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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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스가른

[오이스가] 너를 만나고 싶었어

Fong 2016. 5. 27. 15:28

스가른 전력 주제 이사로 썼던건데... 뭔지 모르는 글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쓰는 스릴이 굉장함ㅋㅋㅋㅋㅋㅋㅋ

 

휴 오탈자는 집에가서 고쳐요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안녕, 잘 지내고 있어? 내가 이렇게 편지 하지 않아도 너는 잘 지내겠지.
네 곁에는 이와이즈미도 있을 거고 내가 아니더라도 너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친구들과 너의 펜이 있을 테니까.
저번 시즌은 조금 아까웠지? 그 날 보러 갔었는데, 유감이네. 내가 응원하러 갈 때마다 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불편해.
해외 이적은 왜 매번 거절하는 거야? 해외로 나는 쪽이 토오루가 더 발전하고 더 멋진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번 이적은 본인을 위해서 잘 이적하는 거 고려해봐.
다음에 또 편지 할게. 몸 관리 잘 하고.
사랑해.
스가와라 코우시로부터.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번 달에도 스가와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었을 때 반해서 고백하고 연애를 하다가 졸업식을 기준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주변 사람들도 급하게 도쿄로 갔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오이카와는 도쿄로 대학을 정했던 터라,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도쿄는 생각보다 넓고 크고 무엇보다 사람이 많았다. 미야기에서도 자주 보지 못했던 스가와라를 도쿄에서 찾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스가와라는 언제나 편지로만 안부를 전했다.
첫 편지를 받았을 때는 신입생 환영회 때 술을 잔뜩 먹고 들어온 날, 우체통에 수신인만 적힌 연한 주황색의 봉투에 든 짧은 글이 쓰여 있었다. 갑자기 사라져서 미안하다는 말과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말, 건강히 잘 지내라는 말이 적힌 극히 형식적으로 보이는 편지였다.
누군가의 장난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주변에 오이카와에게 그런 장난을 칠 사람이 없었다.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이득은 없었다. 놀랍게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 다음 달 편지에 장난도 거짓말도 아니라면서 사진을 보내왔다. 야경이 보이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사진과 유명 제과점의 이름이 적힌 넵킨이 깔린 빵과 자신의 얼굴을 같이 찍은 셀카 사진, 딱 두 장이었다.
대학시절부터 프로로 활약하고 있는 지금까지 약 6년간 오이카와 토오루가 스가와라 코우시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 뒤로도 보내주는 사진의 대부분은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 종류가 매번 다르다는 것과 케쥬얼한 옷이 어색하기 시작했다는 부분과 스스로를 보일 수는 없지만 언제나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점과 웬만해선 도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마지막으로 3개월 전에 귀를 뚫었다는 것. 프로가 된 이후로 구단과 오이카와 개인의 스폰서를 자처하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구단에서는 얼굴은 모르지만 굉장히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이야기 외에는 듣지 못했다. 구단에 방문하는 사람은 항상 대리인이라는 말 외에는 전해 듣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답장을 쓸 생각도 해 보았지만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도 몰랐다. 우체국을 통한 정상적인 방법으로 오는 편지가 아니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도차 몰랐다. 그렇게 받은 편지와 사진들은 쌓여갔다.


“이런 편지 말고 본인이 보고 싶은데.”

오이카와의 머릿속에 있는 스가와라는 고등학교 삼학년의 모습뿐이다. 햇살이 비춰지면 반짝반짝거려서 예쁘게 웃으며 수줍게 손을 잡아오는 제 품안에 쏙 들어갈 체구의 남자였다. 배구를 한 덕분에 손은 매섭고 체력도 좋고 몸에 근육도 어느 정도 잡혀 있었다. 누가 봐도 성별을 착각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오이카와의 눈에는 그 누구보다도 예쁜 사람이다. 최근 보내오는 사진을 보면 키가 조금 큰 것 같았다.
스가와라를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확 다른 사람을 사귀어 볼까, 라는 생각도 했었고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손조차 잡고 싶지 않았다. 이 여자는 커피를 마실 때의 손동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저 여자는 머리카락을 넘길 때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모습이 싫었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스가와라에 비해 미치지 못해서 만남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도련님, 일본에 도착한 후의 일정에 대해서....”
“저기... 치카라, 비행기 아직 뜨지도 않았어.”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움직여야 해서 미리 말씀드리려고요.”


