에 오는 거야. 막차 시간에 맞춰서 여기서 보자.’

‘그럼 집에 못 가는 거 아니에요?’


순진하기 짝이 없는 후배는 집에 가지 못하면 큰일이지 않냐는 얼굴로 스가와라를 보았던 것이 아직도 아른거렸다.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스가와라의 사심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순수하게 묻는 얼굴에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자신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던 카게야마의 풋풋한 얼굴만 기억났다.


‘그럴려고 그 시간에 보자고 한 거야.’


스가와라의 그 말을 잠시 생각하더니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버벅거리며 대답했었다. 그 곳에 찌렁찌렁 울리도록 어찌나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을 했던가. 결국 두 사람은 그 날 마지막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기차를 놓칠까봐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났다. 배구부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었다.

카게야마와 헤어진 이후에는 스가와라는 가장 이른 시간의 열차표를 끊어서 타임캡슐을 묻은 장소로 갔다. 혹시나 오면 붙잡으리라는 마음도 품으며 앙상한 가지밖에 남아있지 않은 웅장한 나무 아래에서 만약 카게야마가 보면 자신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마을을 향해 앉아서 한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학창시절 처음 했던 첫 키스도 벚꽃나무 아래였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카게야마와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웃거나 울었다. 어느 해에는 카게야마가 TV방송에 나오고 있어서 그 방송을 들으며 카게야마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괜히 헤어지자고 했나, 하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저 눈부신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을 텐데, 과묵한 입술로는 달콤하면서도 뜨거운 키스를 해줄 것이고 저 길고 탄탄한 손가락으로 자신을 만지고 단단하고 근육이 잡힌 몸을 서로 겹치며 행복에 젖어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눈물지었다. 또 그러다가 현실이 그럴리 없다는 생각을 하며 스가와라가 알고 있는 냉혹하고 악연의 악연이 가득한 현실을 떠올렸다.

매년 그곳에 찾아온 이유는 타임캡슐을 폐기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알았더라면 오지도 않았을 텐데. 첫 해에는 카게야마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서 하루 종일 나무 아래에서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해가 다지고 깜깜해지고 나서야 하루 묵을 곧을 찾는 스가와라를 마을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었다. 이듬해 새해의 첫날에는 꽃삽을 샀다. 타입캡슐을 파묻어버릴 요령으로 구매하고는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고 방 한 구석에 박아두고 그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고 열차에 오르고 나서야 생각났다.

그 다음해에는 포장지조차 벗기지 않은 꽃삽을 책상위에 두고 왔다. 식탁 위, 현관,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가방으로 바꿔온다거나 하는 등 꽃삽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7년째 되는 해에 녹이 쓸었다. 카게야마가 국가대표로 나가서 금메달을 딴 다음해였다. 그 작은 마을에도 카게야마가 있어서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었다.

새로운 꽃삽을 사고 또 놓고 오는 행동을 반복하던 스가와라는 결국 9년째 되는 해에는 알람설정을 해 놓았다. ‘꽃삽’ 이라는 알람 덕분에 10년째가 되는 올해에는 가반에 꽃삽을 챙겨 왔다. 이번에는 반드시 파버릴 것이다.

10년째가 되는 해의 스가와라는 달랐다. 전에는 항상 1박 묵을 생각으로 짐을 챙겨왔지만, 오늘은 당일로 다녀올 생각으로 가볍게 하고 왔다. 가방에는 꽃삽하나만 덜렁 넣고 왔다. 유치원생이 소풍을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후우- 여전히 춥네.”


아침 첫차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난방을 틀어주었지만 이제 막 틀기 시작한 난방이 따뜻할 리가 없다. 이 열차에 타는 순간부터 스가와라는 고요와 적막에 묻혀서 4시간이나 보내야했다. 한 손에는 커피를 쥐고 있었다. 다른 빈손으로 가방을 더듬어 꽃삽을 챙겼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이도 딱딱한 물체가 손에 잡혔다. 아직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출발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아직까지도 옛날처럼 울리는 종소리에 스가와라는 향수를 느꼈다. 이 열차를 타고 그 거목 아래까지의 거리는 10년전과 변함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스가와라는 혼자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 자신이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올해가 마지막이니까.”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빠져있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다. 개척해 나아가고 두려움을 극복하며, 발전하고 개선하기 때문에 고등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존재로 있는 것이다. 그것에 조금 더 성숙하기에 ‘어른’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문이 닫히기 직전, 모자를 꾹 눌러쓴 남자가 서둘러서 칸으로 뛰어 들어왔다.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칸이 스가와라가 앉은 칸이었기에 스가와라는 의도치 않게 키가 큰 의문의 남자와 같은 칸에 들어간 상태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자는 작은 케리어를 들며 숨을 몰아쉬었다. 한 번 잘못하면 한 시간 후에나 내릴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으로 스가와라가 그 남자를 보았다.

