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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손잡기

Fong 2016. 3. 5. 23:08


오이카게 전력 60분.



주제 : 데이트


http://indreamwalk.tistory.com/88 와 이어지는? 연결되는? 같은 설정의 글입니다.




책과 나무로 된 책장의 냄새로 가득 찬 도서관에 햇빛이 머물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면 학교는 깨어날 준비를 한다. 도서관의 한켠에서 수많은 책과 논문집들을 펼쳐놓은 오이카와 토오루는 책위로 쏟아지는 햇빛에 창밖을 보았다. 파란 하늘을 보며 아, 하고 탄식했다.

당장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건물 안이기 때문에 햇빛이 따뜻하게 느껴질 뿐, 밖으로 나가면 추위가 자신을 덮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가고 싶었다. 아직 자신의 두터운 솜털을 벗지 못한 목력의 꽃봉오리를 감상하거나, 학생이 없는 조용한 학교를 걷는다거나, 가지가 앙상한 나무들의 곁을 지나며 또 다시 싹을 틔워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걷고 싶었다.


“내가 미쳤지....”


당연하게 통과할 줄 알았던 논문 심사에서 떨어졌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번재 논문은 ‘석사는 이런걸 써선 안된다’ 라는 이유로 떨어졌고 두 번째는 내용이 미흡하다면서 거절당했다. 논문 심사 당일에 지도교수가 돌연 쓰러지는 바람에 논문 발표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었다. ‘기대주’ 라는 취급을 받았던 오이카와는 결국 동기 중에서 가장 늦은 졸업을 하게 되었다.

사실 아직까지 졸업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은 절친인 이와이즈미도 한 번 거절당하여 저번학기에 졸업했다는 것과 오이카와가 두 번째 심사를 받을 때 졸업한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또 한가지 ‘위안’ 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던 연인으로 거듭난 카게야마 토비오와 계속 같은 연구실, 같은 학교에서 보낼 수 있다. 지금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졸업을 못하는데. 하고 투덜거리면서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책 사이를 손으로 벌리고 텀블러를 놓아 주었다.


“선배 조금 쉬면서 하세요.”

“내가 어떻게 쉴 수 있겠어.”

“그래도....”

“아, 옆으로 와서 얼굴 보지 마. 나 밤새서 얼굴 푸석하니까.”


오이카와의 등 뒤에 선 토비오는 벌써 옆모습을 보았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토비오의 눈에는 괜찮아 보였다. 그래도 면도를 하고, 정갈하게 옷을 입고 있었으며 오이카와 특유의 어른의 향기가 났다. 무슨 향수인지는 모르지만, 오이카와가 뿌리는 향수의 냄새는 토비오에게 있어서 그가 자신보다 연장자라는 것을 알려줌과 동시에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향이었다.


“논문을 조금 추려왔어요.”


오이카와가 보고있던 논문집 위에 토비오가 뽑아오 논문을 올려두었다. 슬쩍 곁눈질로 자신이 뽑아온 오이카와의 얼굴의 윤곽이 햇빛에 반짝여 보였다. 언제나 콘택트렌즈를 쓰는 오이카와는 첫 번째 논문이 거절된 이후부터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별로라고 투덜거리지만 토비오는 안경을 쓴 오이카와의 모습이 좋았다. 조금 더 오이카와를 멋지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조금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안경을 쓰고 화를 내거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마다 설렜다. 신경을 잔뜩 새우고 날카롭게 쳐다볼 때 마다 두근거려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화를 돋군적도 있었다.

안경 쓴 얼굴도 멋져요, 라고 말도 해봤지만 오이카와는 오히려 반색하면서 화를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조금이라도 눈이 붉어진 날에는 안경을 썼다.

자신이 찾아온 논문을 살펴본 오이카와가 몇 번 넘겨보다니 한숨을 쉬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며 오이카와의 등을 보았다. 그러고는 살짝 뒤를 돌아서 토비오를 보고는 입을 비죽 내밀더니 다시 책상으로 몸을 돌렸다. 왜 저런 태도를 취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자신은 평생을 함께 살아도 오이카와 토오루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선배, 잠깐 산책가지 않으실래요?”

“시간 없어. 나 정말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옆 연구실의 스가와라씨가 가끔은 산책이라도 하면서 강제로 비타민 D를 생성시켜야 한다고 하셨어요.”


