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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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무/- ing

레몬포도 우물 안 개구리

Fong 2014. 7. 5. 02:01

유그드라실의 내부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정말로 이곳을 대피소 사용할 생각이었는지 비축된 식량부터 시작해서 물자들이 생각지도 못할 만큼 쌓여있었다. 인공조명 아래에서 키우는 체소들도 있었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준비를 한 건지 유그드라실의 능력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도 주도면밀하게 하는 방식으로 보았을 때, 글로벌 기업답다고 생각했다.

현재 유그드라실 및 자와메의 통치자라고도 할 수 있는 쿠레시마 미츠자네는 건물의 내부 상황을 확인하고 자신의 집무실, 원래는 형인 타카토라의 집무실로 향했다. 위치로 보았을 때 가장 최적의 장소였다. 자와메가 한눈에 보이고 거의 단독 층 하나를 쓰고 있었다. 그 흔한 비서하나 없었다. 전부 직접보고를 받는 모양이었다.

방에 가까이 다가가자 방문이 열린 것이 보였다. 렛트나 다른 애들이 온 걸까? 아니면 생존자? 어느 쪽이던 상관없었다. 이 건물에 자신의 적은 없기 때문이다. 경보 시스템은 다시 활성화 시켰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이야, 미츠자네군. 훌륭한 솜씨네.”

“당신... 어디에 있었죠?”

“그런 너야말로 왜 그런 옷? 타카토라를 따라한 거야?”


타카토라의 이야기에 미츠자네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필 비교해도 그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말끔한 연구실의 가운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미츠자네를 발끝부터 머리까지 눈으로 훑었다. 교복을 입었을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타카토라와는 달이 딱 달라붙는 핏의 정장, 짙은 색의 셔츠, 나이든 사람이나 선택할 법한 넥타이. 타카토라는 생각보다 격식을 차리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넥타이는 하지 않았지만, 이 아이는 자신이 권력자라는 것을 들어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잠시 자와메시를 떠난 뒤, 료마는 조용히 자와메로 돌아왔다. 미나토는 비트라이더즈 쪽에 붙어있었고 접근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자신 쪽으로 돌아설 일은 없어 보였다. 더 이상 그녀에게 용무는 없다. 자신을 배신한 시드의 행방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아마 헬헤임 어딘가에 굴러다니겠지. 타카토라의 방에 온 것은 과거의 친우를 생각하는 감상에 젖어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자와메가 가장 잘 보이는 방이었기 때문에 상황을 보러 왔다가, 누군가가 사용한 흔적이 있어서 기다렸을 뿐이었다.


“상관없잖아요. 그 전에 당신 지금까지 어디에....”

“잠시 자와메를 떠나 있었어.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더라고.”

“이제와서 책임을 지겠다는 말인가요?”


예상은 했었지만, 예상외의 상태였다.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이는 어디선가 보고 베낀 것처럼 옷을 차려입고 있었으나 눈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경계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이제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처받은 소녀와 같은 표정이었다. 드디어 비트라이더즈 쪽에서도 버림받은 것이다. 여기서 변신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오버로드와 무언가의 거래를 했다는 것이 된다. 실로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아니. 나는 관찰하고 발견하고 연구하고 그것을 또 다른 주장으로 만들기 위해 왔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료마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미츠자네가 료마쪽으로 다가왔다. 아직 얇고 작았다. 조금씩 자라가고 있는 것은 보였지만, 아직 온전하지 못하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존재는 한없이 불완전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어른인 료마의 눈에는 보였다. 미츠자네는 지금 방황하고 있었다.


“반복 가능하고 관찰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것. 흔히 말하는 심리학의 과학적 접근 방법이지.”

“그게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 데요?”


마치 이곳이 자신의 영역이라도 되는 양 뚜벅뚜벅 걸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카토라가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형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이 아이는 알고 있는 걸까? 자신의 모습이 벗어나고 싶은 것과 똑같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는 영원히 아이인 상태일 것이다. 성정하지 않는, 아니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 어린아일 뿐이다. 그 와중에 영악한 척, 머리가 잘 굴러가는 척 세상을 살아나가겠지. 아마 헬헤임의 침공이 시작된 것은 이 아이에게 잘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이야, 미츠자네군.”


창밖을 바라보는 미츠자네의 뒤로 료마가 다가갔다. 살짝 고개를 숙여 창밖을 보는 행동은 머리카락과 옷깃 사이의 새하얀 목덜미를 보여주었다. 누구도 범한 적 없는 불안전한 몸이 살짝 떨려왔다. 아무래도 미츠자네는 료마에게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시선은 어느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료마가 살짝 시선을 옮겨 창밖을 바라보았다. 카즈라바 코우타와 쿠몬 카이토, 미나토 요코가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모양이었다.

