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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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스가른

[오이스가] 사랑이 시작되는 마법

Fong 2016. 5. 2. 00:36

스가른 전력 60

이지만 60분이 아닌 200분.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드는 마법에 걸린 것 같은 오이카와의 이야기 입니다.

마법 이라는 단어가 나오긴 합니다...




대학은 쿄토에서 그리고 취업은 다시 미야기로 돌아와서 하게 된 이제 어리숙한 티가 사라진 3년차 교사 스가와라 코우시는 부장 선생님의 부탁을, 말이 좋아 부탁이지 강제성을 띈 명령이나 다름없는 일을 받고 말았다. 고등학교 때 배구를 했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출신의 고등학교 인지도 알면서 부탁을 했다는 점이 악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코치가 두 명이나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 최강이지 않겠느냐고 웃어넘겼다.


“아~ 어떡하지.”


남문 쪽에 있는 자판기에만 최근 맛을 들인 약한 탄산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기 위해 움직였다. 수업시간이었기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고등학교의 아이들은 제법 우수한 편이었다. 도심에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카라스노라고 그렇게 나쁜 고등학교였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창 밖에 학교를 탈출하는 아이들이 보이곤 했었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고 몸을 숙여서 캔을 꺼냈다. 그 자리에서 캔을 열어서 반쯤 마셨다. 체육관에서 공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체육이 있었나? 통통 튀기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렸다. ‘나이스 킬!’ 하며 외치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배구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쪽이 남자 배구부의 체육관이라고 들었다.

이미 배구부 고문 선생님이 된 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조심히 창문으로만 보고 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기웃거렸다. 그곳에는 고등학생이라고 하기엔 굉장한 발육상태의 남자들이 있었다. 학교 체육복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학생이라기 보단, 일반인에 가까웠다. 오늘 평일인데 일반인에게 개방했던가?


“오이카와 나이스 서브!”

“야 이와이즈미 너무한거 아니냐? 저 녀석 선수잖아.”


코트 너머로 몇 번이나 보았던, 코트 밖에서 더 많이 보았던 매서운 서브를 상대편 코트에 정확하게 안착 시켰다. 상대편이 손을 써보려고 했지만, 서비스 에이스로 6점이나 땄다. 오이카와 라는 이름과 여자들을 몰고 다녔던 얼굴, 여전한 갈색의 셋팅한 곱슬머리를 보며 스가와라는 그들이 외부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좌우를 살피자, 왼쪽에 남자 배구부 감독이 있었다. 문이 열리는 것을 본 감독이 스가와라를 알아보고 웃으며 살짝 고개만 움직이는 인사를 서로 주고받은 후에 다시 코트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구두를 벗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벗어두고 양말을 신은 상태로 감독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섰다.


“스가와라 선생님이 올해부터 고문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네.”


이거 봐, 벌써 기정사실이 되어 있잖아. 스가와라는 한껏 한숨을 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숨기고 웃었다. 예쁘게, 상황을 잘 모면할 수 있는 웃음을 짓는 건 스가와라의 매력이라고 했던 교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어느 정도 먹히는 얼굴이니 대답하기 곤란하면 그냥 웃으라던 니시노야가 생각났다.


“그래도 세이죠 팀에 카라스노 출신의 고문 선생님이라니… 카라스노에서 부주장 이셨죠?”


지금의 감독은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코치도 그대로였다. 처음 이곳으로 부임했을 때 인사를 하면서 얼굴을 보았다. 그것 외엔 학교에서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출장식 때 딱딱한 얼굴로 보며 형식적인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다시 배구로 돌아오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네. 뭐 그래도 예전 일이니까요. 아시잖아요? 저 주전 레귤러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 이후로 카라스노가 계속 이겼었으니까요.”


오이카와의 스파이크가 반대편 코트로 떨어지려는 것을 누군가의 팔에 닿았다. 리시브라고 하기에는 매우 불안정했다. 그야말로 누군가의 팔에 닿았다가 튀었다. 공은 순식간에 스가와라 쪽으로 향했다. 감독님! 하고 코치인 미조구치의 목소리가 애석하게 스가와라는 공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쳐내면서 하핫, 하고 웃으며 평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건 카게야마랑 히나타의 팀이 이긴 거잖아요? 고리고 이번 봄에는 세이죠가 이겼잖아요.”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가뿐하게 공을 막아내는 것을 본 그들이 순간 눈을 깜박이며 두 사람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감독은 신경쓰지 말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카라스노는 봄고에서 준결승에서 패배했다. 카라스노가 다시 쇠퇴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냐며 아사히가 걱정하는 것을 니시노야가 등을 팡팡 두드리며 ‘잘 하겠죠’ 라고 넘겼었다.