일본에 도착하면 안 들으실 거잖아요? 냉정한 판단을 내린 그가 다이어리를 펴고 일정을 읊기 시작했다. 같은 배구부에 있었을 때도 그렇지만, 정말 챙기는 것에는 꼼꼼한 사람이라고 스가와라 코우시는 생각했다. 그래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가 청소년 시절을 공유할 수 있는 엔노시타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스가와라는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고 생각했다.
스가와라에게는 출생의 비밀이라고 해도 될 만한 사항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리 큰 비밀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뒷세계의 큰손이고 어머니는 재벌가의 외동딸이라는 만화 같은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는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고 싶다는 본인의 요구에 따라 조부모님이 있는 미야기현에서 고등학교를 보냈다. 칼 같이 고등학교 졸업식을 한 그날 저녁에 어머니의 손에 끌려 도쿄로 가게 되었다.
대학에 다녔지만 그렇게 자유로운 생활은 아니었다. 후계자 수업이라는 명목하에 이러저러한 것들을 배워야 했다. 춤이라던가, 회화법이라던가, 식사예절, 매너와 각종 스포츠를 배워야 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께 부탁해서 전해 듣는 오이카와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매우 즐거웠다. 불법적인 일이긴 했지만 그렇게나마 오이카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았다.


“....해서, 저녁에는 파티에 참석해서 얼굴을 비춰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행기에서 밖에 잘 시간이 없단 소리네.”
“네. 아시잖아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요.”


스가와라는 아직 언론이나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아들이 한 명 있다는 것 외에는 밝혀지지 않은 이른바 ‘미지의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부터 이곳저곳에 적극적으로 얼굴을 내밀고 조금씩 언론에 노출시키고 내년부터는 제대로 된 경영자 및 후계자로 자리매김을 시작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스가와라는 음식이 맛이 없다고 투덜거린다던가, 수면시간이 조금밖에 되지 않다던가, 공부가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절대 자신의 일정이나 태생에 대한 투덜거림은 하지 않는다. 전문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3년간 보좌관으로 일을 해온 엔노시타는 단 한 번도 그가 일이나 일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친구와의 연락도 두절하고 몇 년간 혼자서 혹독하게 훈련받아온 스가와라는 전 보좌관도 ‘절대 일에 대한 불평불만이 없는 분’ 이라며 칭찬하기 바빴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지만, 스가와라는 문제를 회피하기 보단 직면하는 것이 성미에 맞았고 약한 소리도 잘 하지 않는다. 엔노시타는 그가 약한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행기가 뜨기를 기다리며 퍼스트 클래스에 다리를 쭉 뻗고 앉은 스가와라는 스포츠 신문 1면에 실린 오이카와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신문 위를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씁쓸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스가와라가 보는 사람이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연인이냐고 물었을 때 전에는 그렇긴 한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씁쓸한 표정으로 우정과 사랑의 중간단계 같은 거라고 생각해, 라고 대답했었다. 스가와라에게 몇 년간 자유시간이라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적어도 엔노시타가 보좌관으로 왔을 때 3년간 스가와라가 자유롭게 돌아다닌 적을 본 적이 없다. 애초에 그런 일정이 잡혀있지 않았다.
비행기가 출발한다는 소리에 스가와라가 신문을 곱게 접어서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탑승할 때 요구했던 안대를 쓰고 등받이를 최대한 가로로 폈다. 이미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는 터라 별다른 행동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이런 생활이 익숙해져 버렸다. 감은 눈꺼풀 위로 방금 전까지 바라보고 있던 오이카와의 얼굴이 동동 떠다녔다.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만지고 싶다. 매달 보내는 편지 외에는 그 어떤 접촉도 하지 않는, 심지어 편지마저도 일방적인 전달에 불과한 자신의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화를 내도 좋으니 딱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오이카와 군은 우리 구단의 얼굴이니까. 게다가 구단주로부터 지명이 들어와서 이번만큼은 꼭 가줘야 겠어.”
“네.”
“별 다른 건 시키지 않을 거야. 그냥 가서 인맥 쌓는다고 생각하고 다녀와.”