180은 족히 넘는 큰 키, 살짝 탄 피부, 검은색의 짧은 머리카락, 모자를 벗는 손가락은 길고 다부졌다. 춥지도 않은지 목도리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모자를 벗자, 남자의 짙은 남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아침햇살을 받아 빛나는 머리카락은 검은색이 아닌 남색이었고 그리고 그 남자의 목소리는


“스가와라... 씨?”


카게야마 토비오의 것이었다. 눈앞에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었다. 10년간 TV나 잡지, 신문으로만 보았던 존재가, 10년간 같은 날짜에 스가와라를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 남자와 말없이 시선을 주고 받았다. 서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벌렸다가 숨만 내쉬고 뱉었다.

스가와라가 잠시 멈췄던 숨을 내뱉자마자 카게야마가 크게 당황하며 놀랐다. 허둥지둥 주머니를 뒤지다가 짙은 회색의 코트에서 남색 체크무늬의 손수건을 꺼내고 잠시 망설이다가 스가와라에게 건넸다. 왜? 라고 묻기도 전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스가와라의 손등 위로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비현실적인 감각이었다. 손으로 더듬으니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전혀 슬프지 않은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몰랐다. 스가와라는 여전히 자신을 향해 굳건히 뻗은 카게야마의 손끝에 있는 손수건을 받았다. 천천히 왜 흐르는지 모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눈을 한번 깜박이니 맺혀있던 눈물이 흘렀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와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앉았다. 마주보고 앉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말없이 눈물을 닦은 스가와라는 이 손수건을 돌려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닦는 순간에 느껴지는 카게야마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기분이 낯설었다. 스가와라가 알던 카게야마의 냄새와 어른의 느낌이 나는 스킨로션의 냄새가 났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스가와라의 카게야마는 고등학생이여야 했다. 혹은 이제 갓 성인이 된 상태여야 하는데, 스가와라의 옆에 있는 사람은 성인 남성이었다. 스가와라보다도 훨씬 크고 좋은 체격의 사람이 있었다.




04.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응.”


일본에는 이제 안 오는 거야? 고등학교 선배였던 사와무라 다이치에게서 해외 팀으로 이적한지 반년 정도가 지난 후에 받은 메시지였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그 선배에게 온 연락으로 카게야마는 어딘가 안심하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그 선배가 자신에게 연락하는 이유는 스가와라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크게 아프진... 않으셨고요?”

“어.”


거짓말, 작년 이맘때는 독감으로 열이 펄펄 끓었다고 들었고 3년 전에는 교통사고로 여름내내 답답한 깁스를 하고 다녀야 했었고, 8년 전에는 탈수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와무라 다이치는 가끔 뿐이었지만, 고맙게도 스가와라의 근황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빠르게 승진을 했다는 이야기도 몇 번이나 들어오는 선자리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도 전부 들었다.

스가와라와의 몇 번의 짧고 상투적인 대화가 오고갔다. 최대한 모르는 척, 변화가 있었던 것을 되짚어 보며 질문을 골라 말해야 했다. 평지뿐인 창밖을, 아무도 앉아있지 않는 의자를 힐끔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살짝 빛이든 회색의 눈동자가 카게야마와 마주치면 금세 달랑거리는 손잡이를 보았다.

스가와라는 여전히 반짝거렸다. 카게야마의 기억속의 모습보다는 조금 더 야윈 모습이었고 눈가에 조금씩 보이는 연륜이라던가, 아침이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조금 낮아진 스가와라의 목소리도 너무 좋았다. 아메리카노에서 카페모카로 바뀐 스가와라의 커피 취향도 좋았고 바로 옆에서 스가와라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꿈만 같았다. 매번 오래된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서 어렴풋이 떠올리던 얼굴을 눈앞에서 보게 되어 감격스러웠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가와라가 보낸 이 긴 시간들을 같이 보냈더라면 더 행복하고 더 좋았을 텐데, 자신이 너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스가와라만 있으면 더 바랄게 없는데, 왜 그런 선택을 해버린 걸까 하고 후회했다. 서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금매달 축하해.”


