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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아쿠] 관계의 정의 본문

문호 스트레이독스

[츄아쿠] 관계의 정의

Fong 2017. 4. 10. 02:33

아쿠타가와 오른쪽 전력 60 


사랑이 아니면 뭔데요?

그럼 우리가 한 건 뭔데요?


김태균 / 가시




검은 도마뱀은 대부분 무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약육강식이 지능과 이성을 가진 동물들에게도 아주 잘 통한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조직이다. 그렇기에 이능력자라 하더라도 대부분 총과 같은 무기에는 박식한 편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가진 무기를 손질하는 법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능력으로 총도 막아내는 아쿠타가와에게도 총은 있었다. 막 다자이에게 주워져서 마피아라는 이름을 달았을 무렵에 다자이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직접 선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의 마피아들에게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회사로 말하자면 회사에서 사용하는 회사 소유의 PC와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생산되고 있으며 조직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델이었다. 그저 하루에도 두 세 번씩 총을 쓰는 검은 도마뱀이 쓰기에는 구식의 권총이기도 했다. 자동 권총이긴 하나 최초 사용시에는 장전을 해야 했으며 반동도 크고 소리도 컸다. 물론 나쁘진 않지만, 요즘같이 좋은 무기들이 나오는 시대에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는 총이기도 했다.


“선배, 역시 다른 총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요?”


아쿠타가와가 손질을 마치고 책상위에 올려놓은 총을 바라보고 있자, 히구치가 물어왔다. 히로츠도 동감하는 바였다. 자신도 전투형의 이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명목상의 물건일 뿐이다.”


다자이가 아쿠타가와에게 줄 때에도 같은 말을 했었다. 너에게는 필요 없겠지만, 명목상 너도 마피아니까. 라며 툭 하고 던져주었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으나 손질하는 법만 알고 있었다. 아쿠타가와가 그 총을 쥐었다. 예전에는 컸지만 지금은 손에 딱 맞는 크기였다.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회의라는 명목상의 모임이었다. 사실 회의는 그 전에 끝났다. 어디와 싸웠고 몇 명을 죽였고, 몇 명이 다쳤고, 무엇을 얻었는가에 관한 이야기와 전략,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일들에 관한 보고같은 것들이었다.


“회의 끝났지?”


그 회의실에 들어온건 나카하라였다. 부하 두세명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사실 회의중에 들어오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인물이다. 나카하라를 따르던 부하 한명이 히로츠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전했고 그 말을 들은 히로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나카하라가 직접 오지 않아도 되었다. 부하들을 시켜 전언만 전하고 가면 될 일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자신이 마음에 둔 사람이 보고 싶었다. 오늘 새벽 갑작스럽게 터진 일에 호텔방에 혼자 남기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오기 전에 미안하다는 키스와 함께 룸서비스의 주문까지 결제까지 끝냈지만, 그래도 석연치 않았다. 나카하라에게 있어서 제아무리 비싸고 고급스러운 호텔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나오게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 보러 올 이유라도 생겼으니 방문한 것 뿐이었다.

아쿠타가와는 제법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과와 다음 약속을 잡으려고 왔다가 그 손에 권총이 쥐어진 것을 보았다. 다자이가 마피아를 나가기 전 까지 사용하던 것과 같았다. 다자이의 부하들은 대부분 저 모델을 사용하고 있었고, 아쿠타가와도 다자이가 데려왔으니 당연히 사용할 것이다. 만약 아직도 다자이가 마피아에 있고 저 총을 사용한다는 가정 하에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자이도 없고 아쿠타가와가 총을 사용알 일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정성스럽게 손질을 막 끝낸 것들이 보여지니 심기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덧그려 놓아도 원본을 바꿀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쿠타가와.”

“네, 나카하라 씨.”


아직도 총을 써? 이건 아니다. 나카하라도 총 정도는 가지고 있다. 다자이는 긴급한 일이 아니면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가지고는 있었다. 왜 다자이랑 같은 총을 써? 이것도 이상하다. 애초에 이 조직에 같은 모델을 쓰는 사람은 아직도 있었으며 스스로 다자이도 없는데 다자이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왜 다자이 총을 가지고 있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저 총이 다자이의 총이라는 확신이 없어 내뱉지 못했다. 한심하게도 질투를 하고 있었다. 화가 났다. 아직도 아쿠타가와에게 지우지 못한 다자이의 흔적들이 가득하다는 것이 나카하라의 이성과 사고를 멈추게 한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불러 봤어.”