높으신 분들의 사교파티에 자신이 지명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보았다. 실제로 몇 번이나 구단의 높으신 분들에 의해 불려갔었다. 오죽하면 대외용 정장도 두벌 정도 구비해놓고 시즌 때도 한 벌씩은 숙소에 챙겨왔다. 시즌이 시작되기 한 달 전에 불러주는 것은 그나마 나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사무실에서 구단주를 만나서 같이 출발했다. 구단주의 딸이 동행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부른 것은 구단주의 따님인 모양이었다. 그녀와 시답잖은 잡담을 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금 도쿄에서 가장 크고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호텔이다. 이곳 최상층의 스카이라운지 겸 식사공간이 유명하다며 그녀가 이야기 했다.
사실 높은 곳에서 보는 야경은 거기서 거기이다. 조금 이른 저녁에는 건물의 윤곽이 보이지만, 아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불빛들로만 가득찬 모습이 된다. 술잔에 담긴 얼음에 의해 흩어지는 빛처럼 보일 뿐이다. 게다가 멋지다고 하도 얼마나 멋지겠어,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그녀를 에스코트 하며 스카이라운지에 발을 디디고 나서야 오이카와는 이 야경이 굉장히 익숙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오이카와가 멋진 야경에 취해 있다고 생각하며 살짝 웃었다. 예쁘지? 라고 묻는 말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스가와라가 가장 처음 보내준 사진 속에서 보았던 그 유리창과 그 야경이다.


“오늘 W그룹 후계자가 참석한다던데, 들었어?”
“진짜 있었구나... 남자라던데, 진짜야?”
“소문은 그렇더라. 20대 중반. 꽤 잘생겼다고 하더라.”


오이카와는 오늘따라 많은 사람들이 아직 이쪽에 얼굴을 비춘 적이 없는 모 그룹의 후계자에게 모든 관심이 가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그녀를 에스코트 하면서 웃으며 아무말 하지 않고 따라다니는 곳곳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소문의 기업, 이라고 하는 걸보면 엄청난 비밀을 안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름 알아?”
“성은 들었어. 스가와라, 라고 하던데....”


오이카와가 그 이름을 듣고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품었다. 지금까지 스가와라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많이 만났다. 팀메이트에 스가와라 라는 사람이 있었고 저번에 광고를 촬영했을 때 만났던 담당자도 스가와라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성이다. 그럼에도 들려오는 성에 오이카와는 기대를 걸었다.
라운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누가 오고 가는지를 살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끌려다니며 인사하거나 악수를 했다. 오이카와는 자기소개를 하는 것 외에 저번 시즌에 관한 이야기라거나 팬이라는 이야기 외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할 이야기가 없었다.
잠깐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며 오이카와의 양해를 구한 구단주와 그 딸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오이카와로서는 편한 일이었다. 수준 높은 와인을 마시며 아마도 일류급 주방장이 만들었을 요깃거리들로 배를 채웠다. 구단주와 그의 딸이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지는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두 사람으로 보였다. 옆에서 웃는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걸 보니 비서인 것 같았다.
그도 생각보다 이곳이 따분한 모양인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이 이곳저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와 오이카와의 눈이 마주치자 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최근 구단은 어떠세요?”


스가와라는 갑자기 구단 이야기를 하는 엔노시타의 발언에 놀라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업의 이름을 거는 것이 아닌 스가와라 코우시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걸 다 알면서도 묻는 엔노시타의 행동에 스가와라가 손가락으로 엔노시타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번 시즌에는 반드시 1위를 탈환 할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스가와라씨에겐 인사 드린적이 없네요. 가장 중요한 분인데.”


구단주의 말을 들은 딸은 두리번거리다가 오이카와쪽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오이카와씨, 라고 부르는 모습이 자신을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 이기에 자신을 호출하는 걸까 싶어 그녀에게로 다가간 오이카와는 그녀와 함께 구단주와 그의 대화상대에게로 다가갔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 친구가 오이카와 토오루입니다. 스가와라씨.”


매번 사진으로만 보았던 스가와라 코우시가 서 있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키스할 때 혀가 미끌어져 들어갈 정도로 살짝 벌려진 입이 스가와라도 놀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에? 하고 멍청한 소리를 냈다가 급하게 웃으며 얼굴을 수습했다.
개인적으로 후원하겠다는 것은 오이카와 본인을 만나지 않겠다는 의미였고 또한 자신의 이름이 세간에 들어나는 것이 꺼려져서 한 행동이었다. 구단주는 후자의 의미로만 해석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고 벙쩌있는 사이에 오이카와가 스가와라 앞에 들이밀어 졌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스가와라 코우시입니다.”
“아, 네. 오이카와 토오루입니다.”