카게야마의 조심스러운 질문을 제대로 듣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대답을 하던 스가와라가 반은 식어버린 것 같은 커피를 꿀꺽꿀꺽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가 시선을 돌리자 스가와라는 자신이 마신 커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누구에게 받은 축하 메시지도 이만큼 기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 네...! 가, 감사합니다.”


맞은편 창문에 비친 스가와라를 바라본 카게야마는 울 것 같은 표정의 스가와라를 보였다. 스가와라는 곧 눈을 감고 이미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셨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의 손가락에 그 어떤 반지도 끼어있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사와무라에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스가와라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지만 확신이 없었다.

10년만에 마주하는 옛 애인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궁금한 것은 스가와라도 마찬가지였다. 힐끗힐끗 쳐다보는 손가락에 반지는 없었다. 두 사람이 사귈때도 반지는 하지 않았었다. 그땐 어렸고 돈도 없었으니까. 반지가 아니라 다른 걸 볼 수 있다면 확신할 수 있을 텐데. 핸드폰 통화 기록이라던가, 까지 생각하다가 스가와라는 자신이 예전과 같이 카게야마를 대할 수 없는 위치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답답해서 창문을 열고 싶어졌다. 갈증이 나서 컵을 들어 올리자 컵은 이미 가벼운 상태였다. 스가와라는 가방위로 꽃삽을 만졌다.




05.

“어라? 올해는 같이 오셨네요?”


그 작은 시골마을의 기차역의 역무원은 8년째 바뀌지 않았다. 재작년에 결혼을 했다던 여성이 스가와라를 알아보며 활짝 웃었다. 올해를 제외한 매해마다 오셨냐며 반기는 인사에 쓴웃음을 짓던 스가와라는 달라진 인사를 듣고 당황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카게야마를 보았다가 빠르게 걸어 나갔다. 역무원은 이미 스가와라가 익숙한 모양이었다. 올해는 같이, 라고 하는 말을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뇌이고 나서야 스가와라가 매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라는 질문을 해 보았지만, 제대로된 생각은 나지 않았다. 항상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가와라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모양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스가와라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역무원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올해는 다른 사람이랑 같이 왔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럴 때 마다 스가와라는 곤란함을 감추지 못하고 의사소통에 서툰 사람처럼 행동했다. 과한 친절에 스가와라는 몸둘바를 모르며 빠른 걸음으로 그 작은 마을을 빠져나갔다.


“거기 총각! 이거 가져가.”


영문을 모른체 따라가건 카게야마를 불러새운 넉살 좋아 보이는 장년층의 여성이 지금 막 쪄낸 것 같은 빵을 카게야마에게 쥐어 주었다. 옆에 있던 다른 여성은 미리 준비해둔 모양인지 보온병과 일회용 컵을 건네주었다.


“그래도 올해는 누구랑 같이 와서 다행이네.”

“그러게, 매년 혼자만 오는데 잘못된 선택이라도 할까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데.”

“매년... 이요?”


만약 조금 더 거리낌 없는 사이였더라면 카게야마를 불러 자신이 그동안 들렸던 이야기에 대해 듣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스가와라는 눈짓을 주려고 카게야마를 보았으나 카게야마는 상인들에게 붙들린 상태였다. 잠시 멈춰서 카게야마와 상인들이 대화하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시야에 보이지 않으면 분명 따라올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카게야마가 자신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속도를 늦췄다.


“이 동네 저 청년 모르는 사람이 없어. 몇 시간동안 저 나무 있는 곳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걸? 이상한 생각 하고 오는 건 아니지?”