이렇게도 아쿠타가와를 원하는 데도 아직 고백조차 하지 못한 얼빠진 인간이라는 것이 또 화가 난다. 식사도, 데이트도, 손을 잡는 것도, 키스도, 섹스도 했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번, 좋아한다는 말조차 해본 적이 없다. 고맙다는 말을 듣지만 그것이 다자이보다 더 상위의 카테고리에 들어간 단어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사랑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이 아쿠타가와에게 최상위의 것이 아닐까봐 무서워하는 겁쟁이었다. 성경에도 있다. 마음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그 입으로 내뱉음으로써 진정한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 않던가. 사랑한다는 말을 입으로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최고가 아닌 것이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오늘 다자이의 총을 보고 다시 한 번 확신했다. 나카하라 츄야는 절대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위치가 될 수 없다. 다자이 때문에, 그깟 다자이 때문에.

나카하라는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고 아쿠타가와를 향해 웃고는 보스의 방으로 향했다. 히로츠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히로츠의 예상대로 나카하라는 평소보다 더 상냥하고 다정했다. 아마 나카하라의 이런 모습이 오자키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회의실을 빠져 나온 나카하라의 뒤따라오던 히로츠는 복도로 나오자마자 들린 나카하라의 혼잣말을 들었다.


“썩을 다자이 새끼.”


분노를 곱씹으며 말을 짓이기는 나카하라의 목소리를 들었다. 확실히 다자이가 쓰던 총이었다. 서로가 앙숙을 넘어 혐오하는 사이라고 알았는데, 좋아하는 감정과 싫어하는 감정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카하라가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을 히로츠가 정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오후에 총을 고르는 아쿠타가와와 히구치를 보지 못했더라면 히로츠는 오늘의 일도 잊었을 것이다. 이런 사랑싸움을 하나하나 기억할 정도로 히로츠는 젊지 않았다.


“나카하라 씨와 같은 걸 쓰고 싶은데.”

“엣!? 나, 나카하라 간부님 말씀이신가요....”


히구치는 아쿠타가와의 말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이능력자들은 총을 소지하더라도 그 걸을 빼서 사용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본 적도 없었기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좀 더 이곳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 가장 잘 알텐데, 라는 생각의 끝에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던 히로츠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히로츠는 오히려 자신이 더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아쿠타가와가 저 말을 하는 것 부터가 이해되지 않았다. 굳이 히구치에게 물어볼 일이 아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카하라 간부의 일이라면 당신께서 더 잘 알고 계실 텐데요.”

“... 그건....”


히로츠의 말에 그제야 아쿠타가와와 나카하라의 관계를 알게 된 히구치가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아쿠타가와를 보았다. 이번에는 아쿠타가와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이런 류의 시선을 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곤란한 표정으로 히로츠를 보고 옆에 앉은 히구치를 보다가 다시 히로츠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확실히 타인이 오해할만한 일들을 하긴 했다. 그러나 아쿠타가와는 그것이 단순한 오해이며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분명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위이긴 했으나, 감정이 없어도 가능한 행위들이기도 했다. 나카하라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단 한 번도 두 사람의 관계의 정의를 내린 적이 없었기에 섣불리 자신이 말하기 두려웠다.


“난 아직 나카하라씨와 아무것도 아닌 사이다.”


만약 나카하라는 자신만큼의 감정이 아니라면? 자신이 멋대로 하나로 묶어버렸을 때 나카하라가 불쾌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카하라는 친절하고 상냥하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려있으며 잘 돌아보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저 챙겨준 것일지도 모른다.

몇몇 다른 간부들이 짧게는 이틀 만에 갈아 치우는 여자들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나카하라를 생각하면 두근거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만날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지만 나카하라도 자신 만큼이나 강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이 작은 일에서 아쿠타가와는 자신과 나카하라가 불완전한 관계라는 것이 무서워졌다.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절벽 아래로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감정은 두 사람이 공유하지 못하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두 사람 다 어렸다. 아직 새파랗다 못해 노란 색의 떡잎이 남아 있는 식물과도 같은 나이였다. 사랑에 대해 배우기에 포트 마피아는 썩 좋은 장소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애정을 나누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장소이기도 했다.

