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은 상냥하다. 특히 자신에게 상냥하고 무른 태도를 취할 때가 많다. 미츠자네가 지켜본 바로는 잭은 기본적으로 상냥한 사람이다. 때문에 그의 상냥함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대가없이 상냥한 사람은 없다. 가게의 직원들이 상냥한 이유는 그가 고객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은 친구이거나 가족이거나 연인일 때뿐이다. 잭은 자신의 친구인가? 미츠자네는 그가 자신의 친구라고 단언하기 힘들었다. 동료라고 부를 수는 있었지만, 코우타나 마이같은 허물없는 친구관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의 친절은 믿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곁에 있으면 두근거리고, 그의 상냥함이 싫지 않았다. 모두에게 상냥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에게만 상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욕심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도 알면서 또 욕심을 부리게 된다.
“나 지금 끝났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옷 갈아입고 올게.”
조금 벌어진 문을 열고 들어온 잭이 오른쪽의 탈의실로 들어갔다. 미츠자네는 수건을 정리하고 차를 전부 마셨다. 마지막에는 쓴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이것에 위산이 역류한 맛인지 아니면 녹차의 맛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잭은 금세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바론 팀의 옷이 아닌 평범한 셔츠에 연한 청바지, 가벼운 재킷을 걸친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자신이 알고 있던 잭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간단한 가방 하나 조차 챙기지 않은 상태였다. 가지고 있는 우산은 제법 큰 장우산이었다.
“저녁은 먹었어?” “아직.” “그럼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몸도 씻고 가. 가까우니까.”
잭의 제안은 제법 솔깃했지만, 미츠자네는 단박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정도로 넉살이 좋지 못했다. 아무리 화해를 했다고 한들, 여전히 서먹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완전하게 전처럼 돌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과제였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집에 간다는 것은 미츠자네로서는 낯선 일이었다. 대부분의 친척들이 전부 쿠레시마 미츠자네가 있는 쿠레시마 저택으로 모였고 게스트 룸에서 각자 생활을 보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집에 방문하는 것은 집을 공사할 때나 정원사들이 오는 것뿐이었다. 사실 그들의 방문도 거의 통보를 받을 뿐, 실제로 방문한 것을 보고 응대한 적은 없었다.
“나 혼자 살고 있으니까, 가족은 없어.”
혹시나 미츠자네가 자신의 가족을 걱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쉽게 대답하지 않는 미츠자네에게 덤덤하게 말해 주었다. 그 편이 더욱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표정을 보니 아닌 모양이었다. 잭이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먹는 행위는 사람이 가장 빨리 친해질 수 있는 행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헬헤임을 같이 이겨낸 사람이기도 했고 코우타와 마이, 카이토에 대한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또한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잭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쿠레시마 미츠자네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더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 잭은 미츠자네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