배구를 보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다. 지금도 가끔은 한다. 공이 오가는 것을 보다가 제일 눈에 띄고 화려한 오이카와에게 시선이 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토스를 하던 오이카와와 눈이 마주치자, 오이카와는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의식 하면서도 의식하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이겼다!”

“일반인 상대로 이긴 게 그렇게 좋냐?”

“맛층도 실업팀이잖아?”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여전한 모양이었다. 태격태격 거리는 걸 보니 인간관계는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코치가 달려와서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까는 죄송했다면서 연신 사과하는 그에게 정말 괜찮다며 곤란한 표정으로 웃었다.


“어라…? 카라스노의… 그, 상쾌군 아냐?”


수건으로 땀을 닦던 오이카와가 스가와라를 보며 아는 척을 했다. 인사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는 중에 미조구치 코치가 ‘야 인마, 오이카와. 선생님께 그게 뭐냐?’ 라며 핀잔을 주자 헤에, 선생님이구나? 라며 놀랐다. 그리고 물병을 이로 잡아 뜯어 마셨다.

갈증이 났다. 경기로 인한 갈증이 아니었다. 스가와라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분명한 시선이 끈덕지게 자신을 따라 붙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던 순간들 때문에 목이 탔다. 아마 심심풀이로 하는 경기가 아니었더라면 이와이즈미에게 잔뜩 혼이 났을 것이다.


“스가와라 아니었나?”

“네. 스가와라 코우시입니다.”


올해부터 배구부 고문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말을 아꼈다. 이와이즈미의 기억력에 오오, 하며 다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반응에 동조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졸업생 모임인지 오이카와도 누군가에게 선배라고 부르며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아. 스가와라 선생님. 부활동 때 오실거죠?”

“네. 잠시 인사차….”

“선생님 체육복이랑 운동화 있으세요?”


있다. 야근할 때 입은 체육복이 있고, 작년 가을에 체육대회에서 교사 릴레이 시합에서 1등을 거머쥐기 위해 가져왔던 운동화가 깨끗하게 세탁되어서 사물함 안에 있다. 배구화는 아니기 때문에 발은 조금 아프겠지만, 있긴 하다.


“모처럼 다시 배구부에 오셨는데, 한 번 하셔야죠.”


아니 무슨 술 권유처럼 그렇게 권유를 해? 학생들에게 배구부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스가와라가 담임인 반에는 배구부 레귤러가 셋이나 있다. 게다가 왠지 말하는 것이 이상해서 부활동에 대해 언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 세이죠 졸업생과 섞어서 배구를 하기로 했는데, 한 명이 오질 못했거든요.”


코치가 저들의 사이에서 열심히 공을 만지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리 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가볍게 배구를 한 모양이었다. 수업이 끝나기 까지 한 시간이 남았으니 가볍게 몸을 풀기에는 적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저 세이죠 출신도 아니고….”

“지금이 세이죠시잖아요.”

“제가 배구공 잡은 지 너무 오래 돼서요….”


거짓말이다. 어제 카라스노 멤버가 모여서 배구를 했다. 3대 3으로 아사히, 니시노야, 류를 상대로 이겨서 저녁을 얻어먹었다. 졸업생팀끼리 잘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일단 인사만 가볍게 하고 가서 3학년 진로지도를 위해 알아볼 자료들을 조사를 8시에 끝내고 퇴근하기 전에 배구부에 얼굴을 한 번 더 보이고 돌아가려 했던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상쾌군 세터 아니라도 할 수 있잖아? 내가 커버 잘 해줄게.”


반반한 얼굴로 윙크를 하며 웃는 것을 보며 여자들에게 제법 먹힐 얼굴이라는 생각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스가와라는 여자가 아니었기에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고문으로서 앞으로의 감독과 코치와의 관계도 있고 아이들과의 친밀도 중요한 일이었기에 결국 스가와라는 체육복과 운동화를 챙겨 오겠다는 약속을 해버렸다.