도련님은 저런 영웅놀이가 하고 싶기라도 한 걸까. 아닐 것이다. 그는 완전해지려고 하는 그가 싫은 것이다. 카즈라바 코우타는 타카토라와 같은 완전하고도 완벽한 것을 목표로 하지만, 미츠자네는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의 계산 안에 있어야 했고, 판단대로만 흘러가야 했다. 어떻게 보면 보수적인 아이였다. 세상을 모르는 아이이기도 했다.


“너를 관찰하러 왔어.”


미츠자네의 뒤에서 왼손으로 미츠자네의 목을 올려 잡으며 귓가에서 입을 열자, 놀란 미츠자네가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료마가 미츠자네의 아래턱을 단단하게 붙잡고는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했다. 어린아이는 약하다.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로 흔들었다. 료마는 그의 움직임에 휘둘리는 척 맞춰주면서 그를 소파위로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는 것을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난 미츠자네 군을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있어.”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료마는 미츠자네의 턱을 잡고 내려다보았다. 놀람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얼굴은 불쾌함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또 자신을 이용해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당하고 있는 쪽은 자신이라는 것을 아직도 자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불완전 하면서도 완전한 것을 원하지 않는 네게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지.”


그의 세계는 작다. 본인도 알 것이다. 자신이 품고 싶은 세계는 매우 작다. 가장 소중한 것들만 잘라서 모아둔 아이의 세계는 작고 소중해서 어쩔 줄을 모를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가장'이 아닌 그저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잘라내는 고통을 겪은 후에 그 대가와 보상으로 본인이 생각한 것일 테지. 가엽게도. 소중한 것에 우위를 두는 것 자체가 아픔을 두려워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왜 지킬 생각부터 하지 않고 버릴 생각부터 하는 걸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 왔다고, 고작 16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소중한 것들은 정말로 그렇게 소중한가?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희생해오고 감수해온 노력과 고통을 정당화하고 싶을 뿐일 것이다. 이 멸망하는 세계에서 그 아이는 자신이 가장 노력했던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노력을 했더라도 손에서 놓아버리는 것이 어른이고, 합리적인 생각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자의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이게 가장 타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사람이 사람을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살을 맞대는 거라고 들었거든.”


미츠자네의 턱을 붙잡았던 료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까 자신과 엎치락뒤치락 거리는 사이 게네시스 드라이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나뒹구는 드라이버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는 미츠자네를 보며 벌어진 입 사이로 자신의 입술을 맞대었다. 얼굴 한가득 혐오감을 들어내는 표정이 타카토라의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 료마는 마치 어린 시절이 타카토라에게 입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어른의 혀가 입천장을 부드럽게 핥았다. 정말로 열정적이고 강한 키스라기 보단, 미츠자네를 놀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보였다. 꿈쩍도 하지 않는 미츠자네의 입안을 일부러 휘젓고 다녔다. 사실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료마는 자신이 원하는 데로 할 생각이었다. 이 이상 불완전한 몸을 탐하는 것을 막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은폐해야 할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는 스릴이 떨어졌지만, 사람은 한번쯤은 욕망대로 행동해야 한다.


“나를 즐겁게 해줘, 미츠자네 군.”

“... 당신이 제 도움이 된다면요.”


이 짧은 시간 안에 미츠자네는 모든 생각을 마친 모양이었다. 반항은 못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몸을 주기에는 그 얄팍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이용하겠다는 건가. 영악하고 욕심 많고 겁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정도 잃는 것을 극히 무서워하는, 어떤 의미에선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건 마치 지금까지 나는 네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럴리가요.”


미츠자네가 웃었다. 눈이 휘어지고 입 꼬리가 올라가는 가진 자의 웃음과도 같이 보였다. 교태를 부리는 요사스러운 얼굴이었다. 서로의 이해관계로써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손쉬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말 한두 마디에 움직이는 가벼운 아이.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조금의 고민이나 주장을 할 줄 모른다. 타카토라는 내게 걸작을 남기고 떠났다. 료마는 그는 좋은 친구였다고 생각했다.

한 번 더, 료마의 입술에 미츠자네의 입술이 닿았다. 이번에는 미츠자네쪽이 먼저 움직였다. 어린아이의 어른 흉내는 우스꽝스럽고 귀엽다. 필사적으로 어른의 흉내를 내보려는 행동이 귀여워서 료마는 계속 웃음이 났다. 가느다란 목을 조이는 넥타이부터, 하나씩 미츠자네가 어른처럼 걸치고 있던 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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