그 말에 카게야마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매년 이곳을 찾았다는 것이 마냥 기쁘기만 했는데 결코 기쁜 일이 아니었다. 혼자 와서 사람도 없는 곳에 앉아서 멍하게 시간을 보내기를 아홉 번이나 반복했다는 소리인데, 스가와라가 정말 아무생각 없이 앉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벌써 저만치 사라지는 스가와라를 보며 카게야마는 제대로 된 감사인사도 하지 못하고 스가와라를 뒤따라갔다. 운동을 하는 카게야마보다도 스가와라가 훨씬 빨리 올라갔다. 카게야마보다 딱 다섯 발자국 앞서갔다. 뻗으면 손이 닿을 것 같으면서도 결코 닿지 않는 거리였다.

스가와라의 숨이 한계까지 닿아 몰아쉬는 것이 느껴졌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다. 스가와라 스스로도 오기를 부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면 카게야마에게 붙잡힐 것 같았다. 이대로 카게야마에게 잡히면 스스로 목줄을 채우는 강아지가 될 것 같아서 나무에 닿을 때 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두 사람 다 그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숨을 골랐다. 카게야마는 금세 원래 상태로 돌아왔지만, 스가와라는 입에서 피맛이 났다. 운동 좀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나무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타임캡슐을 파묻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스가와라가 걸음을 멈추었다. 에코백에서 꽃삽을 꺼내고 언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퍽퍽,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얼어붙은 땅을 파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땅을 파기 시작하는 스가와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후들거리는 팔을 보던 카게야마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할게요.”

“됐어.”

“제가 하게 해주세요.”


180도 넘는 성인 남성이 쪼그리고 앉아서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은 조금 웃기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순간이 되었을 텐데, 스가와라는 로맨틱에서 어느새 슬픈 멜로영화가 되어 있었다.

형광분홍색의 손잡이를 카게야마쪽으로 돌려주었다. 카게야마는 그것을 잡아들고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나 카게야마 둘 다 미숙했지만, 카게야마는 조금 더 힘이 붙은 덕분에 쉽게 파냈다. 사각거리는 흙을 파내는 소리만 들리다가 금속 물체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자리를 뜨지 않고 보고 있던 스가와라는 그것이 지난 9년간 자신이 파내고 싶었던 타임캡슐이라는 것을 알았다.

철제로 된 타임캡슐안에는 플라스틱 통으로 한 번 더 감싸져 있다. 카게야마 몰라 골라 배송을 받을 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문했었던 기억이 났다. 돈이 그리 많지는 않던 시절이기에 편지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었다. 풋풋하고 순간이 영원일 거라 생각했던 철없고 멋모르던 그 날의 자신이 남긴 편지를 읽고 싶지 않았다.


“자기 편지는 자기가 가져가서....”

“싫어요.”


사귀는 동안 단 한번도 스가와라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말을 끊어버린 일이 없었다. 단호하게 입을 여는 카게야마의 목소리에 스가와라가 금세 입을 다물었다. 스가와라에게 뺏길세라 카게야마는 더 빠르게 흙을 파냈다. 타임캡슐을 꺼내 이중으로 된 케이스를 열었다. 조금 빛이 바랜 하늘색의 편지봉투가 두 개 들어 있었다.

카게야마는 망설임 없이 ‘스가와라 선배에게’ 라고 쓰인 봉투를 스가와라에게 내밀었다. 스가와라는 여전히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는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가와라 만큼 카게야마도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 편지는 스가와라 선배가 읽어주셔야 해요.”


흔들림 없는 눈으로 스가와라를 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손에 힘을 주고 건네는 그 편지를 받았다. 얇은 편지봉투로 느껴지는 미미한 카게야마의 온도가 느껴져서 그 상태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사실 두려웠다. 이제 와서 흔들릴까봐, 네가 없는 나의 삶은 지옥이었다는 말을 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붙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직접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한 나머지 실언을 할까봐, 더 행복하리라 생각했던 선택으로 또 다시 고 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가와라는 머뭇거렸다.

스가와라 선배에게 라고 쓰인 편지봉투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9년간 하려고 했던 타임캡슐도 열어 보았다. 카게야마의 요구에 편지도 교환했다. 이룰 목적은 전부 이루었다. 마지막 하나, 편지를 버리겠다는 다짐만 완벽하게 수행하면 그동안의 감정들을 모두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지봉투를 조심스럽게 뜯던 카게야마는 스가와라가 자신과 교환한 편지를 흙도 제대로 털지 않은 꽃삽과 함께 에코백이 넣고 황급히 내려가려는 스가와라를 붙잡았다. 손목을 붙잡은 탓에 스가와라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쳐냈다. 카게야마 역시도 급한 마음에 한 행동이라는 것과 스가와라가 놀란 얼굴을 한 것을 보고 급히 사과했다.