히로츠는 근처의 메모지에 무언가를 써서 히구치에게 내밀었다. 이걸세, 히구치가 두 손으로 그 메모지를 받았다. 아쿠타가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더 깊게 관여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된 히로츠는 방을 빠져나왔다. 출발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곳에 계속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많은 것을 모르는 어린 상관에게 이것저것 말해버릴 것만 같았다.

아쿠타가와는 그날 밤 밤 산책을 제안 받았다. 간부 회의가 있다고 들어서 오늘은 더 이상 만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저녁을 때우려던 참이었다. 날도 따뜻하고 벚꽃이 피었으니 같이 산책을 하자는 간결한 내용에 가슴이 뛰면서도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 저녁 때우지 말고 제대로 챙겨 먹어.


생각을 더 깊게 하기도 전에 도착한 문자에 아쿠타가와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문장에 미소가 피어오르고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사랑이다.

밤의 벚꽃은 아름다웠다. 적당히 따뜻한 바람과 인공조명이 있었기에 보이는 아름다운 벚꽃과 깊은 청색 물감을 풀어놓은 검은 하늘도 아름다웠다. 조금 지쳐 보였지만 아쿠타가와를 향해 웃어주며 장갑을 벗고 손을 뻗어 조금 차갑고 앙상한 뼈마디만 만져지는 손을 잡아주는 나카하라가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점점 시간이 늦어질수록 사람들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피아인 그들에게는 지금부터가 활동 할 시간이었다. 계속 말없이 손을 통해서만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걸었다.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그 뒤로 따라붙는 것들이 서로를 괴롭게 했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나카하라였다. 나카하라는 침묵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벚꽃이 유난히 붉은색을 많이 띄면 그 아래에 시체가 묻어 있다고 하던데. 알고 있어?”

“네. 확실히 5년 정도 전에 이 근처에 처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재정비를 한다고 들어서-.”

“뭐, 뭐!? 진짜야?!”


화들짝 놀라서 나카하라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올려보고 혹시나 누군가 들었을까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서로가 짝을 이루거나 가족 단위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뿐이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아쿠타가와를 보았다. 당황한 나카하라와 눈이 마주친 아쿠타가와가 웃었다. 그 와중에도 손끝에서 퍼지는 나카하라의 온도가 아쿠타가와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거짓말입니다.”

“너까지 정말! 하아, 진짜 이런 점까지 다자이를....”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 나카하라가 얼굴을 찡그리며 혀끝을 찼다. 그렇지 않아도 그 다자이 때문에 화가 났던 일이 또 떠올랐다. 나카하라는 이제 이 이상 자리에 없는 사람 때문에 화가 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완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지만, 확인하고 알아야만 하는 일이었다. 지금이라면 아마 그만 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만두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달콤할수록 더 괴롭게 자신을 옭아올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렇게 아름답게 만개한 벚나무 아래에서 인생 중에서 가장 상처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맞닥뜨려야 하다니.


“아쿠타가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맞잡았던 손을 놓는 나카하라의 부름에 아쿠타가와도 멈춰서서 나카하라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새하얀 가로등의 조명과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떨어지는 은색의 벚꽃잎이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카하라의 머리카락과 긴 옷자락도 흔들렸다. 나카하라가 모자를 고쳐쓰고 아쿠타가와를 바라보았다.

담배 생각이 간절한지 왼손의 손가락들을 몇 번 꿈틀거리며 움직이다가 쯧, 하고 혀끝을 찼다. 그리고 깊은 한숨,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 긴장하면서도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는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이 관계를 그만둘 거야. 다자이처럼 널 몰아 새워서 얽매이게 하고 싶지는 않아.”


아쿠타가와가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새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있다. 무슨 표정일까.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울 것 같은 표정에서 자신을 원한다는 뜻인지, 간파당해서 당황하는 얼굴인지 알 수가 없다.