초면이것처럼 어색하게 맞닿은 손이 뜨거웠다. 6년 만에 만나는 형태가 이런 형태일 것이라고는 생가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잡고 있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이카와가 먼저 손을 풀었다. 스가와라는 그저 웃었다. 오이카와의 시선을 슬쩍 피하면서 웃을 뿐이었다.
사진속의 모습보다 더 마른 몸이었다. 피곤한지 다크서클도 약간 있었다. 신문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 날이 없는 W그룹의 얼굴을 비추지 않은 후계자는 오이카와가 아는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 당장 붙잡고 도대체 왜 연락을 하지 않았고, 왜 자신을 만나주지 않았냐고 따지고 싶었다. 동시에 껴안아주고 싶고 미친 듯이 키스를 하고 싶었다. 그보다 더 한 것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충동만으로 행동하기에는 이미 청소년기를 지난 시기였기에 오이카와는 최대한 스가와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와인으로 목을 몇 번이나 축였고 머리카락을 몇 번이나 넘기며 슬쩍 자신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구단주에게로 눈을 돌렸다. 목소리도 살짝 떨리는 것 같아서 오이카와는 안심이 되었다. 편지에 조금의 거짓말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하하, 네. 다음번엔 체육관에서 뵙겠습니다.”


짧고도 긴 대화를 마친 스가와라는 황급히 라운지 밖으로 향했다. 엔노시타를 붙잡고 나갔다. 오이카와를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오이카와나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는지 라운지를 빠르게 벗어났다.


“오이카와는 뭐야?”
“저한테 물으셔도....”


스가와라는 엔노시타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물었다. 오이카와가 올 줄 알았더라면 기내에서 팩이라도 하고 오는 건데. 머리도 한 번 더 보고, 옷도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아닌 더 예쁜 색을 골라서 입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양치를 한번 이라도 더 했을 것이다. 게다가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대외용 미소와 말투까지 써 버렸다.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후계자라고 공표나 다름없는 일을 하기 위해 참석하는 첫 자리였다. 오이카와가 그런 자리에 올 정도로 높은 위치였던 걸까. 애초에 구단주에게 초대장을 보낸 것이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참가지 조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왜 온다고 말 안 해줬어?”
“저도 방금 발견했어요. 구단으로 보내신 건 이런 것 정도는 생각 하신 거 아니었어요?”


오히려 자신이 더 곤란하다는 표정의 엔노시타를 보며 스가와라가 한숨을 내쉬며 애꿎은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지금까지 참아오고 만들어 왔던 모든 것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당장 이 피곤한 자리를 뛰쳐나와서 오이카와와 함께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해, 했긴 했는데... 으... 나 영업용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단 말야.”


오이카와가 스가와라의 뒤를 쫓아 나오자, 멀지 않은 곳에서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업용? 그 전까지는 가식적인 미소를 띄우며 이야기 했다는 걸까. 오이카와도 영업용 미소나 말투, 목소리는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공과 사를 구분하는 쪽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이카와가 있으면... 나 신경쓰여서 아무것도 못할 거야.”


지금까지 잘 참고 앞으로도 참아 나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엔노시타도 잘 알고 있다.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사랑에 빠진 소년같은 표정을 짓는 자신의 선배가 쉽게 평소의, 영업용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되었다.


“그럼 끝나고 자리라도 만들....”
“아니! 아니 절대 안 돼! 못해!”


왜요? 라고 물은 엔노시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스가와라가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나 정말 도망가 버릴지도 몰라’ 라면서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 스가와라의 뒤에 오이카와가 자신들을 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역시 신경쓰이겠지, 보좌관이자 후배로서 스가와라를 잘 달래서 얼굴이라도 볼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치카라... 너라면 6년 전에 말도 없이 사라진 애인을 만나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상대가 남자일 때요? 아니면 여자?”
“어느 쪽이라도 좋으니까. 연인.”
“남자라면 한 대 정돈 때리겠죠.”