“죄송해요. 선배. 놀라셨죠?”

“난 이제 집에 갈 거야.”


할 말만 마치고 다시 마을로 내려가려는 스가와라를 돌릴 방법이 필요했다. 파놓은 땅과 타임캡슐이 흙바닥에 널부러진 것을 한 번 돌아보았다가 스가와라의 뒤를 따라갔다. 붉어진 손가락과 귀를 보며 추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마을 주민에게 받았던 보온병이 생각나 스가와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거... 아까 마을 분이 주신 건데, 많이 추우시죠?”


두 사람 다 추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추위를 더 타는 쪽은 카게야마였다. 배구를 할 때는 금세 따뜻해지니 괜찮다고 했지만, 등하굣길이나 데이트를 할 때는 꽁꽁 싸매고 왔었다. 본인이 더 추우면서 어떻게든 자신을 불러 새우려는 카게야마의 노력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멈춰서서 괜찮다며 밀어내는 것도 무서웠다. 다시는 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비겁하게도 카게야마가 먼저 자신을 붙들어줄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 저기... 식사 아직이시죠?”


스가와라가 커피로 아침을 시작한다는 것은 커피 외에 아무것도 속에 넣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이 풀리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가와라는 밤에 매운 것을 먹고 아침에는 커피 외의 것은 먹지 않았다. 스가와라가 변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침에 마셨던 커피 외에는 그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카게야마의 질문에 스가와라의 걸음이 멈췄다. 그대로 카게야마를 한 번 보고 한숨을 쉬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안도의 한숨이 들키지 않기를 바랐다.




06.

식사가 끝난 후에는 카게야마가 커피도 샀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사온 것을 보고 스가와라는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카게야마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평소와는 다르게 카게야마는 말을 많이 했다. 아마 카게야마도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카게야마가 하는 이야기들은 두 사람이 교제를 할 때는 전혀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었다. 어디의 노을이 아름다웠고, 언제 갔었던 음식점의 음식이 맛이 있었으며 자신이 보았던 어떤 건물이 아름다웠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와 함께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스가와라의 얼굴은 마치 모든 것을 안다는 것 같이 평온했다. 하지만 역으로 그런 표정이 오히려 달관한 것처럼 다가와서 카게야마는 애가 탔다. 이 문장들의 끝에는 ‘그래서 스가와라 선배의 생각이 났어요.’ 로 끝나야만 하는데 그 말을 내뱉지 못해 입에서 쓴 맛이 감돌았다.

아마 스가와라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카게야마는 스가와라가 가보고 싶다는 곳에 가고 먹어보고 싶다는 것을 먹고 보고 싶다는 것을 보며 살아왔다. 혹시라도 스가와라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며 기억에서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매달을 따고 나서 숙소에서 일어났더니, 해가 뜨고 있더라고요.”


이것이 카게야마가 생각나는 마지막 이야기였다. 목이 까끌거리는 기분이었다. 말을 이어야 하는데, 이 이상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 절망적이었다. 분명 스가와라에게 일출이 아름다웠고 하늘을 물들이던 그 색이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말해야 하는데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선배와... 함께 하고 싶었어요. 전부 선배랑 함께 하고 싶었어요.”


흐느낌과 동시에 나오는 말에 스가와라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대로 카게야마를 보고 있으면 나약해질 것 같았다. 눈물을 닦아주며 떨리는 두 손을 잡아주며 나도 그랬고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빈말이 아닌 진실을 스가와라도 전하고 싶었다.

스가와라는 이 상황이 기쁘면서도 슬펐다. 아마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았더라도 저 경험들은 카게야마 혼자만이 경험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스가와라는 그저 남겨지는 자신이 싫어서 이별을 고한 것뿐이었다.

이 상황을 벗어나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어둠이 반기는 방에 도착하고 불도 켜지 않은 차가운 거실 소파에 앉아서 울고 싶었다. 카게야마의 배구 영상을 틀어놓고 처음 이별을 고하고 그 방에 살게 되었을 때처럼 자신이 미련한 선택에 괴로워하며 울고 싶었다.