왜 히로츠가 자신에게 나카하라의 이야기를 했는지를 떠올렸다. 감정은 두 사람이 공유하지 못하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두고 말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카하라는 원래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맡겨 온 결과가 이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에 관해서, 특히 나카하라에게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말했지만, 나카하라가 이 뒤에 담을 말은 알 것 같았다. 또 듣고 싶지 않았다. 제 아무리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라 해도 살을 마주하지는 않고 매일 연락하지도 않는다. 손을 잡는 일도, 입술을 맞대는 일도 없다. 


“저는,”


아쿠타가와가 입술을 짓이겼다. 씹어 삼키려는 말이 울컥하고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아내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을 감아버리고 숨을 토해냈다. 흔들리는 숨소리에서 무언가를 참아내는 소리가 났다. 아쿠타가와는 벚꽃이 만개한 그늘 아래에서 어깨를 떨었다.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입을 맞추고 몸을 겹치고 부끄러운 부분을 들어내며 깊게 파고들어서 하나가 되는 행위는 아마 사랑이 없어도 가능할 것이다. 만약 나카하라와 자신의 관계가 그런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관계라면 지금까지 연을 두고 있었을리도 없었을 뿐더러, 다른 사람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카하라가 아니면 안 되었다. 매번 만나서 전혀 다른 두 몸을 섞는 것이 아니라도 기쁘고, 감히 담아도 될 단어인지는 모르지만 행복하다고 느꼈다. 사랑받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분에 넘치지만, 절대 거절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가득했다. 오히려 더 잡아두고 싶어서, 차고 넘치게 흘러도 모자르다고 생각하는 이 감정들이


“만약 그게 사랑이 아니라면,”


그게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감정인 걸까. 경애? 존경? 단순한 친목? 친애? 혼자 흠모하던 다자이와 나카하라는 다르다. 이제와서 생각하건데 이 감정들은 감히 흠모한다는 단어로 비유할 수 없었다. 아마 나카하라에게 더 어울리는 단어일 것이다. 연모하며 마음으로 앓으면서도 서로에게 닿아도 부족한 것이 정말로 사랑이 아니라면, 정말로 그렇다면


“그럼, 저희가 한 건 무엇인가요?”


이건 것들이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면 대체 이 감정을 무엇이 비유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생각하면 세상이 멈출 것 같았다. 다자이의 아래에서 다섯 발을 쏘고 두 번 맞았던 감각과 다른 처참함이었다. 서럽고, 슬프고, 괴로워서 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의 이능력으로 찢어진 사람들이 이런 감각일지도 모른다.

분명 피가 나지 않는데도 욱신거리는 감각들에 아쿠타가와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입은 참을지 몰라도 감각만은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끝끝내 눈물을 흩뿌렸다. 봄비가 내리는 것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에 아쿠타가와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나카하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나카하라와 자신이 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쿠타가와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겠지. 어떻게든 다른 말을 찾아 위로하기 위해서. 이럴 때는 나카하라의 상냥함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나카하라는 자신의 강인한 팔로 아쿠타가와를 안았다. 키가 더 컸더라면 조금 더 멋지게 안아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쁘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뒤섞여서 형체를 알 수 없었다. 당장에 다가가서 사랑스러운 그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자를 아쿠타가와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미안, 미안해. 다시는 이런 말 안할게. 응?”


대답대신 아쿠타가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대형견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옷을 벗고 살을 맞대고 있을 때보다도 훨씬 뜨겁고 기분이 좋았다.


“사랑해.”


이번에는 성실하게도 저도요,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오늘 밤은 세상을 가진 밤이다.





서로 좋아하면서 맞관이면서 좋아한다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온갖 애정행각 다 해놓고 '나카하라시가 날 동정하는 건 아닐까.' / '거절을 못해서 억지로 끌려오는건 아닐까.' 라고 고민하는 츄아쿠가 보고싶었습니다.

쓰고나서 생각해보니까 좀 캐붕인거 같기도 하네요. 따자이가 아닌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아쿠타가와라니...


대체 이 시간까지 안자고 뭘 한걸까요... 이 글을 3-4시간 썼다니....

연애사업은 보고 싶은 사람이 도와줘야하는 거겠찌요.

이쁜사랑 영원히 해주기를..S2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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