스가와라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 오이카와의 시선에 마츠카와가 돈마이, 하면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뭐야, 볼멘소리로 항변해 보지만 그들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사실 속일 것이 뭐가 있는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기에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밝힐 것도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찾아온, 여자 친구가 바뀐 횟수가 다섯 손가락을 넘어설 쯔음에 찾아온 첫사랑이 눈앞에서 왔다가 사라졌다. 한 시간 후에 다시 온다는 약속을 남겼다.

사실 이름은 잘 알고 있다. 스가와라 코우시, 쿄토 대학을 거서 국문과 졸업을 하고 아오바죠사이에 국어 선생님으로 부임한지 3년째가 된다는 것도, 올해부터 배구부 고문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배구부 고문으로 스가와라를 추천한 것은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다.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이름을 알면서도 일부러 ‘상쾌군’ 이라고 부르면서 타인 처럼 행동할 때 부자연스럽지는 않았을까, 전 고문이었던 선생님이 스가와라에게 고문 자리를 넘겨주며 자신을 언급하지는 않았는지, 등등 여러 가지가 신경 쓰였지만 하나하나 물을 수가 없었다.

뒤통수를 긁던 오이카와가 물을 들이켰다.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조금 떨렸다. 1점만 실수해도 지게 될 지도 모르는 코트에 섰을 때보다도 더 떨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는 기분이었다. 고등학생때 느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 조금 떨릴지도 모르겠다.”


항상 여유만만하거나 가끔 초조하거나 상대를 때려 부술 것 같은 표정을 짓던 오이카와가 긴장하며 말을 아끼는 모습은 굉장히 새로웠다. 여자에게 인기도 많고 여자친구도 있었던 주제에 왜 이렇게 숙맥처럼 구는 건지, 오이카와의 새로운 모습이 구경거리였다.


“끝나고 약속이라도 잡지 그래? 아니면 같이 밥 먹자고 먼저 꼬셔봐.”

“우리랑 같이. 우리가 알아서 자리 만들어 줄게.”


마츠카와와 하나마키가 오이카와를 보며 말했다. 하나마키는 우리라는 단어를 쓰면서 지나가던 이와이즈미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스스로 참 좋은 친구를 두었다고 생각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렁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5세트 중 모든 세트를 이겼다. 애들 상대로 적당히 할 줄도 모르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대팀에도 마츠카와라는 실업팀 선수와 이와이즈미가 있었다. 점수차는 생각보다 많이 나서, 압승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스가 선생님! 배구 하셨어요?”

“스가쨩이 서포터 추천해 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어디 학교 출신이세요?”

“저희 남아서 연습 안 해? 레귤러잖아.”


손부채를 부치는 스가와라가 달려드는 아이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주장으로 보이는 학생이 오이카와에게 와서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하고 좋은 시간이었다는 상투적인 말이 오갔다. 세월이 지나도 얼굴은 아직 먹히는지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 메니저에게 손을 흔들어주자, 꺄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코치와 감독과 이야기 하는 스가와라는 난처하게 웃었다. 지도를 해도 되겠다는 둥, 여러 말이 오고가는 와중에 스가와라는 계속 웃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스가와라는, 상쾌군은 웃는게 이뻤다. 잘생긴 자신과는 달리 예뻤다. 사실 배구보다는 문학부의 부장이라던가, 그림을 그린다거나 하는 쪽의 이미지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 얼굴에 반했고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신뢰로 묶여 강하게 제 후배였던 카게야마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질투가 났다.


“스가쨩 선생님!”


체육관 밖으로 나간 스가와라를 오이카와가 체육관의 문 앞에서 불러 세웠다. 부르기 전에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해야만 했다. 스가와라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자신을 부른 사람이 오이카와라는 것을 알게된 후에는 이도저도 못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마시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스가와라의 표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고민을 하고 있는 얼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럴 때는 먼저 당기는 것이 좋다. 스스로를 북돋으며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나랑 이와쨩이랑, 맛층이랑 맛키. 어느 정도 알고 있잖아? 고등학교로 돌아온 기념으로 같이 마시자.”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에게는 고등학교로 돌아왔다는 것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말해 버렸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횡설수설 말하는 것은 더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방금 스가와라가 웃었던 것처럼 자신도 웃었다.

오이카와가 가볍게 던지는 말에 스가와라는 후, 하고 한숨을 쉬고는 8시 반까지 정문에서 보자, 하고 친하지도 않은 오이카와와 덜컥 약속을 잡아 버렸다. 교무실로 돌아가면서 괜히 잡았나, 라는 생각을 했다가 부정적인 생각을 해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세이죠는 졸업생과 교류를 자주 했다. 게다가 3학년의 담임이고, 진로지도도 해야 한다. 그들은 사회인이니 인터넷 검색이 아닌 경로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레귤러로 들어간 자신의 반 학생들이 들어갈 대학교나 실업팀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다. 그리 나쁘지 않은 인맥이라고 생각했다.