바로 옆방부터 시작되는 생물 연구실의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오이카와와 같은 나이지만,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가 할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너무 산책이 하고 싶었다. 바깥에 나가서 공기를 마시고 직접 햇빛을 쐬고 싶었다. 그렇지만 자신보다 먼저 졸업해서 박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려니 왠지 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저희....”


카게야마가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마치 발음의 오류가 난 전자사전처럼 같은 발음만 반복하고 있었는데, 알아듣기 힘들었다. 논문으로 눈을 돌리던 오이카와는 버퍼링이 걸리는 카게야마의 말을 들어줄 여유가 없어져서 확 의자를 돌려 토비오를 보았다.


“데, 데이... 트....”


잔뜩 붉어진 얼굴로 데이트, 라는 말을 꺼냈다. 오이카와와 눈이 마주치자 귀까지 붉어진 카게야마가 안절부절 못하는 눈으로 오이카와를 보았다. 확실하게 들렸다. 데이트, 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오이카와가 풉, 하고 웃어버렸다.


“한지 오래 된 것 같아서....”

“그래서? 토비오쨩은 나랑 뭘 하고 싶은데?”


잔뜩 붉어져서 안절부절 못하며 눈도 못마주치는 모습이 귀엽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는 표정과도 닮아있다. 아니, 자신의 아래에서 부끄러워하는 얼굴과 똑같았다. 아, 토비오쨩 그런 표정 지으면 오늘 공부는 못할거 같은데.


“데- 데이트요. 하, 학기 시작도 안 했으니 사람도 별로 없고 이와이즈미 씨라던가 오이카와선배랑 친한 분들도 안계시고... 아! 절대로 선배가 졸업을 못해서라는 이유는 아니고 그냥 날씨도 좋고 스가와라씨가 조언도 해주셨고 그리고 선배가 계시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또 횡설수설 말한다면서 화를 내려나, 싶었던 오이카와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실내정숙의 원칙을 지키며 최대한 웃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가 금방이라도 호흡곤란을 일으킬 것 같을 정도였다.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하던 오이카와가 후웁,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비오가 준비해준 카페라떼가 담긴 텀블러를 들었다. 입안으로 퍼지는 우유거품과 커피의 맛이 겨우 오이카와를 진정시켜 주었다.


“가자, 토비오쨩.”


자신보다 먼저 앞질러서 나가는 오이카와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다행에도 엘리베이터는 토비오가 내린 이후 움직이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1층 버튼을 눌렀다. 심호흡을 한 토비오가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저, 선배. 손... 잡아도 되요?”

“있잖아 토비오쨩. 오늘은 안 바빠?”

“네? 네. 별로 없어요.”


사실은 일부러 어제 밤을 새어가면서 끝냈어요. 라는 말은 죽어도 하지 못했다. 요즘 오이카와는 연구실에 들리지 않으니 아마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모를 것이다. 흐응, 그래? 토비오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오이카와의 손이 따뜻했다. 오이카와의 검지가 볼록 튀어나온 토비오의 손가락 관절을 만지작거렸다. 계속 피식피식 하고 웃는 모습을 보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이라는 안내음성과 함께 문이 열리자, 스가와라와 같은 연구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있었다. 살짝 눈인사를 한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와 토비오가 내리는 것을 보다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본인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웃었다.


“연애하는 사람은 좋네.”

“그건 또 갑자기 무슨....”


빈 종이컵을 가볍게 손으로 구긴 스가와라의 동창인 사와무라 다이치가 맞받아 쳤다.


“나 방금 퍽퍽한 대학원 생활 하면서 연애 한번 못해본게 좀 섭섭해졌어.”

“거짓말 하지 마, 너 방금 웃고 있었잖아.”

“사람이 좀 웃을 수도 있지. 그렇게 하나하나 신경쓰면 신경과민으로 쓰러질거야.”


스가와라는 아홉 번의 시도 끝에 자신에게 연애상담을 하던 카게야마의 모습과 나중에 고맙다면서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할 모습을 상상했다가 역시 커플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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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참 따뜻하고 아침점심저녁으로 손잡고 데이트 하며 쏘다니기 좋은 날씨인데 지금까지 연구실에서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슬퍼서 위안을 얻고자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안에 집에 가고 싶어요.



일하다 말고 한시간만 놀자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오탈자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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