“이제 곧 막차....”

“선배가 그러셨잖아요. 그래서 이 시간으로 약속한 거라고.”


그땐 그랬지. 그때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해서 그랬던 선택이었다. 20분 후가 열차 출발 시간이었다. 스가와라는 가게에 걸린 시계를 한 번 보고 눈가가 붉어진 카게야마를 보았다. 그리고 힐끔힐끔 자신을 신경 쓰는 점원을 보고 다시 카게야마를 보았다.




07.

두 사람은 다시 타임캡슐을 묻었던 나무 아래로 향했다. 마음대로 던져놓은 흔적이 가득했다. 아직 해가지지 않았다. 스가와라가 나무 아래의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자 카게야마는 그 반대로 돌아서서 앉았다. 서로의 편지를 읽기로 했다.

편지를 뜯자 카게야마의 필체가 눈에 보였다. ‘안녕하세요? 스가와라 선배.’ 라고 시작되는 상투적인 표현에 스가와라가 풋, 하고 웃어버렸다. 구구절절 그날 여기까지 왔을 때의 일들이 적혀 있었다. 편지라고 했는데 마치 일기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10년 후라는 시간이 실감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그 때에도 스가와라 선배를 좋아할겁니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앞에 사라고 썼다가 지운 자국은 분명 사랑한다고 쓰려던 것이겠지. 지금도 카게야마가 자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느껴졌다. 자신은 편지에 뭐라고 섰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카게야마가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가와라를 기쁘게 했다.

그 때는 이렇게 복잡하지 않고 서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일부러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때가 떠올라 눈물이 났다. 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데 눈물이 나는 건지 스가와라도 알 수가 없었다.


‘ps. 선배가 편지를 열어볼 10년 후에도 저를 좋아한다면 결혼해 주세요.’


스가와라는 10년 오늘 카게야마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타임캡슐을 묻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때의 카게야마가 떠올랐다. 기쁜 얼굴로 다가와서는 자신의 옷에 흙을 닦아내고 입술을 부딪쳐 왔었다. 힘있게 스가와라를 껴안고 질척한 키스를 하는 바람에 스가와라는 여기서 섹스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선배, 다 읽으셨어요?”

“... 응.”


카게야마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벅저벅 다가오던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의 붉어진 눈을 보고 옆으로 다가와서는 아침에도 빌려 주었던 그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스가와라의 얼굴을 닦았다. 카게야마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선배는 편지에 어떤 내용 썼는지 기억나요?”

“아니.”


진심이었다. 정말 무엇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먼저 쓰자고 한 것은 자신이었을 텐데, 그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의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붉어진 눈가를 다 닦아준 후에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마을은 금세 보랏빛에서 남색으로 물들었다. 싸구려 청바지를 물에 담그면 나오는 색으로 변했다.


“나는... 같이 있지 않으면 외로워서 싫어. 주인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처량한 애완동물 같잖아.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거였어.”


읽는 내내 울어서 그런 것인지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곳에서 자면 입 돌아간다고 그랬는데, 감기에 걸리면 어쩌지? 저체온증으로 죽는 거 아닐까? 온갖 생각이 오고 갔다.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운동선수는 평생 못하잖아? 네가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가장 잘 알고 있는데, 내 곁에 남아달라고 말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잖아.”

“... 네.”


사실은 무서웠다. 손을 떠나버린 애인이 무엇을 할지 몰라서. 혼자 기다리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러니 어차피 헤어질 거라면 버려지는 쪽 보다는 버리는 쪽을 스스로 선택했을 뿐이다. 애초에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저버린, 카게야마를 믿지 않는 자신의 선택이 초래한 결과였다.


“아니, 사실 변명일지도 몰라. 그때는 내가 널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고, 견디지 못할 것 같았어. 나는....”


네가 날 버릴까봐 무서웠어, 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카게야마가 다시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 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카게야마의 입술이 닿았다. 차가운 공기 가운데서 붙어오는 입술이 뜨거웠다. 이미 바닥을 짚고 있는 손위를 스가와라가 겹쳐 잡았다. 스가와라는 식어가고 있었고 카게야마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선배, 저희 한 번 더 타임캡슐 묻지 않을래요?”