숙직실에서 가볍게 샤워를 하고 체육복을 챙겼다. 다시 양복을 갖춰 입고, 어젯밤에 열심히 닦았던 구두를 신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들어간다는 문자를 부모님께 보내고 가방을 들고 나왔다.

카라스노의 멤버와 술을 마신다면 모를까, 타교인 학생들과 술을 마신다는 건 어색했다. 네코마나 후쿠로다니 그룹의 멤버라면 그나마 친숙했지만, 오이카와를 포함한 세이죠의 멤버들은 익숙하지 않았다. 한 번의 패배와 한 번의 승리를 차지했던 라이벌 고등학교였고 뛰어넘어야 할 존재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와, 도망 안가고 왔네.”

“… 나 일단 교사고, 약속한 걸 깨뜨리진 않아.”


가벼운 옷차림의 그들과는 달리 번듯한 정장을 입고 나온 스가와라는 굉장히 눈에 띄었다. 게다가 180이나 되는 장신들 사이에서 한참이나 작았다. 괜찮은 곳 없어? 라는 질문에 스가와라는 교직원이 자주 가는 술집의 이름을 말하자 그곳은 매번 간다며 핸드폰을 들고 검색하기 시작했다.


“스가쨩, 약속은 안 깨뜨려도 거짓말은 잘 하는 구나?”

“거짓말?”


어이, 오이카와. 이와이즈미가 핀잔을 주자 생글생글 웃으면서 알겠어, 라며 대화를 끝냈다. 어제 이와이즈미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스가와라가 배구를 하는 것을 보았다. 카라스노의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배구를 하는 모습에 걸음을 멈추고 보았다가 말없이 자신을 버리고 저 멀리 가버리는 이와이즈미를 따라갔었다.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 라고 말하던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그저 웃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가 말한 거짓말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술집으로 향하는 동안 그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배구뿐이었다. 이번 세이죠의 학생들 실력에 관한 것부터 시작해서 미조구치 코치의 주름이 늘었다던가, 체육복 사이즈가 두 치수 정도 늘어난 것 같다는 둥 고등학생 같은 말만 나왔다.

가볍게 맥주와 식사대용으로 먹을 음식들을 주문하고 나자 스가와라는 자신의 맞은편에 오이카와가 앉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누가 한 자리 선정이지, 라고 생각했다가 스가와라가 스스로 가장 끝 자리에 앉았고 그 맞은편에 오이카와가 앉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스가쨩 최근에도 배구 하지 않았어?”

“너 제대로 선생님이라고 불러라.”

“에, 싫어. 상쾌군이랑 스가쨩. 이 두 개만 쓸 거야.”

“이제 나이도 좀 있고… 상쾌군은 좀 그렇다. 징그러워.”


그들의 대화를 듣던 스가와라는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상쾌군’ 이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웃었다. 한 번도 그렇게 불린 적이 없었건만, 오이카와는 자신을 그런 호칭으로 불렀던 모양이었다.


“둘 중 하나라면 스가쨩으로.”


스가와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술이 먼저 나왔다. 서로의 잔에 술을 따르고 가볍게 건배를 했다. 다들 한두 모금 정도만 마시는 것에 비해, 한 번에 반 이상을 비우는 스가와라를 보며 다들 감탄했다. 크으, 하며 고개를 살짝 흔드는 표정과 얼굴에서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가쨩 술 잘 마시네?”

“아저씨들이랑 어울리다보니까 그렇게 되더라.”

“나는 그렇게 먹이진 않던데. 역시 선수여서 그런가?”


안주로 나온 음식 중 감자와 껍질콩만을 건져서 자신의 그릇에 옮겨담는 오이카와에 비해 스가와라는 고기와 감자만 자신의 그릇에 담았다. 이와이즈미나 마츠카와, 하나마키는 자신들 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화중에 들리는 지명은 스가와라도 들어보았던 미야기에 있는 곳의 이름이었다. 다들 미야기에 있는 모양이었다.


“아, 맞다. 스가쨩 번호 알려줘.”

“왜?”

“학교로 전화하는 거 귀찮으니까. 전에도 고문 선생님이 일정 조정 해주시던데.”