여자는? 화를 내지 않을까요? 얼굴에 물을 뿌린다던가요. 엔노시타의 간결한 대답에 스가와라가 한숨을 쉬었다. 어떡하지, 라고 중얼거리는 스가와라는 자신의 양쪽 볼을 꼬집었다. 볼이 아파오는 것이 자신이 지금 현실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직 끝나기 까지 두 시간이나 남아 있다. 어떻게 해야 올바르고 현명한 행동일까를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오이카와만 강제 퇴장 시키는 것이 그나마 나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너무 눈에 띈다. 구단주까지 온 상황이고. 무엇보다 스가와라쪽에서 주최하는 모임이 아니었기에 애초에 강제로 퇴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치카라, 나 혹시 한 대 맞아도 눈에 안 띄게 처리해줘.”
“흐응, 그것 참 든든하네. 녹음 하고 한 대 때려도 되는 거야?”


뒤에서 들려오는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스가와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라운지 안에서도 보았지만, 밝은 복도에서 보는 오이카와는 더 다르게 보였다. 잘생기고 멋진, 온갖 미사어구를 다 같다 붙여도 모자랄 사람이 스가와라의 앞에 서 있었다.
제가 잘 처리 해드릴 테니 두 분이서 이야기 하세요. 엔노시타는 그렇게 빠져나갔다. 잔뜩 굳은 스가와라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다. 무표정한 오이카와의 얼굴이 무서웠다. 한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본 스가와라가 눈을 감았다. 한 대 정도는 맞을 수 있다. 스파이크 수준의 살인 서브를 날리는 손이면 아플 것이다. 뼈에 금이라도 가면 이번 시즌에 그런 힘으로 서브를 꽂아 달라고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시답잖은 상상도 했다.


“내가 때릴 리가 없잖아.”


자신을 와락 껴안아 오는 오이카와의 팔에 스가와라가 감은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오이카와의 목이 보였다. 6년 만에 안긴 연인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이카와의 품으로 파고들자 더 강하게 껴안아 주었다.


“오이카와... 미안.”
“토오루.”
“미안해 토오루. 연락도 없이 사라져서.”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오이카와의 마음이 먹먹해졌다. 연락도 되지 않고 편지만 받아보았을 때의 답답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싫었다. 편지속이 스가와라는 무언가를 절제하려는 것밖에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울먹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매번 주도권을 잡고 있던 스가와라의 위치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믿어주지 않겠지만, 바빴어. 이것저것 배우느라 시간이 없었어. 핸드폰도 전부 보좌관이 관리했었고... 해외에도 자주 나가서, 오늘 아침에 일본에 도착했어....”


긴 시간들을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추릴 수 있다는 것에 스가와라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자신의 단조로운 일상에 감탄을 내뱉었다. 휴가 한 번 없이, 놀러가는 여행 같은 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일정들을 소화하면서 생각했던 오이카와에게 하는 말이 고작 이거라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편지는?”
“보좌관한테....”
“내 행동 감시했던건?”
“... 감시 했었어?”


그냥 행동 보고정도만 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그렇게 끈질기게 붙어다녔던 걸까. 상세하게 알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오이카와가 감시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뒷조사도 아니고 사람 행동을 알아봐 주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셨던 대답이 떠올랐다.


“대답.”
“보좌관한테 보고만....”


물론 대놓고 오이카와를 감시하거나 쫓아다니지는 않았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을 기웃거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는 자신이 한 행동이 편지에 적혀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감시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재촉하듯이 스가와라에게 대답을 요구하자 또 보좌관의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물정 모르고 살아온 부잣집의 아가씨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 보고 싶었어.”


스가와라가 발 뒤꿈치를 둘고 오이카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살짝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이 서로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가 삼으면서 다시 부드럽게 닿았다. 혀가 농밀하게 엮이며 스가와라의 팔이 오이카와의 목을 껴안았다.


“얼마나 남았어?”
“두 시간....”


타액으로 번들거리며 붉은 빛을 내는 입술을 스가와라가 자신의 혀로 핥아 훔쳤다. 미안한 얼굴로 오이카와를 보았다. 혹시나 기다려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던가 한숨을 쉴 것이라고 생각했던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나 기다릴게.”
“치카라한테 부탁....”
“네가 직접 와.”


오이카와의 입술이 이마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제야 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스가와라가 입을 가리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부끄러워 하는 건지 기뻐하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스가와라가 자신을 보며 굳어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로비에서 기다릴게.”


그 말에 스가와라는 응, 하고 대답하며 웃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보며 수줍게 손을 잡으며 웃었던 그 얼굴처럼 설레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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