카게야마는 다시 만날 약속을 잡고 싶었다. 지금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아직도 서로가 함께 사랑을 할 수 없다면, 카게야마는 더 기다릴 수 있었다. 10년도 기다렸는데 그 이상도 기다릴 수 있다. 스가와라가 잊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스가와라를 만나게 된다면 한 번 더 약속할 생각이었다. 이곳을 기억하고 온다는 것은 마음이 있다는 의미이니 딱 한 번만 더 유예를 달라고 스가와라를 붙잡고 애원할 생각이었다. 카게야마가 가방에서 편지지와 팬을 꺼냈다. 스가와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08.

“스가와라를 만나고 싶다고?”

“... 네.”


항상 주변에 알리지 않고 입국하는 카게야마는 귀국을 하면 꼭 사와무라를 찾았다. 그리고 사와무라의 근황을 묻는 척 하다가 결국 스가와라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차라리 스가와라의 바뀐 번호를 알려달라거나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면 좋을 텐데 카게야마는 입을 열지 않았다.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만나고 싶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사와무라는 안도했다. 이제야 겨우 정상적인 헤어졌지만 서로를 좋아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핸드폰 번호 알려줄까? 아니면 자택? 회사도 알고 있는데.”

“아, 아뇨 그거까진...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만나겠다는 걸까. 카게야마는 주머니에서 장지갑을 꺼냈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지만,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가 두 사람이 교제중일 때 생일선물로 사주었던 지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와무라에게 이것저것 디자인을 보여주며 나흘이나 물어보고 구매했었다.

카게야마는 그 지갑에서 하얀 봉투를 사와무라에게 건넸다. 밝은 조명 아래에 출발시간이 적힌 기차표가 보였다. 밀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살짝 보이는 틈 사이로 확인해 보니 기차표가 확실했다. 한 장이 아닌 모양이었다.


“약속을 했거든요. 10년 후에 타임캡슐을 같이 꺼내기로 했었어요.”


아 그거, 스가와라의 연래행사를 말하는 거군. 카게야마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 카게야마도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받아들고 눈 앞에서 표를 확인했음에도 카게야마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첫차부터 막차의 표를 전부 구매했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많이 샀어?”

“언제 오실지 몰라서... 일단 저는 첫차로 갈 생각입니다.”


원래 카게야마가 이렇게 세심했나? 아니지, 이건 어떻게든 스가와라를 부르기 위한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한 행동일 것이다. 아무래도 번호를 알려주거나 하면 사와무라가 관여했다는 것이 들어날 것이다.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표는 필요가 없을 텐데,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연애사에 관여하는 부분은 딱 이 정도가 적당했다. 스가와라의 근황을 알려주는 이유도 스가와라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한 일이었다.


“만나서 어떻게 하려고?”

“처, 청혼하려고요.”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카게야마는 진심인 모양인지 반지도 샀어요, 라고 덧붙였다. 10년의 공백 끝에 결혼이라. 비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와무라는 스가와라가 반드시 받아 주리라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카게야마는 어떻게 확신을 하고 있는 걸까?


“안되면...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려고요.”

“귀국하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망설임과 고민이 가득한 카게야마의 얼굴을 본 사와무라는 ‘그렇게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돼.’ 라며 웃었다. 방법이 있다면 괜찮지 않은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 표는 어떻게 전해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카게야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전해주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스가와라는 이미 표를 끊었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카게야마가 간다는 것을 알려주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카게야마가 생각한 또 다른 방법은 다시 타임캡슐을 묻는 것이었다.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운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5년 정도면 국내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10년의 절반만 인내하면 다시 스가와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편지지를 챙겨갔다.

카게야마는 10년 전에 적었던 내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내용을 적었다. 짧고 굵은 문장을 적는데 본인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어찌나 긴장이 되는지 손에서 땀이 났다. 그 짧은 문장을 적은 후에 카게야마는 스가와라가 보지 않도록 코트의 주머니에서 커플링을 꺼내 봉투 안에 넣고 동봉된 스티커로 밀봉했다.

분명 5년 후에는 이 커플링을 나눠 가질 수 있을 것이다.




09.

두 사람은 그 나무 아래에서 밤을 지셌다. 추워서 손발이 꽁꽁 얼어버렸지만, 말없이 하늘을 보며 어깨를 맞대고 한 담요를 함께 두르며 보낸 시간은 따뜻했다. 스가와라가 기차 안에서 카게야마의 어깨에 기대어 숙면을 취하기도 했다.