“일정?”


말을 마친 스가와라가 고기덩어리를 씹으며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눈을 몇 번 깜박이며 스가와라를 보다가 자신이 매 해 하던 일을, 원래라면 스가와라가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매 해마다 골든위크 전 까지 세이죠 레귤러 지도하고 있어. 매일 갈 수는 없고, 지정된 요일에 가는 것도 힘들어서 고문 선생님이랑 조율했었거든.”

“그렇구나… 그런 말 못 들어서 몰랐네.”


스가와라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오이카와에게 전해 주었다. 번호를 찍으라는 의미였다. 오이카와는 익숙하게 번호를 찍고 통화 버튼을 눌러 자신의 핸드폰에 뜨는 번호를 확인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저장해줄게.”

“아? 응.”


오이카와와는 다르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스가와라가 자신을 많이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용해서 스가와라의 핸드폰에 ‘이케맨 토오루’ 라는 저장명으로 저장해 주었다. 웃는 얼굴로 돌려주자 아무런 의심 없이 주머니에 넣었다.

선수 라는 것은 사실인지 야채위주로 조금만 먹었다. 오히려 저녁에 먹지 않으면 안 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나온 셀러드를 보며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을 마시다가 부족했는지, 이와이즈미가 자연스럽게 오이카와의 잔으로 손을 뻗어서 자신의 잔에 반을 들어내는 등, 오이카와를 향한 배려가 이미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해외에서 배구해?”

“응. 매번 이맘때쯤 와서 골든위크 직전에 다시 가고 있어. 쉬는 기간이라서.”

“꽤 열열한 후배 사랑이네.”


적당히 배를 채운 스가와라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스가와라도 카라스노를 제법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후배들을 챙기지는 않았다. 카게야마와 같은 학년의 아이들에게는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지만, 그 아래의 얼굴도 본 적 없는 후배를 챙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그들을 챙기는 건 사와무라 뿐일 것이다. 배구부 코치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노는 것 보단 낫잖아? 그리고 나 학교 가는 거 좋아해.”

“대학은 안 갔어?”

“내가 좋아하는 건 고등학교니까.”


충분히 갈 수 있었다. 해외에 있는 구단에서도 대학을 권했지만, 오이카와가 거절했다. 다른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다시 머라를 싸매고 공부하는 것은 싫었다. 성적이 나빴던 것도 머리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지만 배구 이외의 것으로 진득하게 책상 앞에 붙어 있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가면 다시 고등학생이 된 것 같아서 뭔가… 두근거린다고 해야 하나? 다시 고등학생이 되는 마법에 걸려서 코트에 들어가고 싶어지거든.”


한손으로 턱을 괸 오이카와가 스가와라를 보며 웃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릴 적 자신은 용기도 없고 지금보다 영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스가와라를 앞에 두니 고등학교 이후로 발전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다.


“고등학생때의 내가 하지 못했던 걸 지금이라도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

“여기서 충전하고 간다는 의미?”

“음… 뭐, 그런 것도 있고….”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쪽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이쪽에 신경쓸 겨를은 없어 보였다. 최적의 기회이다. 오이카와는 고등학생의 자신보다 한발 더 내딛기 시작했다.


“고등학생때 여자친구는 많았지만, 첫사랑은 없었거든? 그런데 고 3때 타학교 학생을 한 번 만났을 때 두근거렸다가 두 번째 만날 때는 졸업할 때 까지 몽롱하게 취한 기분이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괴로웠다. 말이라도 해볼걸, 이라는 후회로 마음속에 묻기로 했다. 대학을 가고 자신은 해외로 나가기로 했기 때문에 영영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법처럼 눈앞에 나타났고, 번호 까지 받았다. 앞으로 한 달 이상은 보게 될 얼굴이다. 미룰 이유가 없었다.

술잔을 잡고 있던 스가와라의 손 위로 오이카와이 손이 겹쳐졌다. 큰 손으로 손가락이 시작되는 뼈마디를 만지작거렸다. 오이카와의 시선이 술잔으로 향했다가 다시 스가와라를 향했다. 취했는지 약간 볼이 붉어진 스가와라가 에? 하고 멍청한 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가 귀여워서 피식거리며 웃었다.


“지금은 어른이니까. 고등학생의 마음과 어른의 기술로 다가가 보려고.”


고장난 인형처럼 눈을 꿈뻑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스가와라의 얼굴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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