역에 도착할때가 되어서야 부스스하게 일어난 스가와라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보니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카게야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역에 도착하기 전, 카게야마는 혹시 모를 매스컴을 피하기 위해 모자를 눌러 썼다. 이 새벽에 누가 보겠냐만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카게야마.”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음성이 나왔다. 문 앞에 스가와라의 옆에 나란히 선 카게야마가 스가와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꿈치를 들어 두 손으로 카게야마를 껴안았다. 카게야마는 자신도 손을 뻗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도 손을 뻗어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스가와라가 손을 풀어냈다.


“5년 뒤에 보자.”


문이 열리자마자 스가와라는 그 말을 남기고 먼저 기차에서 내렸다. 그 뒷모습을 그 자리에 서서 한참동안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역무원이 부르고 나서야 기차에서 내렸다.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0.

스가와라는 결국 감기 몸살로 이틀을 더 쉬어야 했다. 사와무라가 아파서 회사를 쉬었다는 소식에 찾아가 보니 열이 펄펄 끓어서 얼굴이 붉어져 있음에도 웃고 있는 스가와라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틀이나 앓고 나서 출근할 때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가볍고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 생기있어진 스가와라를 보며 직원들 모두가 분명 이번 휴가 때 무슨 일이 있었다고 확신했지만, 직접 묻지는 못했다.


“스가와라 과장님. 이번 휴가 때 좋은 일 있으셨어요?”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스가와라와 가장 오랜 시간을 일한 직원이 스가와라에게 물었다. 6시 30분에 시작한다는 생방송 토크쇼에 일본 국가대표 카게야마 토비오가 출현한다는 광고를 보며 웃는 스가와라에게 물었다.

전에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참담한 표정으로 보던 스가와라는 남몰래 짝사랑 하는 사람처럼 웃으며 눈을 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같은 부서의 사람들이 전부 스가와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으음, 하고 고민했다.


“음... 그러게요?”


하하하, 무안할 때 마다 짓은 웃음을 흘렸다. 스가와라가 얼버무리는 바람에 그들의 궁금증은 증폭되었다가 퇴근 10분 전의 시계를 보고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스가와라는 할 일이 남아 있었기에 인터넷으로 생방송을 볼지, 아니면 유료로 프로그램을 구매할지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유료로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쪽을 택했다.

스가와라의 각오와는 달리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6시 20분이 되어서 끝나버렸다. 아무리 빨리 가도 30분은 족히 걸리는데, 하고 고민하다가 조금이라도 녹화할 수 있는 쪽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짐을 챙겨 나갔다.

날씨는 여전히 추워서 스가와라가 코를 훌쩍거렸다. 아직 감기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집에가서 따뜻한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 건물을 나오자, 회사 맞은편의 건물의 커다란 화면이 30분을 알리는 시계를 보여주더니 카게야마가 나온다고 하던 생방송을 보여 주었다.

유명한 여자 아나운서와 함께 정장을 입은 카게야마가 보였다.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스가와라와 만났을 때는 프레피 룩을 입었었다.


“해외에서 많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카게야마 선수인데요. 지금까지 인터뷰나 취제를 전부 거부하시다가 10년 만에 이렇게 미디어에 나오게 된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요?”


카게야마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당황한 모양인지 잠시 얼굴을 굳히더니 잠시간 침묵했다. 생방송이라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었다. 당황한 아나운서가 ‘카게야마 선수?’ 하고 되묻자 카게야마가 대답했다.


“이제는 일본에 돌아올 이유가 생겨서요. 5년 후에는 돌아올 겁니다.”

“무슨 계획이라도....”

“그러니까 기다려 주세요.”


당연히 스가와라가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지 카메라를 향해 카게야마가 말했다. 마치 자신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턱을 타고 뚝뚝 흘렀다. 이제 다시는 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스가와라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추워서인지 기뻐서 인지 아니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인지 붉어진 얼굴을 가리려고 애썼다.

사람이 너무 기쁘면 울게 된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A5로 26p...  가 되는 대 장정의 글이었습니다.

얇은 개인지 분량이네요.

부디 즐거우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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